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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Aug 07. 2024

02 권력관계가 바뀌다

유방암으로 인생역전 (2)

   수술이 끝났다 보다. 목이 아프다. 수술한다고 기도에 꽂았던 관 때문인 것 같다. 의식은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은데 몸 구석구석은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나 보다. 추워서 뭘 더 덮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도 나오지 않고 몸이 아무 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깊은 우물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말소리가 들린다. 낯익은 목소리가 있다. 남편이다.

  "수술 잘 됐대. 너무너무 잘했어. 다 잘 됐대. 고생했어. 이제 병실 올라갈 거야."

  이런 류의 말인 것 같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 음성 자체가 동아줄이다. 우물 속에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다. 그 목소리에 내 의식을 묶어 빛이 보이는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간다. 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여보. 말을 계속해줘. 지금 당신 목소리가 나를 물밖으로 끌어내고 있어. 멈추면 안 돼. 다행히 남편은 계속 말하고 있다.

   "다 잘 됐대. 고생했어. 잘했어. 고마워."

   "추워!"라고 말을 해 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데 누군가 알아들었는지 뭘 덮어준다. 눈이 떠진다. 드디어 물밖으로 나왔나 보다. 울 생각이 전혀 없는데 눈물이 흐른다.  내 동아줄, 남편의 목소리는 계속 들린다.

   "잘했어. 고생했어. 다 잘 됐대!"


   병실에 돌아오자 간호사가 남편에게 1시간 동안 있을 수 있고 그동안 어떻게 나를 도와야 하는지 설명한다. 잠을 재우지 말아라. 깊은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우리 병동은 통합간호병동이어서 간병인이 상주했다. 그동안 보호자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수술했다고 1시간이라는 자비를 내리는 것이다. 수술 전에는 '수술 끝나자마자 바로 남편은 집으로 보내야지. 병실에 다들 여자 환자인데 남자가 있으면 불편할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나는 평생 이렇게 쿨했다. 안달복달하는 쪽은 항상 남편이었다. 결혼 전 10 년 가까이 그는 사랑을 고백했으나 나는 항상 쿨했다. 주변 지인들은 긴 외사랑을 하는 그를 가여워했다. 마지막에 선심 쓰듯이 그 고백을 받아줘서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해서도 나는 늘 쿨했다. 수면 온도가 다르니 따로 자자고 주장하는 쪽은 나였고 부부란 모름지기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며 매달리는 쪽은 남편이었다. 나는 남편이 집에 없어도 별다른 느낌 없이 살 수 있었으나 남편은 내가 출장만 며칠 다녀와도 '당신은 내 존재의 뿌리야.'라는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을 뱉곤 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늘 강자였다.


  남편이 복식호흡을 도와주겠노라고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말하는 동안에도 나는 온통 1시간이라는 단어에만 꽂혀 있다. 고작 1시간? 저 동아줄 같은 음성을 1시간만 들을 수 있다니.  며칠 전의 통화가 생각난다. 수술 며칠 전쯤 '말빨' 언니가 안부차 전화를 했었다. 지인 중에서 말발 지수가 1등이라 붙여진 별명이다. 말빨 언니의 남편도 암경험자였으므로 내 암 소식을 듣고는 고맙게도 전화를 자주 해 준다. 말빨 언니의 많은 말 중에서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배우자의 스트레스였다. 당사자 못지않게 우주가 흔들리는 느낌이라지. 말빨 언니도 남편이 암을 진단받았을 때 극도의 스트레스로 약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사람이 아프게 되면 그 주위 사람들도 친분의 농도만큼 같이 앓게 된다'라고 했던 법정 스님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 남편도 심하게 앓는 중일테다. 이 남자도 위로가 필요하다. 남편을 위로해 주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 쿨한 나는 그렇게 믿었다.



  1시간이 지나가버렸는지 간호사가 들어와 남편에게 이제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의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옷자락을 잡았다.  

"가지 마~ 엉엉~ 여보~ 가지 마~'

  옷을 움켜쥔 뒤로는 그야말로 엉엉 울어버렸다. 5살도 아니고 곧 50이 되는 아줌마가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평생을 쿨하게 살아온 내 위신이 와장창 깨지는데도, 보호자들을 1시간 만에 보낸 다른 환우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는데도, 간호사 앞에서 진상 환자가 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울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여보~ 가지 마~ 가지 마~"

   남편이 간호사의 얼굴을 쳐다본다. 간호사는 말없이 나가버렸고 나는 남편의 옷을 놓을 생각이 없다. 남편이 의자에 다시 앉아서 내 손을 잡는다. 그제야 엉엉거리는 것을 멈춘다. 그때 느꼈다. 우리의 권력관계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날 남편은 간호사와 병실 환우들의 묵인 하에 3시간을 같이 있어주었고 나는 며칠 동안 병실 환우들의 놀림을 받았다.



 

From 49세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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