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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서우아빠 Nov 28. 2023

연필로 보는 아이들의 요즈음

물건 하나하나가 참 소중한데 참

어른이 되고 나서 연필을 잡은 적이 거의 없다. 어지간한 문서 작업은 컴퓨터로 대신하고 정자 서명이 꼭 필요한 경우에도 볼펜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할 때도 빨간 색연필을 이용하고 간단한 메모나 부팅 비밀번호도 보기 좋게 뚜렷한 네임 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로 내가 쓰는 교실엔 3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연필을 가져다 놓은 경우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한 해를 마무리 해가는 요즘 부쩍 연필을 수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주일이 멀다 하고 수업 종료 후 아이들이 머물다 간 교실을 청소하면 연필 2,3자루는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번주만 해도 한 다스는 족히 연필을 모은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름을 적지 않아 주인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본인이 연필을 잃어버렸는지 아닌지를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잦다는 것이다.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우선 가지런히 연필깎이로 깎아 서랍에 보관하면 다음날 여지없이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얘기한다.


"선생님, 연필 좀 빌려주세요."


어디서부터 첫 단추를 끼워야 할까라는 물음표가 순간 내 머릿속에 빙빙 돌지만 우선 갖고 있는 연필도 많고 서둘러 나가야 할 진도도 있으니 일단 빌려주기로 한다. 학생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 연필과 지우개이거늘 이런 기본 생활습관을 너무 가벼이 여기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올바른 소비에 대한 강조가 예전보다 많이 둔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학교 생활용품이 과도하게 풍족해지다 보니 물건의 소중함에 대한 의식이 점점 옅어지는 것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한 개의 소중함을 가슴 깊게 자리 잡고 살아온 나로서는 이러한 주인 없는 물건들을 선뜻 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청소시간에 발견한 연필을 서랍 한편에 가지런히 깎아 보관한다.

늘 연필을 찾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평소 착실하게 물건을 챙기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나에게 연필을 요구하는 계절이 왔다. 그만큼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단 뜻이요 겨울방학을 맞아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 리모델링이 필요하단 의미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다시 제대로 담을 때까지 오늘을 버텨내야 하는 요즈음이다.


너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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