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enhagen
나는 첫 한 달을 코펜하겐의 Suburb라고도 할 수 있는 Værløse에서 머물렀다. 코펜하겐과의 거리도 메트로를 이용해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우면서 예쁜 동네다. 코펜하겐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일단은 Central Station에 내린다. 당연한 선택이자, 가장 실용적인 목적지라고 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교통 중 하나인 DSB 메트로는 한국의 지하철과는 달리 공간이 더 넓고, 기차에 가까운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전거 수십 대가 들어와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감성이 조금 다르다.
열차의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덴마크의 물가를 고려하면 가장 합리적인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이 지나 여자친구도 무사히 덴마크로 넘어와 다 같이 Louisiana 현대 미술관에 놀러 갔다. Louisiana 현대 미술관은 코펜하겐에서는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편하다. 워낙 건물 자체의 건축도 아름답고 세계적인 미술관인지라 가지고 있는 컬렉션도 대단하다. 여자친구도 덴마크에 오면 이곳을 정말 가보고 싶어 해서 곧바로 달려갔다. 건물이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한 덕분에 날씨도 선선해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Louisiana 현대 미술관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큰 창을 통해 바라보는 미술관의 정원은 사계절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재밌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봄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건물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아이코닉한 공간이다.
빨간 타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채광, 곳곳에 노출되어 느낄 수 있는 원목의 질감 등 Louisiana 현대 미술관을 거닐며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공간에 흡수되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데 큰 힘을 보탠다. 나는 이곳의 건축과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분명히 다른 건축물에서도 사용하는 내장 재질이며 요소들이지만 이 공간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냥 내가 덴마크를 많이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엄청난 Hype을 받는 Yayoi Kusama의 전시도 있었다. 여기서는 줄을 거의 서지 않고 곧바로 들어갈 정도로 한산했다. 이곳에 전시된 Kusama 작품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예상했던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다.
Louisiana 현대 미술관의 야외 공간. 반대쪽에 보이는 땅은 스웨덴이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여름을 느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Louisiana 현대 미술관 야외 공간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플레이팅도 예쁘지만 맛도 훌륭했다. 덴마크는 흡연자들이 어디서든 편하게 흡연할 수 있다. 이렇게 미술관 안에 있는 식당에 가도 재떨이가 마련되어 있고, 주변에 앉은 사람들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당연히 여기도 어린 아이나 아기들이 있으면 예의상 담배를 태우지 않는 것은 똑같지만 축구장, 기차역, 식당, 길거리에서의 흡연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집 근처에 점심을 먹으러 갔었던 Stegt Flæsk 버거다. Stegt Flæsk는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인데 덴마크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고, 정말 고소하면서 근사한 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옆에 보이는 덴마크의 칠성 사이다, Faxe Kondi. 덴마크도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워낙 자부심이 강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어서 뭐든지 덴마크 제품이면 극찬을 하며 추천한다. 친구들의 말로는 스프라이트나 한국의 칠성 사이다와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뭔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사이다 소믈리에가 아니라서 알 길이 없다.
친구들, 그리고 여자친구와 다 같이 Værløse 동네에 있는 활주로에도 산책을 다녀왔다. 이곳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덴마크를 점령하면서 만든 군용 활주로라고 한다. 활주로의 길이가 현재 코펜하겐의 Kastrup 국제공항만큼이나 길다고 하는데 실제로 활주로에 가서 서보니 너무나도 광활하고 길었다. 재밌는 사실은 지금 현재는 개방된 상태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어서 사람들이 동네의 지름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은 우리에게 아직 활주로 주변의 지뢰를 다 치우지 못했을 거라며, 알아서 조심해서 걸어라는 짓궂은 장난을 친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도 장난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활주로에 다녀온 날 저녁에는 또다시 집에서 동네 이웃, 친구들과의 만찬이 있었다. 덴마크는 케밥과 마찬가지로 후무스가 상당히 맛있다. 우리 둘 중 그 누구도 중동 지역은 아직 안 가보았지만 여자친구의 말로는 여기서 먹은 후무스가 그 어느 곳에서 먹은 후무스보다 맛있었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아직까지 Hotel Værløse에서 먹은 후무스를 이긴 곳은 없다.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해 주던 친구는 항상 자기 집을 "Hotel Værløse"라며 농담을 했었다.
천상계 맛의 딸기 케이크. Hotel Værløse에서 나오는 시그니처 메뉴이다. 과즙이 가득한 딸기와 그 밑에는 생크림 베이스와 바닥에 깔려있는 초콜릿의 조화가 탄성을 자아내었다. LA에서도 다양한 파이와 케이크를 경험했지만 이 케이크는 특별했다.
평소에 많이 걷지 않는 내가 코펜하겐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이 도시를 특별하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느껴지는 분위기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유럽 안에서도 코펜하겐의 색깔은 돋보인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큰 운하에서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태닝과 수영을 즐기며, 크고 작은 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도시의 에너지는 뜨겁지만 시끄럽지 않고, 걸어 다니기에도 편안한 분위기다. 한 번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이 도시를 걷고 싶어 하는 걸까. 도로 위의 차량이 적은 것이 원인일까? 그럴 수도 있다. 또한 코펜하겐은 유럽 특유의 보행자 중심 도시 구조와 상업 구역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고, 동시에 도시의 운하를 따라 이곳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여유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구조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며 걷고, 또 걸으면서 구석구석 재미를 찾게 되는 그런 도시가 아닐까.
이 날 우리는 Værløse 마을의 옆 친구집에 가서 바비큐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집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마당과 구조는 같은 마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들의 집이 부럽기도 하다.
덴마크에 머무는 있는 동안 처음으로 내가 지독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쓰다듬고 안으며 같이 놀았는데 그날로 눈이 꽤 심하게 부어서 고생했다. 이 집고양이는 풀어 키우는 고양이인데, 한번 집을 나가면 2~3주 동안 집 앞 숲에서 살다가 들어온다고 한다. 가끔 먹이를 잡아와서 자랑하듯이 집에 가지고 오기도 한다고 한다. 친구는 고양이가 밖에 나간다고 해서 걱정하지도 않는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 같은 동물은 환경만 받쳐준다면 풀어키우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