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명분 따라 움직인다

by 이영범

내가 평소에 농담조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순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설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일이겠는가 마는, 사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다.


우리 집에는 애완견 한 마리 있다. 식구도 적고, 늘 혼자 생활하는 애들의 성격 형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부가 회의 후 큰 결심을 하고 동물병원에서 무료로 분양받았다. 입양 후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아서 결과는 대만족이지만, 애완견을 한 마리 키운다는 건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사료나 용품들 구매하면서 드는 비용은 목표 달성한 대가라 생각하고 지불하면 아까운 비용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은 바로 애완견의 털을 깎는 일이다. 처음에는 동네 동물병원에서 깎았는데 조그만 애완견 한 마리 털을 깎는데 무려 3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이발 비용 7천원의 네 배가 넘는다. 한 번 깎고 오래 가는 것도 아니다. 이 녀석은 털이 자주 자라서 사람처럼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깎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긴 털이 집안을 돌아다녀서 가족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하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깎아줄 수밖에 없다. 여자인 아내보다도 더 미용 비용이 많이 드는 애완견이라니 참...


돈을 아끼기 위해서 직접 털을 깎을 결심을 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서 애완견 제모기를 검색하여 6만 원 정도에서 괜찮은 제품을 하나 구매했다. 집에서 두 번만 깎으면 기계 값의 본전을 뽑고 세 번째부터는 공짜로 깎는 셈이니 잘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애완견의 털을 깎던 날, 나는 왜 동물병원에서 3만원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하고 둘이 붙어서 한 시간에 걸쳐서 깎는데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온 몸이 아팠다.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돈을 들여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숙달이 되면 낫겠지’ 하는 생각에 계속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서 잘 깎고는 있지만, 아직도 나는 동물병원에서 애완견 털 깎는 비용으로 3만원을 받는 게 절대로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강남에 사는 한 친구는 이발 비용이 14만원이라고 한다. 나는 동네 미용실에서 7천원이면 이발한다. 둘이 만나 보면 헤어스타일은 별로 다르지 않다. 내가 강남에서 이발했고 그 친구가 우리 동네 미용실에서 이발 했다고 해도 주변에서 다 그렇게 믿을 정도로 남자의 헤어스타일은 그게 그거다.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강남의 유명 미용업소라서 비싸다?’ 그럼 강남의 그 유명한 미용업소가 우리 동네로 오면 얼마를 받아야할까? 14만원? 7천원? 아니면 그 중간 적당한 수준? 그럼 만약 우리 동네 미용실이 강남으로 가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유명 디자이너의 미용업소는 아무데서나 14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 동네의 미용실은 어디를 가든 7천원을 받아야할까? 실제로 그렇게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고객이 불만이 없으면 된다. 우리 동네에서 7천원에 한 이발과 똑같은 스타일을 강남에서 14만원을 주고 했다 하더라도 그 고객이 만족하면 그것이 가격이고 그것이 명분이다.


돈은 고객이 내는 것이다. 어떤 돈은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로 내기도 하지만 어떤 돈을 스스로 만족해서 내는 경우도 있다. 고객이 억지로 돈을 내게 하는 사업은 곧 망하겠지만 스스로 만족해서 돈을 내게 만든다면 그 사업은 성공할 것이다. 고객은 명분을 제공하면 돈을 꺼내고, 사업가는 그 명분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 사업이 동네 문구점이든 무역업이든, 그 고객이 초등학생이든 외국인이든, 고객과 명분이 맞으면 사업은 이루어진다. 삼성전자 제품의 가격이 다른 회사 전자제품의 가격 보다 비싸더라도 고객이 그 금액을 지불하고 사는 이유는 삼성전자에서 고객들로 하여금 그 금액을 지불하도록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업가는 사업을 할 때 고객이 왜 내 제품을 사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그것이 바로 명분이다. 그것이 거래를 성사시킨다. 나는 그 ‘왜?’를 매일 생각한다. 왜 소고기는 돼지고기 보다 비쌀까? 왜 강남은 강북 보다 물가가 비쌀까? 좀 바보스러운가? 하지만 우리가 평소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아닐 수도 있다. 고객이 왜 이번 달에는 내 제품이 아닌 다른 회사 제품을 구매했을까? 과연 다음 달에는 내 제품을 다시 구매해줄까, 아니면 이번 달에 구매했던 다른 회사 제품을 계속 구매할까?


'왜'를 알아야 '어떻게'가 나온다. 평소 거리를 다니면서 주변을 둘러보라. 그리고 마음속으로 ‘왜’를 항상 생각해보라. 그러면 내가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와중에 사업거리가 보이게 된다. ‘나도 저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사업의 기초는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