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을 하는 젊은 남자 무용수였다. 나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는 내게 기획자도 창작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창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그래야 예술가를 도구로 보지 않을 수 있다고.
오두막 앞에 쭈그려 앉아 불을 피워놓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창 식사자리가 끝났고, 남은 잔불에 남은 고기를 안주삼아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이며 여름 밤 정취를 느끼던 8월의 어느 밤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그 순간, 그 짧은 대화가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 나는 걸 보면, 그 질문과 대화가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들인 걸지도 모르겠다.
화천 신읍리 신명분교에서는 매해 여름이면 10일간 예술가들이 모여 축제를 했다. 탈춤, 현대무용, 설치미술, 음악가, 연극, 인형제작자까지 장르도 나이도 다른 예술가들이 모여서 창작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침 10시부터(이르면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움직임 훈련을 하고, 장면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고, 매일 공연과 즉흥극 발표가 이어졌다. 20대 30대 또래 단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축제(?)를 치르느라 고생하는 서로를 격려하고, 식사준비를 위해 장보러 간다는 핑계로 짬짬이 읍내 까페로 몰려가 숨어서 쉬기도 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지치는 사람이 없었다. 무대가 아니어도 방구석에서 손전등 하나만 켜놓고 작은 공연이 이뤄지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컴퓨터로 편집해 온라인에 올렸다. 모든 순간을 전부 담고 기억하고 싶었다. 지금 그 순간들은 사진보다 머릿속에 흐릿하게 남아있지만.
‘예술가’집단에서 보낸 시간동안 나는 정말 ‘예술가’들과만 교류했다. 아침에 눈뜨고 집 밖으로 나가 일상을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예술가’들하고만 있었다. 예술가는 무언가를 항상 창작하는 사람들이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련하고 연습하고 고민했다. 그곳에서 기획자 아니 프로듀서라는 직함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했는가를 돌아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