장마 시작 전까지 안말에서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었던 텃밭이었다. 케일과 적겨자는 일찌감치 벌레에게 헌납하고 상추밭 옆에 왕고들빼기 몇 단을 뽑아내지 않고 자라게 두어서 색다른 쌈채소로 활용했다.
장마가 그치며 꽃대가 올라온 채소류를 다 뽑아내고 봄부터 생각했던퍼머컬쳐 가드닝에 도전을 하고 있다.
퍼머컬쳐란 '지속적인'이라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의미한다.
농약이나 잡초 방지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작물을 기르고, 밭의 동선을 간결하게 해서 작물 배치를 하기에 두둑의 모양이 중요해지는 밭을 디자인한다.
물이 적은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는 열쇠 구멍 모양으로 밭의 경계를 쌓은 키홀 가든이나 달팽이집 모양으로 경계를 만든 스파이럴 가든을 만들어 작물을 기른다고 한다.
퍼머컬쳐의 핵심은 엣지 (edge)에있는데 나는
모래마대에 흙과 거름을 담아 밭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텃밭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인근에서 오전시간 강사를 하게 되어 두 주 동안의 붙박이 생활을 하게 되어서 일 마치고 돌아온 한가한 오후 시간에 조금씩 모래마대에 흙을 채웠다. 어느새 백여 개가 된 마대 화분을 줄지어 세우고 루꼴라, 상추, 치커리, 배추같이 저절로 싹을 틔운 작물들을 옮겨 심고 두둑 안쪽 흙에는 무 씨를 뿌렸다. 어떻게 싹을 틔우고 어떤 모양으로 자라 줄지 사뭇 기다려진다.
도라지, 부추, 바질, 세이지, 차이브, 로즈마리, 라벤더, 샐러리, 야로우, 장구채, 유럽봄맞이, 하설초, 말채나무, 마조람, 레몬밤, 쿠라피아, 대파.... 작은 밭에 제법 많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앞마당 화분에 심은 가지와 토마토, 고추가 끝물을 향해 가고는 있지만 옆 마당에서 아직 한창 열매를 영글어가고 있는 오이, 호박 줄기를 거둘 때까지, 그리고 노지 월동 안 되는 허브들을 캐낼 때까지 가을을 맞이하고 누려보라고 그냥 두기로 했다.
잡초도 무성하게 자리를 잡아서 꿋꿋하게 자라는 모양을 보면 차마 걷어내지를 못하겠던데 그 꽃이 피어 씨앗이 되어버리면 내년엔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기다리고 있다하기에 꽃이 피면 곧바로 꽃대를 잘라내고 있다. 어린 싹의 모양만 보고 잡초 이름 몇가지는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 올 해의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까마중 줄기 세 포기를 남겨서 검게 익은 열매를 모아 잼을 만들었다. 거친 맛이지만 새롭고 흥미로와서 한번 더 만들어보려고 열매가 익을 때마다 따서 냉동실에 모으는 중이다.
옆 산에서 익어가는 산초열매와 밤송이들과 싸리꽃들. 그 사이로 조용히 나타나 밥을 먹고 집안 구석구석에 앉아 있다가 사라지는 고양이들과 늦여름 오후 한때 흙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