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지만, 끝내 버리지 못했다

by 라니 글을 피우다

살아생전 엄마가 건네준 이름 모를 식물 하나를 키워왔다.

아주 작은 아이였는데, 어느새 나만큼이나 훌쩍 자라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가늠이 안 될 만큼 자연스럽게.


베란다의 식물들을 정리하다가

이 아이를 나눌까, 그대로 둘까

손이 머뭇거린다.


나의 베란다는 예쁘게 꾸며지지 않았다.

그저, 나를 닮아

식물들이 제멋대로 자랄 뿐이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온 투박한 화분,

졸업식에 받아온 수저꽂이도

어느 순간 화분이 되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겠다 싶으면

그 안에 흙을 채우고

새로운 생명을 들여놓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엄마가 식물을 키워오던 그 방식 그대로

식물을 키우고 있다.


한동안 멈추어 있던 나는

이제야 조금씩 에너지가 차오르는지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식물의 이름은

칼랑코에 다이그레몬티아나.

‘천 개의 아이’, ‘자식 만세’라는 별명을 가졌다.

이름처럼 잎마다 작은 생명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징그럽다가도, 자꾸만 눈이 가는 묘한 생명력이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세계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지

여러 번 물어보다가

중간을 과감히 잘라

새로 키우는 게 더 건강하다는 답을 들었다.


아이들은 이 식물을 예쁘지 않다며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예쁜 옷을 입히듯

잘 꾸며진 화분에 심긴 식물만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해서

예쁘든 아니든

그저 존중하며 키우고 싶다.


어쩌면 내가 꾸미는 재주가 부족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


늦게 시작한 봄맞이 대청소 덕분에

내 마음도

오늘 날씨처럼 조금은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