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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Sep 13. 2022

환대받았던 날의 기억

작은 도시, 지역 유지인 아버지를 둔 고등학교적 친구의 집엔 넓은 마당과 우물터가 있었다. 시험이 끝난 한가한 오후 시간을 친구 집에서 보내다 보면 대가족 커다란 저녁 상 한 켠에 내 수저도 올라가 있었고 '아버지 여전하시냐' 인사말도 건네시면서 친구 부모님과 할머니께 환대받는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오 년 전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그 밤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살아계실 때 호방하시던 웃음이 떠올라 주차장에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산기슭길을 혼자 폴짝폴짝 뛰면서 경쾌한 작별인사를 하는 척을 했었다. 그야말로 눈에 눈이 들어가서 눈물이 나오는데 눈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알 수가 없는 혼자만의 작별식이었다. 펄펄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맞으며 서 있다가 장례식장에 들어가서 문상을 했었다.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역 유지인지라 가게를 가도 식당을 가도 그 친구와 함께라면 환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몇 년 만의 한가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동네를 거닐었다.

 '너, 순대국밥 먹을 줄 알아?' 묻는 내 말에 살짝 당황하는 그녀 얼굴에 웃음이 나왔다.

  '아... 어... 동생이랑 한 번 먹어본 적 있어. 저기 순대국밥집 있는데 잘하는 집이라고 동생이 그러더라.'

  '그래, 별로 안 좋아해도 나하고 한 번 먹어보자. 난 그게 먹고 싶네.'


동네 순대국밥집에 가서 순대국밥을 먹는데, 정통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국밥집 사장님은 우리가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친구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고 계산을 하고 나올 때까지 그 웃음을 걷지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는 명망 있는 지역 유지. 신도시가 들어선 중소도시의 구시가지에 아직도 그런 동네 정서가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훈훈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했던 날에도 난 다른 친구 한 명과 그 친구 방에서 해가 지도록 수다를 떨었다.

퇴근해서 돌아오신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를 불렀다. '니들 오늘 졸업했지? 우리 가족 식사하러 가기로 했는데 니들도 와라.'

예의 바르게 거절도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따라나설 때 택시 한 대가 왔다. 친구 엄마와 우리 셋이 택시를 탔고, 친구 아버지 차에 친구의 남동생 셋과 언니가 타서 아홉 명이 간 곳은 강남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팝송을 들으며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같은 것을 먹는 경양식집이 아니라 맑은 유리컵에 따른 물, 곱게 접은 냅킨,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포오크와 나이프가 서너 개씩 세팅된 테이블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우아한 공간으로 안내받아 앤틱 의자에 앉으면서 나와 다른 친구는 적잖이 당황을 했었다.


가족 식사 자리에 별생각 없이 따라나선 철부지 딸 친구들이 낯선 테이블 풍경에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친구 아버지는 웨이터를 불렀다.

검은 턱시도에 흰 셔츠, 나비넥타이를 하고 흰색 수건을 손에 든 남자가 공손하게 다가왔고 친구 아버지는 그를 보며 정중하게 물었다.

'여기, 이 포오크랑 나이프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쓰는 거지요?'

웨이터는 바깥쪽에 있는 것부터 차례차례 음식 나오는 순서대로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다른 식구들도 웨이터가 말을 마칠 때까지 우리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며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우리 둘은 그냥 알았다. 식구들이 우리 두 명을 위해 이미 익숙한 자신들의 식탁예절을 초기화하곤 처음 듣는 말처럼 웨이터의 설명에 귀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애피타이저와 스테이크와 후식까지의 코스요리의 맛은 기억 못 하지만 그날 친구 가족들의 환대는 두고두고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친구가 아버님이 시집을 내셨다고 우리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내 등은 사다리, 너희들은 안심하고 밟고 올라라'

하는 싯귀절에 오래도록 눈이 머물렀었다.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그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두고두고 알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모델을 보여주셨던 친구의 부모님이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이 늘 애잔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내 부모님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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