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다. 작년 생일에 뭐가 필요하냐 물어보니 자길 소재로 글을 써달라고 한 깜찍한 친구다. 선물 살 돈을 아껴 개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중 갑상선암에 걸리고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도 나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다음 생일이 와 버렸다. 미안하다 친구야.
나이를 먹을수록 지인은 늘어나지만, 친구는 적어진다. 이번 생에 만날 수 있는 친구는 20대에 이미 다 만났고, 남은 시간은 지키지 못한 친구들을 카톡리스트에서 하나 둘 삭제하기 위해 주어진 기분이랄까. 각자 삶이 바쁜 데다 사는 모습이 달라 자연스레 연락이 줄어든다. 이 친구와도 점점 공통점이 적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친구는 동성간 결혼이 합법인 네덜란드나 에스토니아로 이민가지 않는 이상 결혼할 일이 없다. 난 사무직이고 친구는 요리사여서 직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적다.
난 재테크가 최대 관심사가 되어 영화관에 가본 지도 오래지만, 친구는 김동률 콘서트만 기다리며 여전히 문화와 취향를 위해 소비한다. 아마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이야기되는 것들을 열 개쯤 눈앞에 깔아놓고 고르라 하면 우린 달라도 한참 다른 걸 고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놈과는 인생의 마지막에도 친구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려 하면 담담하게 "정신차려 미친놈아"라고 해줄 수 있는 사람, 욕을 먹었는데도 감정 상하는 대신 그 말을 진지하게 곱씹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우린 서로 공통점이 없기에 더 객관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담담하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된 건 아닐까 싶다.
청소년일 때 만나 청년기를 함께한 우린 나이를 더 먹어서도 여전히 서로가 청년일 수 있게 자극해주면 좋겠다. 어릴 때 소중하게 여겼던 감각들을 평소에는 잊고 살아가지만, 최소한 일년에 한번은 만나 그때를 떠올리게 해주자.
선물을 주기로 한 지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가 생일이었던 것처럼 축하 인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