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었는데도 왜 또 생각이 나는지

화가 나도 되는 건지도 궁금한 화

by 하비

내 기억 속의 작은 도돌이표 '화'


1. 이후 몇 년간 사과 이야기.

남자친구와 5년 정도 만났을 때 어머니를 두 번째 뵀던 날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외식을 하고 어머니댁으로 갔던 것 같다. 남자친구가 부모님 앞으로 온 우편물을 대신 봐주고 있었데 어머니가 주방으로 가시더니 사과 세 개와 다도를 쟁반에 담아 오시면서 말씀하셨다.

"하비야. 엄마 오빠랑 뭐 볼 게 있으니 깎아 먹고 있어라."

"네"라고 했지만 속으론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일단 콕! 찍고 깎으면 되겠지?'

'어떤 모양으로 깎아야지?'

고민을 했는데 순간 제사상에 올려진 윗동 쳐진 사과 생각이 났다.


우선 윗동을 쳤다. 그리고 아래도 쳤다.

어깨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체로 사과를 깎는데 이 느려 터진 과정을 보진 마시고 다 끝나면 봐주세요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조용히 깎았던지 남자친구는 내쪽을 보더니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하비야 사과를 그렇게 깎는 사람이 어딨나."라 말과 함께.

동시에 어머니의 눈길이 사과를 향했고 바로 입을 열으셨다.

"왜 그러나. 스물여덟 애기가 어떻게 알고. 괜찮다 하비야."

어머니는 소리를 내시진 않았지만 웃으셨다. 미소 지으시며 "하비야. 이렇게 깎으면 먹는 게 없어지니 이래이래 해야 한다. 안 해봤으면 모르는 거다."


남자친구의 타박에 그리고 어머니가 감싸주심에 은 뜨거워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을 흘리기엔 나 자신이 너무 애같이 느껴져 꾹 참고 총 세 개의 사과를 연습 삼아 다 깎았다. 다시 우편물과 서류들을 보신 어머니는 후에 깎아진 세 개의 사과를 보시곤 "아이고. 다 깎았네."하고 웃으셨는데 '아 안 먹을 거면 안 깎았어야 했어' 순간 또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는 별말씀을 안 하셨다.


2. 못난이의 '화'

친하게 지내던 친구 부부와 못 만난 지 2년이 넘었을 무렵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 친구네에서 하룻밤 자던 날이었다.

그날은 내 친구 A와 열 살 연상의 남편 B의 집들이 날이었다.

기분 좋게 얘기하던 중이었는데(사실 애매한 작은 조짐들이 있었다)

나와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그 부부의 연애 때도 자주 끼어 놀았고 좋게 말하면 편하고 친한 안 좋게 말하면 선 넘는 일들이 조금 존재해왔었다. 그날은 B 씨가 옛날이야기 도중 시비조로 내 팔을 힘주어 치며 무어라 말을 했다.

정확한 말이 기억이 안 나 왜곡할까 봐 적진 않지만 A도 나도 순간 정지됐을 만큼 어이가 없었는데 상황을 같이 보던 남자친구가 아무 반응을 안 하는 것이었다.

A는 "오빠. 기분 안나빠요?"같은 물음에 남자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도 눈물이 핑. 내 일에 내가 나서야지 생각이 들면서도 나 또한 너무 오랜만에 마련된 자리를 망치진 말자 생각하고 내 마음을 방치했다.

결국 새벽에 나와 남자친구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다른 사소한 일로 울며불며 싸우다 풀었지만 도통 마음이 안 풀린 난 다음날 저녁 그에게 말을 했다.


남자친구 왈 "그땐 나도 기분이 안 좋았는데 하비 네 눈치를 보니 기분이 안나빠보여서 내 혼자 뜬금없이 그러는 걸까 봐 넘겨야겠다 생각했어."

또 "친구가 내한테 그 말했다고? 그건 못 들었어. 그래서 아예 대답을 안 할 걸 거야."라고 말했다.

나도 "나한테 팔 안 아프냐고도 안 물어보고 아무 말 안 하니까 그 상황에선 내 일은 내가 해야 되겠다. 내가 기분 나쁘다고 해야지 오빠가 그런 걸 바라는 건 내 잘못이다 라고 생각 들면서도 섭섭하더라고."라고 하니 남자친구는 다시 "평소에도 내가 그래? 왜 그 생각이 들었을까.."라고 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한테도 서운한 점 말하라 하니

"난 내 자신한테 서운해. 요새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내가 많이 예민해진 것 같아."


남자친구가 이렇게 말해주니 서운함 못 참고 표현만 한 것 같아 미안했고 그렇게 서로 잘 풀었다. 10번 중 1번 있는 서운할 일이었기에 오해가 다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 왜 아무 생각 없다가도 문득문득 이때가 생각이 날까?

오히려 울고불고 싸운 건 그 이유도 생각 안 날 만큼 잊혀졌는데 이 두 가지, 아니 하나 더 사소한 일 포함 세 가지는 불현듯 생각이 나 입을 근질근질하게 만들까?

원래 사소한 것에 갈라진다지만 이런 일로 화가 계속 남아도 되는 걸까? 누구한테 허락받을 일이 아니지만서도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고 끝! 했음 끝이어야 괜찮은 사람 아닌가.

남일에 왈가왈부 잘하면 뭐하랴 내가 이 모양인데. 아니 근데 나 남자친구한테 아무 말 안 했는데? 이렇게 생각으로만 욱해도 나쁜 거야?







그만!


글로 쓰면 조금 정리될까 봐 끄적였고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 무한 반복으로 마무리될 듯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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