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마주 (2022)> 리뷰
집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하다 깨버린 창문과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은 청테이프. 꿈과 열정으로 뒤덮여 주위를 둘러볼 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딘가 깨지고 다치며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상처는 언제나 당장 돌볼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생긴다. 돈이라던가 시간이라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는 임의로 된 치료만을 받고 지내다 언젠가 태풍을 마주한다. 그때는 이제 회의감이 들 차례이다. 꿈과 열정 그리고 인내심만을 가지고는 정말로 안 되는 걸까.
오마주는 영화에서 특정 작품의 장면이나 대사를 차용하여 작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감독 지완 (이정은 분)이 1세대 여성 영화감독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 (1968)>라는 작품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초기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현재 영화를 꿈꾸는 모든 여성들에게, 영화가 아니어도 무언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5월 26일 날 개봉할 영화를 우연한 기회로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할 수 있었다.
막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글쓰기가 별 볼일 없는 나의 자잘한 일들에 치여 시작조차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중단되었지만 이 영화는 그 공백을 깨우기에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단 한 번만 보고 리뷰를 쓰려고 하니 첫 줄을 쓰고는 마땅한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없었다. 남의 글을 보지 않고 나의 생각만으로 글을 쓰리라 다짐하며 영화를 보면서 노트에 몇 가지를 끄적여왔지만 어둠 속에서 춤추던 나의 글씨는 빛 아래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검색창에 영화 오마주를 치기 시작했고 그러다 어떤 기자의 짧은 리뷰를 보았다. 그 기자분은 이 영화를 러브레터 같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러브레터라. 사랑은 결국 나의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레터는 상대방의 감정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상대에게 전하는 감정을 담고 있다. 맞다. 예술도 그랬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언가를 위한 작품이지만 결국 나의 작품이며 나에게 의미가 있다. 영화 속 지완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일은 시대에 묻혀 잃어버린 여성의 목소리를 그리고 검열된 여성의 장면들을 되살려주는 일이면서도 지친 지완에게 다시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1세대 여성 영화감독을 위한 지완의 헌사는 곧 자신을 위한 헌사였다.
*스포 주의
영화는 수영하는 지완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수영하는 지완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영화는 여러 가지 메타포를 흥미롭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걸 찾으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수영은 지완의 상태를 나타낸다. 영화 초반에는 지완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발차기도 잘 되지 않고 오히려 물 위에 뜨지도 못한다. 그녀의 세 번째 영화인 <유령인간>을 막 개봉했지만 신난 감정보다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꿈을, 직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사회가 부여한 여성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그런 와중 그녀에게 돈을 별로 되지 않지만 의미 있는 단기 일자리가 들어온다. 그 의미 있는 일자리란 <여판사>를 복원하는 작업이었고 이 작업이 단순하게 자리에 앉아 복원하는 작업이면 영화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작업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 여정을 요구했다. 없어진 사운드 속 대사를 찾는 여정, 흐름이 끊길 정도로 많이 삭제된 장면들을 찾아 그녀는 사방팔방으로 떠난다. 그러던 와중 <유령인간>을 같이 제작한 PD가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그녀에게 말을 해온다. 이때 그녀는 수영을 직접적으로 대사를 통해 언급한다. 왼팔이 버티고 있어야 오른팔이 나아간다고. 왼팔이 감독이면 오른팔은 PD라고.
그녀에게 시련은 계속해서 주어진다. 청테이프로 간신히 바람만 막았던 것처럼 그녀가 방치했던 아픈 몸은 결국 그녀를 쓰러뜨렸다. 그래도 하늘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속담은 그랬던가. 오래되어 천장에 큰 구멍이 생긴 극장에서 그녀는 결국 검열되어 삭제된 부분들을 찾아낸다. 홍은원 감독과 함께 일했던 1세대 여성 편집기사 이옥희 (이주실 분)가 지완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을 의지가 생겼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결국 그녀가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며 수영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지완이 만든 영화 <유령인간>은 더블 플롯인 홍 감독 그림자를 암시한다. 제목과 다르게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지완과 피디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영화의 판타지적 요소인 그림자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자는 <여판사> 속 여자 주인공이 입고 다닌 코트와 모자를 쓰고 다녔던 홍 감독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 등장은 마치 유령처럼 여겨져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지완이 직업으로의 영화에 회의감이 들어 고민할 때만 곁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아 오히려 혼자가 아니라며 곁을 지켜주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지완 역시 홍 감독에게 그런 상호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지완이 찾아낸 <여판사> 속 검열되어 삭제된 수많은 장면들은 모두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으며 복원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으로 그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담배를 피우면서 사라지는 그림자의 모습은 여성에 대한 잣대와 검열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복원한 감독의 모습이었다.
꿈이나 열정, 그리고 인내심만으로는 안 되는 것일까. 홍 감독이 편집 기사였던 이옥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한계에 부딪힌 수많은 사람들을 관통한다. 나는 여전히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꿈과 열정과 인내심을 여전히 믿는 사람이며 아직은 달리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앞에 장애물이나 벽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때론 그 장애물이 나일 수도 있다는 것도. 그래도 분명한 건 고통과 무너짐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회피할 수는 없을뿐더러 그 과정이 없다면 나에게 성장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의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얻고자 한다면 바뀌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내가 되더라도. 하지만 지친 사람에게는 이 변화는 버거움이며 때론 가능하지 않게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오마주 할 상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를 위한 헌사는 곧 나를 위한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