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od Place

잘 살기 어려울 때

by JHS

엘리너 셸스트롭은 생전에 착하게 산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Good Place’에 도착한다. 엘리너는 자신이 천국에 올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들켜서 ‘Bad Place’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Good Place는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도덕과 윤리, 자유의지와 구조의 문제를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서 다룬다.

드라마가 던져주는 생각할 거리가 여럿 있지만 내가 주목한 건 Good Place에 가기 위한 점수에 관한 부분이다. 모든 인간은 생전에 한 모든 행동에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의 점수를 얻는다. 선행에는 플러스, 악행에는 마이너스 점수가 부과되어 죽고 나면 그 총점으로 사후 세계를 배정받는다. 그런데 에피소드가 진행되며 주인공 일행이 알아낸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Good Place에 도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유도 밝혀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이다. 모든 개인의 일상적 선택이 복잡한 세계적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카페에 가서 유기농 커피를 마셔도, 그 원두가 남미 커피 농가의 저임금노동에,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에, 또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에 기여하고 있다면 이 행동은 어떤 판결을 받을까. 호의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사 주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하려고 해도, 포장 폐기물을 늘리고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부추기고 지역 상권을 죽이는 행위가 된다. 작중의 시스템은 여기에 나쁜 점수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누구도 천국의 열쇠를 건네받을 만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던 것이다.

현대 사회는 거미줄같이 얽혀있고, 일상의 모든 선택이 그물의 다른 가닥들을 건드려서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를 빚는다. 이 문제는 작중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반올림의 텐트 농성을 처음 지켜본 날부터 나는 삼성의 로고가 붙어있는 제품은 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삼성은 내가 쓰는 애플 기기들의 부품을 공급한다. 게다가 삼성만큼은 아니라도 애플도 문제가 많은 기업이다.

어려운 문제다. 현대 사회가 정보 사회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불투명하게 공개된 정보 사회다. 생산자는 자신의 제품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 감추고 싶다. 국가와 기업은 공급망을 세계화해서 윤리적 책임을 파편화한다. 이들보다 비교적 최근에 자리 잡은 플랫폼 경제도 책임 주체를 분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선의는 실행되기도 전에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차피 옳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니 아무렇게나 살자는 결론에 이르기 십상이다.

작중에서 제시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행위에 점수를 부과해서 심판하는 시스템을 없앴다. 대신 삶이 끝나면 바로 Good Place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생을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중간 지대를 만들기로 했다. 개인의 도덕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지만 이런 식의 접근법에는 동의한다. 지금의 세상은 터무니없는 악행(인간의 행위를 선악으로 구분 짓고 싶지 않지만 편의상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릉 악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일어나고, 모두의 책임이지만 특정한 누군가에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쓰는 목초지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고, 그중 누구도 이것이 딱히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그 석판에는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가 새겨져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계명을 새로 받는다면 아주 크고 긴 석판이 도착할 것이다.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는 문장은 ’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핍박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지 말라 ‘고 바뀌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