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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그리고 아들, 달라서 재밌고 달라서 어렵습니다.

남매맘의 목소리

by moca and fly

신혼 초 남편과 자녀계획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 나에겐 몇 명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남동생과 둘 뿐인 남매이자 언니가 없었던 나는 그와 정반대인 동성을 키우고 싶었고 딸이라면 언니는 꼭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의 사심에 가까웠던 그 계획은 결국 하나도 지켜지지 못했다. 주시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게 자식이었고 자식은 내 맘대로 안된다는 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깨달았다.


나는 남매 맘이다.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이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백 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 왜 백 점이라고 부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첫째가 딸이라 받게 되는 보너스 아닐까 싶다. 딸이니까 엄마를 잘 도와주고 동생을 잘 챙길 것 같아서 미리 주는 가산점 말이다. 하지만 백 점이라는 기준은 양육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바라본 기준이다. 성별이 다른 육아는 동상이몽, 다른 별에서 온 두 자아 이런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남매의 육아는 내가 아니라 남이 바라보기에 더 아름다운 그림이다.



첫째가 딸이란 걸 알고 남편은 엄청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첫아이라 초음파 사진이란 것도 처음인데 다짜고짜 입술이 예쁘다고 했다. 의사는 친절하게도 여기가 입술입니다. 짚어주곤 했는데 몇 cm로 아이의 크기를 가늠하던 때니 아이의 입술은 몇 mm쯤 되었으려나 싶다.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추억인데 돌이켜보니 남편은 그냥 딸이어서 다 예뻤던 거 아닌가 싶다.


태어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딸아이를 쉽게 만지지 못했고 안아주지도 못했다. 보고만 있어도 어쩔 줄 모르는 게 티가 났다. 딸아이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면 더더욱 어쩔 줄 몰라했고 자다 깨서 울면 나보다 먼저 눈을 번쩍 뜨고 달려갔다. 하지만 예민함을 최대치로 갖고 태어난 아이는 자다 깨다를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했고 배부르게 한 번에 먹기보다는 먹다가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 손에 들려있던 젖병이 저만치 침대 모서리로 굴러가 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좀 울리더라도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먹였으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민했던 아이와 초보 아빠의 다해줄게 걱정 마 육아가 더해져 그 시절 육아는 셋 다 참 고달팠다. 아이는 지금도 또래보다 마른 체형에 속한다. 혹시 그때 다른 방법을 선택했으면 아이의 체격이 조금은 달랐으려나 싶지만 이건 남편의 지극정성에 입이 짧은 딸이 만나서 벌어진 예상된 결론이었다.



둘째를 가졌을 때는 우리의 계획대로 딸아이가 찾아와 주길 바랐다. 아들 손주를 기대하고 있었던 집안 어르신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 부부는 딸을 원했다. 누나가 여럿이었던 남편은 아무래도 딸자식에 대한 긍정적인 데이터가 많았고 절친이었던 친구가 딸 둘을 가진 아빠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남편을 자극했다.

둘째가 아들이라고 확정되었을 때 남편이 아닌 친정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물론 남편의 실망스러워하는 모습도 세트로 기억에 남았다. 요즘은 아들딸의 문제가 아니라 낳느냐 마느냐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친정아버지나 남편과 같은 모습은 앞으로 흔하게 만나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남편은 딸아이와 달리 아들의 초음파 사진을 볼 때면 못생겼다고 놀려댔다. 아니 똑같은 초음파 사진인데 딸아이는 입술이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하더니 아들은 다짜고짜 못생겼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 사진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는데 남편은 자기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놀릴 대상 하나 생겼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둘째 출산 후에도 남편의 행동은 큰아이때와는 달랐다. 육아를 열심히 도와주긴 했지만 딸은 부서질까 봐 살살 대했다면 아들은 신생아 때부터 마구마구 장난을 쳤다. 지금도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남편의 장난이 곳곳에 숨어있다. 아이의 예쁜 모습보다는 웃긴 모습이 사진에 많이 담긴 건 남편의 짓궂음이 한몫했다.



남편만 다른 게 아니라 아들과 딸의 육아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들은 느렸고 예민하지 않았다. 자느라 먹는 걸 놓치기도 했고 먹다가 졸기도 했다. 심지어 밤낮이 바뀌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많이 먹고 오래 잤다. 완전 반대의 육아, 저 멀리 극과 극 별에서 나란 우주에 떨어진 두 아이, 둘의 정반대 육아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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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가 다른 별에서 온 결정적인 모습들은 키우는 순간순간 잊을만하면 나를 일깨워 주었다. 물론 딸 같은 아들, 아들 같은 딸도 봤지만 우리 집은 그냥 누나 같은 딸 그리고 빈틈이 많은 동생 같은 아들이었다. 딸아이는 뭘 잘 잊어버리지 않았고 잘 기록해 오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동네 엄마들이 그날 딸아이가 적어 온 알림장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뭘 물어보면 잘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가 남자아이들의 대답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더랬다. 아니 좀 많이 들어갔다. 나에게도 그런 아들이 하나 있는 걸 까먹고 말이다.


딸아이와 한 살 터울인 아들은 그다음 해 학교에 들어갔다. 아들은 적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알림장을 학교에 두고 오는 일도 많았다. 뭐라고 하셨는지 까먹어서 못 적고 칠판에 있는 내용을 다 못 적었는데 지워서 못 적고 이렇고 저렇고... 요즘이야 알림장 앱이 있어 학부모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이가 적어 온 알림장에 의존해야만 했다.

결국 가까운 동네 딸아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알림장 내용을 묻곤 했다.

사람이 한 치 앞을 못 보고 일어난 결과다.


학교 입학할 때 엄마들과 주고받는 정보 중 주변 딸아이 엄마를 한 명은 알고 있는 게 좋다는 건 꿀팁 중 하나였다.바로 과묵한 아들의 입 때문에 학교 사정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아들이 다니는 학교행사들은 누군가에게 듣고 아들 녀석한테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대답의 대부분은 아 맞다, 까먹었어요 둘 중 하나다. 이러다 보니 아이의 학교행사는 아이의 입보다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알게 되는 게 더 많다. 자연스럽게 아들을 키울 때는 딸을 키울 때보다 훨씬 부지런해야 했다.


비교 체험 극과 극이 따로 없었다. 성향 차이에 성별 차이까지 더해져 육아의 절정 시기를 지날 땐 사방이 막힌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기분이었다. 이쪽인가 싶으면 이쪽이 아니고 이쪽이 아니겠지 하면 그쪽이 맞는 날도 있었다.


세월이 약인 건 육아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강물 같은 딸아이와 넘실대는 파도 같은 아들 사이에서 어느새 나도 육아를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자식이라는 공통점 빼고는 같은 게 없었던 두 아이는 뾰족했던 나를 둥글게 만들고 맞춤형 육아를 꿈꿨던 나에게 타협이라는 단어도 가르쳤다. 스킬까지는 아니어도 둘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기 시작한 것도 나름 큰 변화다. 비결은 내려놓는 거였다. 나만의 선입견을 걷어낸 게 결정적이었다. 특히 그 둘을 성별로 가르는 일들은 육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젠 외동이었으면 좋겠다거나 형과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매에게 둘의 티키타카가 먼 훗날 너희들이 사회에서 만날 남녀 사이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물론 이 말에 둘의 반응은 일치한다. 이런 남자 이런 여자는 흔치 않다고, 뉘앙스로 봐선 칭찬은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하지만 정말 기대할 수 없는 걸까? 세상에 절반인 남녀를 서로를 통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관계는 없을 텐데 말이다. 물론 이루어지기 어려운 희망사항이긴 하다. 다만 좋았다 싫었다가 반복되는 입체적인 둘의 관계가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라는 걸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싫을 수도 있는 관계, 현재 그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남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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