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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05. 2023

2. 삶과 일은 얼마나 같은 얼굴일까

아침 7시. 알람이 울리면 더듬더듬 손으로 스마트폰을 찾아 음량을 낮춘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남편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8시 쯤. 그제야 이부자리 밖으로 나와 욕실로 향한다. 매일 지겹도록 반복되는 아침풍경. 마냥 누워 있고만 싶고 일하러 가기는 싫다. 하기 싫다, 놀고 싶다를 나 자신에게 세뇌하듯 되뇐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일터로 나가야 한다. 나는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으며, 아직 종착역은 멀기만 하다. 준비 없이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가는 다치기만 할 뿐이다.



일주일 중 가장 기분 좋은 날이 언제냐는 물음을 받은 적이 있다. 나에겐 금요일 저녁이다. 한동안 주말이 없는 일상을 보내다 주말이 생겼다. 남들과는 다른 사이클을 보내다 이제야 정상궤도로 올라왔다. 그전까지는 주말에도 일을 한다는 사실이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주말에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노동환경에 놓여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무렴, 나의 노동환경이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9 to 6, 주 5일 근무(*공휴일과 대체휴무는 반드시 지킴), 연차와 월차와 보건휴가 보장. 노동자의 권리. 너무나도 먼 단어들이다. 문화예술계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은 특수하다. 주말, 야간 근무와 초과근무는 당연한 환경이다. 퇴근 후에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이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는가. 떠나지 못해서다. 말 그대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좋아서’였고, ‘꿈’이 있었으며, ‘희망’과 ‘로망’이 있었다. 현실감각이 현저히 떨어지는 INFJ라서 일까. 아니면 불나방처럼 화려한 조명에 취해(!) 겁 없이 달려들었던 젊은 날의 과오일까.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대가는 물질보다는 심리적인 만족이 컸다.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컸다. 하지만 나이가 찰수록 내 자부심은 사회의 인정 밖에 있었고 ‘자격지심’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n년차 직장인이면 xxx만원은 가지고 있어야하고, xxxx연봉은 찍어야 하는 기준들. 처음엔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옆자리에 있던 동료들은 멀어져만 갔다. 그런데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지역의 청년을 만났다. 문화예술기획자로 일하며 무너진 일상이 견디기 어려워 잠시 일을 쉬고 있다며, 요즘은 취미 생활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겪었을 고된 일상들.(퇴근이 없는 일상, 난데없는 새벽 호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들)에 모두 공감이 갔다. ‘좋아서’시작한 일에서 ‘좋음’이 사라지게 되었을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남들 놀 때 똑같이 놀고 싶어서 되겠니?” 첫 직장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해야 하냐는 팀장님의 푸념에 대한 선생님의 답이었다. 나는 왜인지 그 말에 감동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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