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2천 명 증원에 반발해 지난 2월 휴학을 선언한 의대생들이 학교에 복귀하기로 했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국회 교육위, 보건복지위,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발표한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입장문'에서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감으로써 의과대학 교육 및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해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대생들이 학교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학사일정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인질극을 벌이던 유괴범이 인질을 놓아주면서 도시 치안의 정상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하면 그를 기다리는 일은 현장에서 체포당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의료 인력은 그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행위는 인질극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이런 행위에도 학적에서 곧바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귀한 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정부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2천 명이라는 무엇을 근거로 산출되었는지 알 수 없는 숫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내가 정책결정권자라면 집단 휴학 선언 즉시 학교로 복귀할 수 없도록 처리했을 것이다. 정부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특권의식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학생의 개별 휴학은 개인의 자율권에 속한다. 그러나 수천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정책에 항의하는 성격의 휴학을 한다면 이는 정치적 파업 행위다. 문제는 의사가 우리 사회에서 선망받는 직업인 이유가(높은 소득뿐 아니라)그들이 일부 공공성을 갖는 인력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특히 병원 실습 등에 관한 인프라는 공공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 전체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집단 휴학은 정당성에 문제가 많다. 의대생 및 의료 집단이 정책에 반발하는 것과 관계없이 정당하지 못한 대응이었다.
전술한 것은 매우 상식적인 내용이다. 휴학 의대생들이 이를 알지 못했을 리 없다. 그저 그들 마음속에서 이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전교 1등의 특권의식과 특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분노, 집단이기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기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결정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새롭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득권 집단이 이와 유사하게 행동한 것이 한 두 차례가 아니지 않은가. 검찰, 법원, 교수 집단 등 우리나라의 '1등 출신'들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폐쇄된 군중 집단은 항상 개인보다 열등하다. 더 현명한 판단을 하거나, 더 도덕적인 면모를 보여줄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의료인들에게 특별히 도덕적일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개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의료 행위에 임하는지 알 수 없고, 사명감을 갖추고 임한다면 의료 수요자로서 다소 안심이 되고 감사하겠지만, 의료인들에게 다른 직업 집단에 요구되는 것 이상의 도덕심을 기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과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한다. 가장 도덕적인 학생들이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찾는 식당 주인이나, 자동차 수리를 맡긴 대리점에 기대하는 수준의 도덕심이면 족하다. 의사는 오랜 수련과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기술을 갖추고 정당한 특권(의료 면허)과 높은 소득(일반적으로)을 획득한 직업 집단이지,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있는 직업 집단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도덕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다. 그런 논리라면 조금만 확장하면 모든 직업이 다 해당될 것이다. 모든 직업과 노동 행위는 사람 사는 문제에 직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엘리트'는 단순히 고학력이거나 고소득인 사람들에게 붙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 즉 영향력이 인정될 때 엘리트라는 말로써 수식한다. 그리고 일련의 집단 휴학 사태에서 보인 모습은 썩 존경이나 존중을 받을 만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엘리트를 자처하는, 그리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집단이 그들 스스로 엘리트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지켜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별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엘리트(를 자처하는 이들)를 바라보는 자세를 바꾸는 것이다. 특별히 도덕적일 것을 기대하지 말자. 그들의 배타적 특권이나 고소득은 그들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얻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직업 집단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 그들의 높은 직업적 숙련도나 전문성에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후안무치한 행위에는 책임을 물으면 된다. 우리 헌법에는 분명히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 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의료 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인질극을 벌인 이들이 돌아와 '정상화'에 힘쓰겠다니, 정작 정상화가 시급한 것이 어느쪽인지 의심스럽다. 그들의 용렬함이 한국 모든 의료진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