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시술 #난임일기
채취 날짜가 잡혔다! 정말 길고도 요상한 일주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열흘정도. 이틀 뒤 아침에 채취가 예약되어 있고 내일은 시술 전날이라 주사가 없다. 그러니 오늘 저녁에 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난포 터뜨리는 주사가 채취 전 마지막 주사이고 동시에 아프기로 악명이 높은 주사다. 정확한 시간에 알람을 맞춰두고 오 분 안에 주사 세 방을 파바박! 꼭 지켜야 하고 맞은 후에 주사기도 챙겨 와야 한단다. 약을 남김없이 제대로 주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오늘은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은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남편은 운전을 하며 나 혼자 이 길을 다녔을 생각을 하니 이상하다고 했다. 익숙지 않은 길을 혼자 운전해 다녔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다고. '평소엔 이 길로 안 다녔는데? 평일엔 여기 막혀' 파워 T 와이프의 냉소적 답변으로 한 번 킥킥대고. 다리를 건너는데 안개 낀 뿌연 하늘에 공장이 있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 게 꼭 세기말 같다.
'세기말 같다.'
'전쟁 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휴전국가야. 진짜 전쟁 날 수도 있어. 그래서 내가 컵라면이랑 소세지 쟁여둬야 한다고 하는 거야.'
'그게 전쟁대비 비상식량이면 매일 먹어치우면 안 되지. 잘 쟁여둬야지.'
'팩트로 팍팍 잘 패네.'
마트에 가서 장 볼 때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나 라면, 가공육을 잘 못 사게 하는데 남편이 하는 볼 멘 소리. 특히 정자채취 직전인 요 근래 조금 팍팍하게 굴었더니 더 하다. 지나가는 시시껄렁한 농담인데 나는 속으로 아주 조금 야속했다. 다 몸에 좋으라고 잔소리하는 건데, 그리고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되는 거고, 남편은 정자채취 후에 훨씬 자유로워질텐데- 하며. 물론 남편은 아무 뜻도 없이 가라앉아있는 와이프 기분 풀어주려고 애써주는 건 줄 잘 알면서도 입을 삐죽거린다. 미안한 마음과 별개로 나도 내 마음이 참 어렵다.
살이 푹푹 찐다.
풍선을 훅 훅 불면 눈앞에서 부푸는 게 보이는 것처럼 아침마다 배와 그 주변부가 부푸는 게 눈에 보인다. 물론 몸무게 숫자도 쭉쭉 오른다. 흔한 부작용 중 하나라고 한다. 오늘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 간의 증상들 모두 호르몬의 변화로 입덧의 증상과 매우 유사하며 입덧 미리 보기?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하신다. 묘하게 위로가 되면서도 본편 걱정이 함께 되기도 한다.
아침에 병원으로 출발 전 화분을 들여다봤다. 제일 처음 난 싹이 시들해졌다. 혹시 몰라 한 구멍에 씨앗 두 개씩을 심었는데 겹쳐 자란 새로운 새싹에 영양분을 빼앗겼는지 잎이 다 쪼그라들었다. 새로 자란 싹을 위해 뽑아주기로 하고 잡아당기는데 세상에나 생각보다 길게 뽑혀 올라온다. 겉으로 나와있는 길이의 네, 다섯 배는 되는 줄기가 올라오는데 괜히 잘 자라고 있는 싹을 죽인 기분이라 영 찜찜했다. 주사 3일 차에 혼자 크게 자라는 난포가 먼저 터져버리지 않도록 조절하는 주사를 추가했었다. 나도 영양제를 주고 옮겨심거나 해줬어야 했던 걸까? 짧은 시간 동안 이리저리 생각하다. 그만- 이상한 생각엔 깊게 빠지지 않기로! 오늘은 식물 영양제 사다 찔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