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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Jul 07. 2022

쓸모를 모르는 날들

  언제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생의 일은 공부인줄로만 알고,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잘 하고 싶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이 물심양면 힘써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대학생 때는 잘 놀고 싶었으며 졸업할 때 즈음부터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달마다 월급을 받을 생각을 했다. 아무도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 적 없음에도 나는 집에서 내 자리를 찾고 '밥값'을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물론 지나온 그 길에는 항상 우울과 짜증이 함께했다. 때문에 밥값을 위한 노력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졌지만, 생각도 일이라고 나는 자주 지치고 힘이 들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은 억지를 부려서라도 하면서-한때 상담선생님 한 분은 내가 '내 X대로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라는 성과를 얻지 못함에 좌절하는 삶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가. 나는 이런 나의 비논리가 싫어서 자주 울었고 그럼에도 열심히 하기는 죽을만큼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열심히' 해야만 밥값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자주 죽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자주 내 열심을 아무것도 아닌 것 취급하고는 했다. 학창시절에 (아마도) 다른 친구들만큼은 공부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부시간 대비 성적 효율이 좋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으면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더욱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대학 입학 이후 친구들에게서 들은 내 학창시절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떡볶이를 먹으러 나갈 때, 같이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공부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쉬는시간에는 지난 수업을 복습했다. 담임선생님 때문에 공부 시간을 일일이 재고 기록하던 고3 시절,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도 하루에 6시간에서 8시간은 공부했더랬다. 8시간을 넘어가면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밤잠 줄여가며 10시간 이상씩 공부하지 않는 나 자신을 책망했고, 그해 기숙사 계단에서 구를까 말까를 십수번쯤 고민하다가 첫 자해를 했다. 

  대학 합격 결과 발표 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다고 해도 대입 준비라는 짓을 한번 더 하느니 차라리 취업전선에 뛰어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역시나 아마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최선은 언제나 내게는 최선이 아니었으므로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준에서 대학생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는 성공적인 취업이었다. 대학원에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졸업 이후의 길을 취업으로 틀었을 때, 몇가지 것들이 크게 어그러졌다. 그 중 가장 어그러진 것은 나였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젊은날의 모든 열심을 끌어다 쓴 듯했다. 더는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밑으로만 침잠하며 '열심히 사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무얼 하든 그 노력과 결과를 평가절하하고 비난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낼 수 없다. 가능하면 관계를 끊겠지만, 평생을 옆에 딱 붙어 있어야만 하는 사이라면 어떨까. 죽거나 죽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그사람 또한 나였으므로, 죽든 죽이든 내가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때 죽어버리지 않은 초등학생의 나를 원망했다. 삶을 선택한 탄생 전의 나를 원망했다. 살아갈 기회를 준 신을 원망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대기업에 다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어쨌든 돈을 벌겠다고 일을 하고 있고, 어찌저찌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배우자와 함께 굴려가고 있다. 지금은 다 좋다는 희망찬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으나, 내 밥값 타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에서 밥값 하지 못하는 식충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대학생때와 마찬가지로, 가정이 바뀌어도 여전하다. 나는 지금도 가족의 돈을 축내며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는 존재다. 내가 없으면 배우자가 조금 더 여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결혼한 것이 배우자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한 주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우울이 심할 때는 하루 종일도 생각한다. 

  나태와 나태를 가장한 열심은 아무렇게나 뒤섞여서, 어느 날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야근하다가도 다른 날에는 출근하지 않고 종일 누워만 있는다. 그런 날은 저녁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배우자가 퇴근하기 전에 겨우 일어나서 흐리멍텅한 머리로 생각한다. 나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짐일 뿐이니, 역시 죽는 게 제일 낫겠다고. 


  그러나 고통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원망이 무서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면 언젠가는 타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당하게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어, 내가 여기에 자리하는 것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다. 물론 요원한 일이다. 내가 무엇이 되든 나는 언제까지고 내 쓸모를 알지 못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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