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덴마크의 여름, 세 번째

Munich

by 섭디투

두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덴마크에 머물렀던 우리는 독일로 일주일 동안 떠나는 새로운 재미를 계획했다. 마침 친구의 친척 고모가 독일 뮌헨에 거주 중이었고, 친구의 물음에 우리를 너그럽게 자신의 집에서 머물도록 허락해 주었다. 덴마크의 삶에 지친 친구 또한 뮌헨에서 휴가를 즐기고 싶어 했다.

독일의 땅 면적이 넓다는 것은 이미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지나다니며 대충 짐작했었지만, 내비게이션을 통해 체감하는 것은 또 달랐다. 우리는 코펜하겐에서 뮌헨까지 차를 타고 아우토반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1100km 넘는 거리와 12시간 30분이 넘어가는 주행 시간에 친구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덴마크를 떠나기 전 BMW 7시리즈를 제공해 주셨다.

덴마크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다, 두 국가 사이의 교류가 평소에 활발하기 때문인지 검문소에서의 출입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내가 독일에 들어왔다는 것을 옆에서 말해줘서 알았다.

BMW, 에너지 드링크 그리고 레이벤 선글라스

아우토반의 시스템과 전체적인 노면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인상 깊었다. 아우토반은 간단하게 말해서 독일에 깔려있는 고속도로다. 독일은 모든 일을 매우 꼼꼼하고, 천천히 그리고 기술적이게 진행해서 도로를 정비하거나 보수할 때에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신 한 번 보수를 하면 영구적으로 건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마감한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고속도로 노면 상태도 좋은 편이지만 독일의 고속도로는 빙판길이다. 도로 위의 직선 구간 그리고 코너 구간의 진입, 탈출 각이 정말 안전하게 기술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느꼈었고 도로 위의 질서와 수많은 속도 무제한 구간들에 이곳이 운전자의 천국이구나!라고 느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꿈이 아우토반을 달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자란 나 또한 자연스럽게 아우토반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살아왔었는데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BMW를 타고 아우토반을 수천 킬로미터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다.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포르쉐를 1~2대 렌트해서 아우토반을 함께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저녁노을에 비친 독일의 풍경은 무척이나 따듯하고 아름다웠다. 평소에 전쟁에 관심이 많고 관련 영화를 모두 섭렵하는 나에게 남쪽에 위치한 뮌헨까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스쳐 지나고, 셀 수 없는 숲과 농장을 보는 동안 머리 한구석에서는 계속 이렇게 방대한 땅에서 세계 대전을 치렀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전쟁에 인생을 받쳤던 사람들과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침 일찍 덴마크에서 출발한 우리는 반나절이 지난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뮌헨에 도착했다. 플레이스테이션에서 FIFA 게임을 통해 바이에른 뮌헨을 플레이할 때마다 볼 수 있었던 Allianz Arena를 실제로 보니 내가 지구 어디에 위치했는지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었다. 스타디움 외관의 질감이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는 훨씬 투박해서 역시 건축은 실제로 보고 느끼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토반을 벗어나 뮌헨 시내에 들어가기 전 뜻깊었던 로드트립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당시 차량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밖에 보이는 구름의 질감까지 모두 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플래시를 강하게 터트려야 했다.

뮌헨에서 머물렀던 집은 정말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덴마크 사람들이 선보이는 특유의 탁월한 인테리어 감각과 분위기 덕분에 눈이 즐거웠다. Bang & Olufsen 텔레비전부터 집 안의 거의 모든 가구들이 덴마크 정신을 담아내고 있어, 누가 봐도 이 집은 덴마크 사람이 살구나!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독일 속의 작은 덴마크에 들어와 살고 있는 거 같다며 여자친구와 재밌어했던 것이 기억난다. 집이 위치한 동네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축구 선수들도 많이 거주한다고 했었다. 동네의 분위기가 상당히 편안했고 프라이빗하다고 느꼈다. 주변에 위치한 공원도 좋았는데 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며 그들이 이 주변에서 사는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세계 대전 당시 쓰였던 수많은 포로수용소 중 하나인 다하우 포로수용소에 방문했었다. 앞에 보이는 네모난 빈 공간들은 포로수용 건물의 옛 터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천천히 걸으면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나치 군에 잡혀와 불안에 떨며 외롭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당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서 나온 유품이다. 잿더미 속에서도 금니와 보석류는 남아있다. 오른쪽 사진은 미군이 전쟁 도중 다하우 포로수용소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그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이런 포로수용소 시스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전쟁 도중 이곳의 실체를 처음 발견한 미군은 큰 충격에 빠졌었다고 설명한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군을 만난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도와 기쁨이 보인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하는 이 사진을 긴 시간 동안 보았던 기억이 난다.이곳에 오니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가 생각났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다하우 포로수용소는 훨씬 “기계화”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독일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세계적으로 공개하고 보존하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랬다. 그리고 내가 간 날에도 정말 많은 독일의 어린이들이 역사를 공부하러 이곳에 견학을 왔었다.

다하우 포로수용소를 나와 맥도날드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Allianz Arena 스타디움 투어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내가 뮌헨을 방문했던 7월은 비시즌 기간이었지만 투어를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왔었고 팀 스토어도 온전히 오픈한 상태였다. 야구에 미쳐있는 나는 열렬한 축구팬이 아니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남자이기에 경기장에 가까워지니 가슴이 뛰었다. 분데스리가는 세계적인 리그잖아..!

스타디움 투어 전 경기장 안에 만들어진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유럽의 명문 구단답게 다수의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분데스리가 리그 제패를 통한 기념비적인 물건들이 수없이 진열되어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옛날 유니폼들을 보니 과거의 황금기를 뮌헨에서 함께한 팬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클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위에 있는 유니폼은 바이에른 뮌헨이 2012년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선수들이 직접 착용했던 유니폼이다. 아직까지 종종 회자되는 역사적인 명경기에서 사용한 장비가 눈앞에 전시되어 있으니 비현실적이다. 언젠가는 나도 유럽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직관해야 한다. 세상에는 꼭 봐야 할 스포츠 경기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챔피언스리그 경기다.

본격적으로 스타디움 투어를 시작한다. 투어를 하기 앞전에 독일어 가이드를 선택할 것인지 영어 가이드와 함께 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당연히 영어 가이드와 함께 다녔다. 경기장의 좌석 등급, 티켓 가격부터 이런저런 역사까지 정말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재밌었던 일화 중에 하나로는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나 스페인의 라리가와 달리 일반적인 시즌권의 가격이 비교도 안되게 저렴하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시즌권은 워낙 구하기가 어렵고 경쟁이 치열해서 사람들이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이나 웨이팅 리스트를 기다리며 시즌 티켓을 손에 쥔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바이에른 뮌헨의 시즌 티켓을 구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닐까 싶다. 보통 명문 구단의 시즌 티켓은 값이 매우 비싸서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이 되기 마련인데 바이에른 뮌헨은 구단을 응원하는 팬이라면 모두가 공평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구단의 명성을 비롯한 여러 요소들이 재밌는 현상을 만들고 있었다. 역시 스포츠 문화는 위대하다.

경기장 중앙으로 이동하니 광활하고 푸른 피치에 훨씬 가까워져 풀 내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장의 중앙 하단 관중석은 쉽게 말해, 프리미엄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역은 일반적인 티켓 사이트에서는 자리를 구할 수 없으며, 시즌권을 통해 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좌석 자체도 가죽으로 되어있어서 푹신푹신하게 편안했고 레그룸 공간도 넓어서 서포터즈 구역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Allianz Arena도 여느 구장과 다름없이 스카이박스를 비롯한 프리미엄 좌석들의 시즌권 소유주로 다수의 회사들이 들어와있다고 한다. 비즈니스 접대나 직원 복지 차원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회사끼리의 시즌권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가이드가 스카이박스를 하나하나 지목하며 박스를 소유한 회사들의 이름을 말해주었는데 모두 세계적인 명성의 회사였다.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 기자회견 장소와 락커룸을 둘러보았다. 락커룸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무엇보다 이런 꿈의 무대에서 각종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동시에 스타디움의 중압감을 이겨내며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축구선수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하루는 친구 고모의 추천으로 다 함께 차를 타고 아침 식사를 하러 뮌헨 시내의 중심으로 향했다. 벤츠 GLC AMG를 이곳에서 타는 느낌은 특별했다. 코펜하겐에 비해서 뮌헨의 시내 도로는 훨씬 넓고 쾌적했지만, 워낙 보행자도 많고, 신호도 많아서 유럽의 운전은 쉽지 않은 거 같다. 식당이 위치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는데 미국의 주차장에 익숙해 있었던 당시의 나에게 독일의 지하 주차장 크기와 폭은 충격적일 정도로 타이트했다. 식당에 올라가니 이미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꽤 유명한 장소인 듯했다.

식당은 마리엔 광장에 위치했었는데, 우리 자리에서는 시계탑이 유명한 신 시청사 건물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옛날 건축보다는 현대 건축이 더 재밌고, 비교적 쉽게 해석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눈에 들어오는 게 이유다. 눈앞에 보이는 신 시청사는 1905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 시절 사람들의 디테일에 대한 열망과 장인 정신이 경이롭다. 식사로는 뮌헨 스타일 전통 소시지 음식을 먹었는데 소시지에 둘어진 아주 얇은 껍질을 모두 벗겨서 먹어야 했다. 그리고 독일은 소시지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풍미가 풍부해서 머무는 기간 동안 독일 소시지를 너무나도 즐겁게 경험했다.

식사를 하고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뮌헨 대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불교를 믿고 절에 가는 집에서 자란 나에게 유럽 성당의 문화는 아무래도 새로웠다. 여자친구에게 성당 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불교적 관점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공유하며 종교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던 재밌는 추억이 떠오른다.

뮌헨의 공원 조경도 수준급이었다. 특히 뜨거운 여름에 도시를 가로지르며 동네와 동네를 연결시켜주는 공원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유럽에서 걸어 다니며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각자의 여유와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는 활발한 공원은 도시의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공원은 그 도시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공간인 거 같다. 공원에 나가 걸으면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현지인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뮌헨 시내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 이곳의 파스타가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위치와 분위기가 좋아 3번 정도 방문했던 거 같은데.. 유럽의 간은 한국보다 짜서 좋다. 나는 짜게 먹는 파스타가 더 입에 맞다. 시내를 걷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쌓여, 시원한 곳에 앉아서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진다. 또한 뮌헨의 머리엔 광장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노천카페가 많았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나면 각자의 방향으로 광장을 분주히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뮌헨에는 코펜하겐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고 도시의 속도도 눈에 띄도록 더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친구의 고모 집에서 머무는 동안 집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저녁식사를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매일 저녁 나와 여자친구, 친구 그리고 고모 집 가족 구성원들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다양한 문화와 삶의 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간들이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제에 의견을 더하며 커지는 대화가 있는 저녁식사는 그 무엇보다도 즐겁고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다.

하이킹을 전문가 수준으로 즐기는 친구의 고모 덕분에 우리는 전날 저녁식사를 하며 독일의 알프스산맥인 추크슈피체에 방문하기로 결정했었다. 뮌헨에서 차를 타고 오스트리아가 있는 경계선 쪽으로 1~2시간 정도 가니 도착할 수 있었다. 참고로 추크슈피체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걸어 올라간다면 뮌헨 고모를 제외한 다수의 인원들이 낙오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우리는 문명의 힘을 빌렸다. 산의 정상까지 데려다주는 산악 열차에 올라선다. 한 여름이었지만 정상은 여전히 겨울처럼 춥다. 가방 속에 패딩을 들고 가지 않으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추울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니 눈이 쌓여있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다른 질감과 산의 환경에 새로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산의 정상에서 곤돌라를 이용해서 산맥에 형성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내려왔다. 곤돌라에서 내려오는 방향 왼쪽 창문에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데 곤돌라 안에서의 자리 경쟁이 꽤 치열했었다. 곤돌라는 당연히 입석이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한 거 같다. 무엇보다 독일의 추크슈피체는 다른 국가의 알프스산맥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가볼 기회가 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의 풍경과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아름답게 솟은 산을 뒤로한 호수의 푸르고 맑은 물이 기억에 남는다.

추크슈피체에서 나와 뮌헨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맥 주변의 마을에 들러 식사를 즐겼다. 무엇보다 이런 여행의 즐거움은 주변 마을을 둘러보며 그 지역의 로컬 식당에서 즐기는 미식 탐방이 아닐까. 추크슈피체 주변의 상권은 꽤 고급스럽다. 그래서 나는 드라이빙만을 위해서라도 추크슈피체를 목적지로 내비게이션에 찍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드라이빙 코스를 비롯하여 산맥 주변의 풍경과 상권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BMW는 뮌헨에서 만들어 낸 자동차이다. 우리는 뮌헨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BMW 월드에 방문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니 BMW 그룹이 가지고 있는 미니와 롤스로이스 차량들까지 반짝반짝 빛나며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출고 대기 차량들이 보인다. 출고 대기 차량에서는 FIA 로고가 박힌 세이프티 카도 있었다. 역시 이곳이 이 브랜드의 중심이구나...! BMW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차를 출고하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자동차도 한국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가? 어떤 브랜드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본사에 견학 가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고 명쾌한 방법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BMW 월드에 마련된 자동차 박물관에 들어갔다. 전시의 수준은 정말 높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적인 BMW 차량을 최고의 보존 상태로 볼 수 있었는데 예전 80~90년대의 디자인이 너무나도 멋스러웠다. 사실 요즘 나오는 BMW에 대해서는 디자인적으로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옛날에 출시한 클래식한 디자인의 차량들을 보니 그 시절, 전 세계 사람들이 BMW에 그토록 열광한 이유가 이해가 가더라.

저녁에 보는 마리엔 광장. 뮌헨을 여행하면 이 광장을 수도 없이 지나가게 된다. 항상 사람들이 붐비며, 활발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좋아했던 장소다.

날씨 좋은 어느 오후, 뮌헨의 집 마당에서 친구와 함께 축구를 즐겼다. 역시 축구공은 챔피언스리그 공인구를 써야 느낌이 산다. 푸른 하늘 아래, 잔디 위에서 맨발로 패스 플레이를 즐기는 여유가 좋다.

뮌헨을 떠나 덴마크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 날 밤에는 미국 LA의 Pasadena 출신 가수, Phoebe Bridgers의 공연을 보았다. 나는 이미 LA에서 학교 다니는 동안 운이 좋게도 그리피스 천문대 밑에 위치한 Greek Theater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지만 여자친구에게는 뮌헨에서 본 이 공연이 Phoebe Bridgers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여자친구와 연애 초기부터 시작해, LA에서 함께 여행할 때까지 항상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으며 즐겼던 당시 최애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던 지라 여자친구의 기대도 컸었고, 나 또한 드디어 함께 콘서트를 본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Phoebe Bridgers의 라이브를 즐기며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은 후 오전에 뮌헨을 출발해, 코펜하겐을 향해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덴마크 국경을 넘어선 후 저녁시간 때에 크고 밝은 달을 보며 들었던 Coldplay의 “Fix you"와 ”Yellow"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덴마크로 돌아온 후 다음날 찍은 전경이다. 뮌헨에서 돌아온 후 정말 재밌었던 점은 유럽에 입국한 뒤로 계속해서 덴마크 친구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 보니 나를 비롯한 여자친구까지 이미 코펜하겐을 집처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어가 아니라면 여전히 표지판에 적혀있거나 기차 안내 방송에서 나오는 덴마크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뮌헨에서 돌아온 뒤 코펜하겐의 시내를 걷는 그 느낌은 집 앞을 걸어 다니는 것만큼 익숙하고 편안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