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 #난임일기 #1일차
회식으로 늦게 들어온 남편을 기다리다 불가항력으로 잠에 빠졌다. 11시가 넘어서는 갑자기 배가 많이 고파서 살짝 서럽기까지 했다. 멀고 먼 출퇴근과 잦은 회식까지, 고생하는 남편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난임병원에 다녀온 날은 어쩐지 서글프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님들이 다들 '아빠는 안 오셨어요?', '남편분은 같이 안 오셨나요?' 하고 계속 묻기 때문일까? 퇴근 후 씩씩하게 혼자 저녁 걷기 운동도 다녀오고 단백질바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씻고 눕자 잠이 쏟아진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날이라 남편도 궁금한 게 많을 테고 나도 조잘조잘 하루가 어땠는지 떠들고 싶었는데 결국 카톡으로 배고프다고 칭얼대다 잠들어버렸다. 어렴풋이 들어와 잘 준비하고 잘 자라며 이마에 뽀뽀해 준 듯한데 비몽사몽 기절.
새벽에도 눈도 못 뜨고 남편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잠에 취해있는 얼굴에 뽀뽀해 주고 나갔는데 오늘은 유난히 더 몽롱한 상태. 남편의 출근 시간은 6:30 정도, 나는 보통 그 후로 한두 시간 더 자고 8시쯤 일어나 월, 수, 금에는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필라테스 수업을 들으러 간다. 보통은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그리고 전 날 저녁에 설거지해 둔 그릇을 정리하고 그날그날 다른 약간의 집안일을 한다. 오늘은 눈 뜨기 전부터 주사 걱정을 했다.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다니!! 어제 남편한테 한껏 호들갑도 떨었어야 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미적대다 8시 30분에 일어나 후다닥 양치만 하고 운동하러 내려갔다. 월요일에는 폼롤러로 스트레칭 위주이고 수요일엔 밴드로 근력위주, 금요일엔 보수볼로 유산소를 하는데 오늘은 늦잠 자는 바람에 물도 못 마시고 내려와 유산소 하다가 눈앞이 하얘져서 혼났다.
물부터 잔뜩 마시고 씻고 나와서 주사기를 꺼냈다. 어제 배운 대로 바늘을 장착하고 용량도 설정 완료. 운동하고 어지러워서 그런지 주사가 무서워서 그런지 온몸에 힘이 빠지는 동시에 어깻죽지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덤. 알코올솜으로 쓱 쓱 소독하고 뱃살을 집어 본다. 어깨 돌려가며 힘 도 좀 빼보고 한숨도 푹 내쉬고. 바늘이 너무 길다.. 한 번에 꽂아야 안 아프다고 하셨는데- 다시 배를 찰싹찰싹 때려본다. 이렇게들 하시던데- 출근해야 하니 더 시간 끌면 안 된다- 숨 크게 들이쉬고 푹- 끝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눌러 주사액을 주입했다. 오잉? 안 아픈데? 생각보다 수월해서 겁먹고 호들갑 떤 게 혼자 있는데도 조금 부끄럽다. 바늘은 알아서 살에 박히는 느낌이었고 주사액 들어가는 느낌도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할 만하군! 혼자서 큰 숙제를 가볍게 넘긴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출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사 개수가 늘 거라고 하긴 하셨지만 가장 큰 산은 넘은 기분. 시작이 좋다! 괜스레 기분 좋아서 아직 아무런 변화도 없는 화분에 분무기로 물 챱챱주고 상쾌한 하루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