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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여름, 첫 번째

Copenhagen

by 섭디투

2022년 여름, 나는 군 입대를 하기 전 두 달 동안 덴마크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여자친구도 일주일 뒤에 부산에서 덴마크로 날아와 합류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두의 기대가 큰 휴가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LA에서 곧바로 파리로 몸을 실었고 파리에서 코펜하겐으로 경유했다. 파리 Charles de Gaulle 공항은 3번째 방문이었는데, 늘 목적지는 덴마크여서 단 한 번도 파리 시내로 나가본 적은 없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에어 프랑스 항공기는 여기 다 모아둔 것 같은 풍경이 보이면 진정 프랑스에 왔다고 할 수 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Kastrup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덴마크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공항 안에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차로 이동했다. 유럽 애들은 당연히 수동차를 몰고 다닌다. 수동 미션 특유의 템포가 몸으로 느껴진다. 도요타 야리스에 짐을 구겨 넣고 친구들과 좁은 자리에 어깨를 나란히 앉으니 내가 유럽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쾌히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준 친구를 위해 LA에서 기념 선물을 준비했다. 사실 당시에 덴마크에서 만나기 전 이미 LA에서 함께 다저스 경기를 봤었다. Mookie Betts 저지를 선물해 주니 정말 좋아했다. 여담으로 2024년인 지금까지도 아끼는 마음으로 택을 때지 않고 보관 중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 메이저리그 유니폼의 가격이 유럽 축구팀 유니폼에 비해서 말이 안 되게 값이 나가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왜 비싼 거지?

다음날 아침 일찍 차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로 갔다. 여름에는 처음 방문하는 덴마크여서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덴마크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코펜하겐은 여름에 방문하라고 말할 정도로 이 계절을 사랑하고 즐긴다. 겨울보다 차도 조금 더 많은 거 같고 무엇보다 LA에 살다가 유럽에 다시 방문하니 모든 게 작고 가깝게 느껴져서 재밌었다.

코펜하겐은 여느 유럽 국가와 다름없이 중동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이 파는 케밥은 꼭 먹어봐야 한다. 시내에서 친구가 다니는 바버샵에서 머리를 자르고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친구 집 뒷마당에서 덴마크의 유명한 스피커 브랜드인 Soundboks와 함께 노래를 들으며 시가를 즐겼다. 덴마크의 여름은 정말 여유롭고, 따듯하다. 시가는 미국에서 공수해 온 LCA 인증 시가인데, 쿠바산이랑 비교해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고 무엇보다 가격이 좋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코펜하겐 Frederiksberg에 위치한 식당을 갔다. Frederiksberg는 덴마크 사람들이 특히 사랑하는 동네라고 말한다.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나무가 예쁘게 서있고 길가에는 다양한 노천 레스토랑이 즐비해서 길을 들어서자마자 동네 특유의 세련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Frederiksberg 시내

여유로운 코펜하겐 시내의 모습이다. 덴마크는 사람들이 정말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 국가이다.

Frederiksberg의 메인 도로를 쭉 걷다 보면 끝에는 Frederiksberg Have라는 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에 덴마크 왕족이 쓰던 여름 별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별장 앞 잔디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호수 주변에는 줄지어 다니는 오리도 많은 아름다운 공간이다. 유럽의 조경과 그 속에 들어있는 역사 보존은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저녁에 친구의 부모님이 이웃을 불러서 뒷마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은 덴마크에서 매우 유명하고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간편하게 자주 먹게 되는 오픈 샌드위치다. 빵 위에 해산물, 고기, 캐비아, 버섯 등등 다양한 재료를 올려서 먹는 음식이다.

메인 요리로는 고기류를 감자와 함께 먹고 디저트로는 머랭 케이크를 준비해 주셨다. 덴마크 어머니들은 케이크를 수준급으로 만든다. 딸기도 현지 미슐랭 레스토랑에 공급되는 딸기를 직접 공수할 정도로 상당히 공을 들여서 만들어내는 홈 메이드 소울 푸드다.

덴마크는 겨울에 오후 3시만 되어도 해가 곧바로 진다. 봄, 가을에도 마찬가지로 해가 따듯하거나 길게 떠있지는 않기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고, 그래서 개인 공간에 대한 고찰을 통한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발전하고 펍을 비롯한 음주 문화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여름은 밤 11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암막 커튼이 없으면 제시간에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이다. 매년 짧은 여름이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파티도 많이 하고, 집 근처 호수에서 수영도 자주 즐긴다. 도시 자체도 겨울에 비해 훨씬 분주해지고, 활발하다. 덴마크의 여름은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밝고 신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국가를 갔을 때 그 도시에 대한 다름은 항상 느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색다름을 느낀 건 덴마크 코펜하겐이 처음이었다. 도시 전체가 여름을 즐기기 위해 깨어나 있는 그 에너지에서 오는 다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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