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며 호흡이 어려워졌다. 가슴과 등에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단순한 월요병이 아니라는 확신에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심장에 문제가 생겼나 싶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가벗은 채로 쓰러지면 큰일인데. 빨리 옷부터 입자."
하루가 지난 지금 옆구리에 흉관을 삽입하고 병원에 누워 있다. 다행히 심장엔 이상이 없었고 기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가슴에 차 있는 공기를 빼내면서 폐에 생긴 구멍이 아물길 기다리고 있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했지만,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마음이 진정되니 그때 내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왜 빨리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는지 말이다. 아내가 낑낑대며 내 발가벗은 몸뚱이에 옷을 입히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 와중에도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지는 게 '쪽팔렸던' 걸까.
내 행동이 상대방을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종종 퇴근길에 꽃다발을 사 가는 게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선지, 스윗한 남편이 되고 싶어선지 헷갈린다. 아내 먼저 설거지를 하는 이유도 아내를 고생시키기 싫어서인지, 싸우기 싫어서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내 행동이 사실은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회의감이 늘 따라다닌다. 특히 아내와 말다툼을 하며 양보하지 않고 언성을 높일 때마다 그 생각은 강해진다.
내 행동의 동기가 무엇이든 그 결과가 남을 해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는 걸까. 내게 이로울 때만 선택적으로 남을 위한다면 그냥 교활한 게 아닐까. 하지만 내가 늘 바란 건 달디단 밤양갱 아니, 만족감 하나였다면 그조차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결론을 내려야 한다. 어차피 우린 나와 너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간다. 내가 먼저일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네 걱정에 그럴 때도 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행동 하나하나마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판단해야 한다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것 같다. 간만에 병원에 입원해 시간이 생긴 김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쳐야겠다. 어쨌든 난 쓰러지지 않았고, 속옷과 바지를 잘 챙겨 입고 나왔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