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 앞에서

by 라니 글을 피우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커피숍의 자리에서,

마트의 계산대 앞에서,

식당의 분주한 한켠에서,

버스의 핸들을 잡고서.


어둠이 내리는 이 시간,

조용한 버스 안에 앉아

흐릿한 창밖을 바라본다.


빛은 스쳐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향한다.


남들은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리 위에 서 있다.


그래도 괜찮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그들의 삶을 지나

살아간다.


어느새 종착역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제자리걸음도

걷고 있는 걸까.


익숙해진 공기 속에서

문득,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작게,

아주 작은 소리로.


제자리일지라도

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 한 걸음에

용기가 나기를 바라면서.


낯선 도시의 그곳에서는

새로운 희망보다

불안이 먼저

나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야 할 여정이기에


그 바람 속에서도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낯선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