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인생역전 (3)
병실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얼굴을 하게 된 것은 수술 끝나고 사나흘 지난 후부터였다. 수술부위를 압박붕대로 칭칭 동여매서 숨이 잘 안 쉬어져서는 아니다. 유방암 병동에서는 수술 후에 모든 환우가 그 붕대에 갇혀 있으니 나만 투덜댈 일은 아니다. 수술하고 며칠 있으면 다들 바로 퇴원을 하는데, 나는 퇴원하라는 소리를 못 들어서도 아니다. 수술 부위에 꽂아놓은 배액관에서 계속 진물이 흘러나온다. 그 양이 줄어야 퇴원을 하나보다. 내 몸에서는 계속 많은 양의 핏물이 흘러나왔고 의사는 계속 지켜보자는 말만 했다. 언젠가는 줄겠지~ 하는 마음에 별로 조급하지도 않았다.
다른 이유로 나는 웃을 수가 없다. 명절이 코앞이라 그런지 다들 부산한 표정으로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나만 낯빛이 흑빛이 되어 침대와 화장실을 왕복하고 있다. 수술 부작용으로 장기들이 할 일을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수술 후 첫날 방광은 제 할 일을 시작했는데, 대장이 제 할 일을 안 한다. 간호사가 오전 오후로 차트를 들고 ‘대변보셨어요’라고 묻는다. 나도 그 질문에 ‘네’하고 싶다. 간절하게 ‘네~’라고 답하고 싶다. 내 차트에 ‘대변’ 항목에 동그라미가 쳐지면 좋겠다. 간호사는 변비약을 처방하겠다고 했다. 며칠은 약 없이 운동 열심히 해서 해결해 보겠다고 했었지만 그리 해결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변비약 주세요."
처방된 변비약을 먹으니 한나절 후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문제는 화장실에 가서 땀만 삐질삐질 흘리다가 그냥 나온다는 것이다. 뱃속은 부글거리고 당장 변기에 앉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변기에 앉아 있으면 별 소득이 없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있으니 앞 베드 환우인 마음 씨가 말한다.
"마음이 중요해요. 마음을 편하게 먹어요."
오~ 마음, 그래! 마음이 중요하지. 수술 당일이 떠올랐다. 나보다 하루 먼저 입원했던 마음 씨가 내게 마음 씨가 된 것은 내 수술날 아침이었다. 가슴 수술이라 팔에 혈관주사를 꽂지 않고 다리에 꽂아야 한다며 새벽부터 간호사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끙끙대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하지정맥류를 의심받을 정도로 선명한 내 다리혈관을 간호사들은 못 잡고 있다. 한번 찌를 때마다 너무 아파서 짜증이 밀려왔는데, 간호사 자신이 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어서 화를 낼 수도 없고 눈물만 났다.
"혈관이 숨어버려요, 어떡하죠?"
간호사가 우는 목소리로 묻는다. 나보고 물으면 어쩌란 말이냐. 혈관이 숨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그때 마음 씨가 등판했다.
"무섭다는 마음을 먹으면 혈관이 그걸 알고 숨어버려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세요."
유사과학적인 발언을 하니 나는 대답할 마음도 없다. 마음 씨는 자신도 그런 방법으로 해결했다며 다시 한번 권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내가 언제 제일 행복했지? 최근에 들은 소설 낭독이 떠올랐다. 행복했다기보다는 유쾌했으므로 그게 적절해 보였다. 핸드폰으로 그 낭독을 찾아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한참 낭독을 듣고 있다 보니 간호사가 소리를 지른다.
"성공했어요!!"
우리는 다 같이 마음 씨를 쳐다보았다.
"오~~~ 마음이가 문제군요."
그때부터 마음 씨는 마음 씨가 되었다.
그런 마음 씨가 마음이 문제라고 하니, 다시 마음 문제부터 해결해 보자. 나는 왜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나오는가? 생각해 보니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불안하다. 내가 똥을 누는데 다른 사람이 노크를 하면 나는 어째야 하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불안하다. 그래, 불안이 문제야. 불안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똥을 눌 수 있는 화장실을 찾아야겠어. 마음 같아서는 집에 있는 내 침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화장실을 가겠다고 병원을 탈출하기에는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배액관과 그걸 자주 체크하러 오는 간병인과 간호사가 문제다. 탈출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당장 일어나 병원 꼭대기층부터 화장실 순례를 시작했다. 가장 인적이 드문 화장실을 찾는 게 목적이다. 최종 낙점된 화장실은 주차장에서 지하로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에서 한참 서성여 보았는데 출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병실에서 좀 먼 것이 흠이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생각하는 순간 변의가 몰려왔다. 가장 안쪽 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마음아. 이제 편안하지? 모두 할 일을 하세요~!"라고 몸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도 꽉 막힌 느낌만 들고 대장은 할 일을 안 한다. 나는 대장을 도와주려고 끙끙 힘을 주는데, 땀만 삐질삐질 나고 별 소용이 없다.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니 병동이다.
"여보세요."
"이어리 님 어디세요."
똥 누러 왔다고 할 수가 없어 둘러댄다.
"그게… 음…. 산책 나왔습니다."
"아니, 교수님 회진 시간인데 나가시면 어떡해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황당함이 묻어 있다. 젠장~ 회진일이다. 워낙 교수는 일주일에 2번 회진을 돈다. 그들에겐 회진이 엄숙한 일이다. 회진 시간마다 어떤 긴장감이 도는 걸 매번 느꼈다.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뭔가 차트를 사전에 여러 번 확인했고, 환자들은 교수에게 할 질문을 놓칠까 봐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감히 그런 시간을 잊고 나는 화장실 따위에나 와 있는 거다. 하지만 며칠 만에 지금 똥님이 나오겠다는데 워낙 교수가 대수냔 말이다. 만약 내가 회진에 참석해서 워낙 교수에게 ‘똥이 안 나와요. 어떡하죠?’ 이런 류의 질문을 던졌다면 워낙 교수가 마음 씨보다 더 나은 답을 더 이쁘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데 만원을 걸 수 있다. 변비약 처방했어요? 네 했습니다. 먹어보고 안 되면 나중에 관장합시다.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말할 것이다. 정말이지 관장을 하기는 싫다. 똥만큼은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
병원 매점에 가서 유산균 음료를 잔뜩 사서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 문을 여니 명절에 집에 가지 않고 병원에 있고 싶다며 퇴원을 미룬 목포 댁도, 항암 부작용으로 퇴원이 미뤄진 마음 씨도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성공했어요?"
대답할 힘도 없다. 고개를 젓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동안 유튜브를 뒤져서 ‘변비에 좋은 지압점’, ‘변비에 좋은 혈자리’, ‘변비를 해결하는 운동법’ 이런 영상들을 수십 편 보고 따라 해 보았지만 뭐 하나 듣는 게 없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변비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으니 관장밖에는 방법이 없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다음 날부터는 얼굴색이 노랗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온몸의 기가 막히고 독소가 몸 구석구석으로 펴져 가는 상상이 나의 의지랑 상관없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뱃속이 가득 찬 느낌 때문에 밥도 잘 들어가지 않아서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식판을 물렸다. 식판을 내가며 간병인 선생님이 걱정하셨지만, 음식이 꼴 보기도 싫었다. 지하에 있는 화장실에 들락날락하기를 다시 수십 번 하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했다. 지쳐서 복도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동생이다. 따뜻한 음성이 묻는다.
"언니야 밥 먹었어? 똥은 눴어? 컨디션은 어때?"
"똥은 아직이고 밥도 못 먹겠고 상태는 몹시 나쁨이야."
"언니야, 왜 밥을 못 먹었어?"
"안 들어가네. 앞에 들어간 애가 안 나오니까 뒤에 들어가는 애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 같아."
"언니야. 앞에 들어간 애가 안 나오면 밀어내기 하면 되지. 가서 밥 먹어."
와~ 이 이과 가스나! 뭔가 선명하다. 그래! 밀어내는 방법이 있구나. 그럴싸하다. 밥을 안 먹을 일이 아니구나.
서둘러 병실로 올라왔다. 냉장고에 먹을 게 별로 없다. 다음 식사 때까지 두어 시간 기다리기로 한다. 그 시간 동안 불행에 순위 매기기 놀이를 해 본다. 나와야 할게 안 나오는 게 더 불행하냐. 아니면 나오지 말아야 할게 나오는 것이 불행하냐.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가 더 불행한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니 건강검진 때마다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하제를 복용하던 그 괴롭던 시간들마저 '그래도 그때가 더 나았어'라는 생각이 든다. 아~ 맞아. 그 하제. 그 하제를 먹으면 시원하게 나왔었는데, 그 하제를 구해봐야겠다. 인터넷에 검색을 시작했다. 그 하제는 대부분의 성분이 나트륨이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맛이 좀 짭짤했구나. 그러면 소금물을 먹으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검색을 해보니 대장 청소에 소금물을 이용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소금을 구할 수는 없지만, 소금물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식사 때마다 나오는 국이 간이 되어 있지 않은가. 유레카~!
식사 시간에 식판이 배달되자마자 국부터 다 들이켰다. 들어가지 않는 기분을 마구 야단쳐 가면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평소 같았으면 젓가락으로 건더기만 건져 먹고 말았을 텐데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먹은 것은 처음이다. 밀어내기 전략에 다들 협조해 줘서 마음 씨와 목포댁의 국물도 가져다 더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 날 아침 지하에 있는 그 화장실에서 나는 똥을 누었다. 수술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항문이 좀 찢어졌지만 아픔보다 반가움이 컸다.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똥이었다. 반가워서였는지 힘들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물도 좀 훔쳤다. 병실에서 모두에게 축하도 받고 차트에 동그라미도 올라갔다. 병실 환우들은 처방받은 변비약이 쌓여서 효과를 봤을 거라는 설, 때가 되어서 나왔을 거라는 설 등을 얘기했지만 나는 밀어내기 전략이 먹혔다고 믿고 있다. 위에서 마구 밀어내는데 장이 계속 잠만 잘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똥 누기 사건 후 나는 화장실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물부터 내리는 결례를 저지르지 않는다. 내가 눈 똥을 잘 관찰하고 ‘나와줘서 고마워.’라고 미소를 보낸 후에 물을 내린다. 이 귀한 행복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으니 무의미한 일주일은 아녔던 듯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똥을 만나는 즐거움이 매일매일 이어지기를~!
from 49세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