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기만의 가계부를 써야한다

by 이영범

2002년경으로 기억한다.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시간도 떼울 겸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기사님은 얼핏 뵙기에 택시운전을 하실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택시기사 얼굴이 따로 있나요? 택시운전을 하면 택시기사죠.”

“그래도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택시운전을 오래하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건 맞습니다. 저는 택시기사를 한 지 일 년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실례지만 택시기사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저는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2차 벤더회사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러다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지요.”

“기아자동차에 근무하셨던 모양이죠?”

“아뇨, 기아자동차 1차 벤더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독립하여 2차 벤더회사를 설립한 거죠.”

“그럼 그 때 1차 벤더회사도 부도가 났겠네요?”

“그렇죠. 1차 벤더회사가 부도가 났으니 2차 벤더인 저희 회사도 연쇄 부도가 났죠.”

“부도가 나더라도 상대가 기아자동차이면 참고 기다리면 나중에 회복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1년을 버텼는데 기아자동차가 회생이 안 되어서 최종 부도가 난 겁니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회복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만약 기아자동차가 1년 만에 회복이 되었다면 저희 회사도 회복이 되었을 겁니다.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2년 후에 현대자동차에서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 기아자동차의 직접 채권을 가지고 있던 1차 벤더회사들은 모두 회복되었지만 1차 벤더회사들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2차 벤더회사들은 회복되지 못했죠.”


그러면서 그 택시기사는 한 때 자신이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았던 때를 회상했다.


“당시에 저는 참 바빴습니다. 주문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쉬지도 못하고 풀로 공장을 가동했었습니다. 순수익이 한 달에 6천만 원이나 되었는데 저는 수익이 그렇게 되는 지도 몰랐습니다. 3개월 후에 통장을 보니 2억에 가까운 돈이 있더군요. 돈은 들어오는데 쓸 시간이 없으니 돈이 모이더군요. 그러다 여유가 생기니 다른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아내한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다른 여자도 돌아보게 되더군요.”

“결국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모인 거군요.”

“네. 하지만 돈이 모인 건 그래서 모였지만 제가 지금 택시기사를 하는 건 내가 나 스스로를 잘못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돈이 그렇게 벌릴 걸로 생각하고 소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모은 돈의 10퍼센트만 저축했어도 지금 이렇게 택시기사를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자기 관리라 하심은 여자한테 관심을 가지신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그게 결정적인 건 아닙니다. 남자가 사업을 하면서 돈을 좀 벌면 잠시 한 눈 파는 게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집 살림을 하지만 않는다면 사업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좀 푸는 건 큰 죄는 아니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럼 기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관리는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비를 관리했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제까지나 제 수입이 그렇게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면 안 되었던 겁니다. 언젠가는 제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비하여 저축도 하고 소비도 관리했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지금 이렇게 택시기사를 하면서 매일 어렵게 살고 있는 겁니다. 자업자득이지요.”


나는 2007년 1월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가계부’라는 책도 있지만 나의 가계부는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 보다 더 훌륭하다. 너무 작은 금액까지는 기재를 안 하지만 백 원 단위까지는 기재를 한다. 그리고 매월 말 그것을 항목별로 정리를 한 후 나의 한 달간의 생활을 분석하고 반성한다. 그런데 매 월말이 되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는데 왜 이렇게 금액이 크지?’ 그렇다. ‘적소성대’라는 말은 저축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만 원짜리 사소한 소비들이 모이니 내가 상상하지 못한 금액이 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당연한 얘기를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하느냐’고 핀잔을 줄 지 모르지만, 그냥 알고 있는 것 하고 직접 그것을 보는 것 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아플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하고 당해서 직접 아픈 것 하고의 차이나 마찬가지다.


쪼잔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남편들도 가계부를 써야 한다. 아내가 쓰는 가계부는 생활 가계부이지만 남편이 쓰는 가계부는 가족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미래 가계부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에서는 아무리 아껴도 남길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남편이 쓰는 가계부에서는 남길 수 있는 항목이 많고 그것을 모으면 나중에 목돈이 된다. 적소성대,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이다. 남편이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면 첫째, 택시를 타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고, 둘째, 술을 마시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가계부를 쓰고 나서 내가 바뀐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일 년에 택시를 타는 횟수가 한두 번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가능하면 집에서 마신다. 술값도 싸지만 안주 값까지 계산하면 한 번에 몇 만원이 절약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술을 마시는 내 입장에서 그것을 한 달간 모아서 계산하면 십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여기서는 제일 눈에 띄는 술값만 얘기했지만 내가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남편들에게 권하노니, 남편들도 가계부를 쓰기를 권한다. 지금은 노트에 가계부를 쓰지는 않는다. 엑셀파일로 정리하면서 스마트폰 앱에 동시에 입력한다.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 카드 사용의 경우에는 직접 입력할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입력이 되고, 엑셀파일의 경우에는 나중에 항목별로 소팅하여 분석할 때 유용하다. 먼저 3개월만 가계부를 써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아마 본인이 생각했던 것하고는 전혀 다른 결과에 놀랄 일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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