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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어볼까? #2

#시험관시술 #난임일기

by 유예지

괜히 서럽다. 정말 호르몬의 영향이라도 있는 건지 평소보다 예민하고 서운하다. 약간 어지럽고 매스꺼운 게 꼭 멀미를 하는 느낌이지만 그건 참을만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남편의 장난스러운 이모티콘 하나에도 울컥한다. 그리고 이 감정이 정말 이해가 안 되고 하찮아서 한 번 더. 그러다 내 눈치를 과하게 살피는 남편이 또 안쓰럽다. 남편에게도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와이프는 처음일 테니까.


오늘로 시술은 딱 일주일째 진행 중이다. 호기롭게 매일 일기를 쓰겠다 다짐했지만 4일 차 되는 날 세 개로 늘어난 주사와 따라오는 부작용 때문에 헤롱거리기 바빴다. 어디가 끔찍하게 아프거나 꼼짝 못 하게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머리에 뭉근하게 지속되는 두통, 진 빠지는 느낌의 어지러움, 가스차고 부풀어 불편한 복부, 호르몬의 농간인지 널뛰는 감정까지 콤보로 합쳐져 이마에 '시험관 시술 중'이라고 써 붙여 둔 것 마냥 지내버렸다. 게다가 배는 어찌가 또 고픈지. 평소 입이 짧고 과식이나 야식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사람인데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파 혼났다. 저녁을 평소보다 든든히 먹었음에도 자기 직 전에 배에서 천둥번개 소리가 나고 배주사를 맞아 손을 발발 떨며 어질어질하고 매스꺼운 와중에도 배가 서럽게 고팠다. 간호사님이 주사 부작용을 설명해 주실 때 '진짜 임신한 것처럼 그래요' 했던 말이 생각났지만 임신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 느낌을 알 수가 있나. 잘은 모르지만 진짜 임신을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겠지. 그렇다면 지금처럼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 가짜 증상이 있는 것보다 육체적으론 힘들겠지만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참을만할까? 아니면 그러거나 말거나 더 힘들게 될까? 아니면 끝이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지금이 더 힘든 걸까?


거실에 심어둔 씨앗들은 아주 사랑스럽게 싹을 틔웠다. 로즈마리는 감감무소식이지만 바질은 오와 열을 맞춰 뿅 뿅 자라고 있고 방울토마토는 딱 하나 새싹이 나더니 자라는 속도는 제일 빠르다. 정말 쑥쑥 자란다. 아침이 되면 새로 발견되는 아주 작은 새싹들, 너무나도 지난밤과 다른 이파리의 모양. 공교롭게도 정말 시기가 딱 겹쳐 자라는 새싹을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오늘 초음파를 보는데 올망졸망 자란 동그란 난포들이 꼭 새싹 같다. 삼일 전 보다 자라 있는 난포들이 새싹들과 겹쳐 귀엽게 느껴졌다. 너희도 잠시도 쉬지 않고 자라고 있겠구나. 그렇게 자란 모습을 눈으로 보고 오니 괜히 힘이 난다. 내가 배에 놓는 주사들이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무시무시한 화학약품이 아니라 화분에 주는 애정 가득 영양제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한 것처럼.


이제 4일 뒤에는 채취와 수정이 예정되어 있다. 조금 힘들고 무서운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그럴 때마다 재빨리 새싹으로 치환해 생각해야지. 이 세상 모든 난임부부들 화이팅! 앞으로 시험관을 앞둔 지인이 있다면 아주 발아를 잘하는 씨앗을 선물해 봐야지. 이거 제법 괜찮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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