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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Oct 07. 2024

11 글쓰기는 외줄타기일까?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 (11)

   지난주에 예고한 대로 이번 주는 급우들의 글을 공유하였다. 번쩍 손을 들었던 마리 님이 결석하셔서 네 분의 글을 보았다. 강사 님 예측대로 글쓰기에 두려움 없는 분들이 맞나 보다. 어쩌면 다들 이렇게 술술 잘 쓰셨을까. 다음 주에는 내 글을 올리겠다고 손을 들 용기가 쑥 꺼져 버렸다. 


  같은 글을 보며 여러 명이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공부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읽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히는지 비교하니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점으로 보이는 부분이 같은 이유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은 신선한 비유로 많은 급우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백열전구가 부푼 빵처럼 반짝이던 시간에’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를 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그다음 문단과 문장에도 비슷한 강도의 비유가 이어지자 점점 부담스럽기 시작했고 이 분께서 다음 글은 비유로 승부하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또 어떤 글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름답기만 하다는 평을 받았다. 어떤 글은 우리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족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심리 묘사가 섬세하고 솔직하게 담겨 있어 나도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하지만 공감이 많았다는 얘기는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다른 측면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두려움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요?라고 했던 강사의 말이 이해됐다. 각자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을 썼는데 그것이 곧 자신의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에 매여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럴지라도 나아가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산다는 말과 동의어인 이들은 계속 써야 한다. 다만, 자신이 가진 양면의 칼날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신이 가진 양면의 칼날에 대한 인식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글. 그런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외줄 위에 있는 심정으로 딱 필요한 언어들만으로 이어가야 하는 직업인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떤 칼날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알게 될 때까지 자꾸 쓰고 독자님들께 자꾸 보이고 하는 수밖에 없겠지. 


   이번 주 과제도 ‘날 좀 보소’하는 두 문단의 글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2장의 글을 써와서 그런지 차라리 긴 글을 쓰는 것이 더 쉽다. 두 문단만 쓰려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투덜대지 말고 일단 써 보자.                     



제목 : 라푼젤! 네 손으로 잘라!


        아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보고 있다. ‘엄마는 다 알아. 엄마 말을 들으렴.’, ‘널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야.’, ‘세상은 아주 무서운 곳이야.’, ‘엄마는 널 도와주려고 그래.’ 내 어머니에게서 자주 듣던 말을 영상 속 마녀가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아들 옆에 앉아서 애니메이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라푼젤의 긴 머리를 빗기면서 마녀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엄마가 딸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딸이 어리고 순진하고 엄마에게 의존할수록 엄마는 ‘예쁘고 착한’ 딸을 둔 젊은 엄마이자 말 잘 듣는 이를 둔 권력자로 살 수 있다. ‘네 머리는 네가 빗어라’라고 말해주며 딸을 세상에 내보낼 용기, 딸이 성장하는 만큼 자신은 늙어갈 수 있음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져야만 엄마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되도록 양육했음에도 라푼젤에게 마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몰래 성밖으로 탈출한 라푼젤의 갈팡질팡 대사는 어느 시절의 내 마음 같아 익숙하다. ‘지금이 내 인생을 시작할 때야.’, ‘어떡해~ 엄마한테 죽었다.’, ‘정말 좋아.’, ‘난 정말 나쁜 딸이야. 돌아가야겠어.’, ‘다신 돌아가지 않을 거야.’,  갇혀 있던 성에서 나오고 엄마와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이 혼란과 죄책감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마녀와 함께 자발적으로 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라푼젤 자신이었다. 우리 모녀도 따로 산다거나 죽음으로 이별한다고 해도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영상 속에서는 위기의 순간 남자주인공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를 먼지로 만든다. 짧게 만난 남자도 아는 해결책을 라푼젤 자신은 왜 모른단 말인가. ‘라푼젤’을 보고 있는 라푼젤이여! 네 머리카락을 스스로 빗어본 적도 없고 빗을 수 없다면 차라리 네 손으로 잘라 버려라! 착하고 예쁜 딸 노릇을 벗어던져라. 네가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살아야 모친도 마녀의 삶은 먼지처럼 녹아내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갈 길을 얻게 될 것이다.



  2문단 쓰기는 구구절절 수다떨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다. 꼭 필요한 문장들만 살아남았는지, 그 문장들로 완성된 요리를 만들고 있는지 독자들의 시식평이 궁금하다. 





from 51세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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