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태어난다면

by JHS

태어나는 국가는 사람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다양한 지표를 볼 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위쪽에서 났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고달팠을 것이다. 여러 문제를 떠안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 세계 근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이 자신에게 적합한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좀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못했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일단 음식 문제가 컸다. 김치를 포함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고, 한식이라고 할 만한 웬만한 음식들은 잘 먹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이나 문화 등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음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유럽 여행을 다닐 때의 기억 때문이다.

동유럽 여행을 다닐 때였다. 헝가리에는 굴라시라는 이름의 수프와 스튜 중간쯤 되는 음식이 있다. 소고기, 양파, 감자, 파프리카 등을 넣고 끓이는 음식인데 특이하게도 육개장 맛이 나서 가족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내 입에는 썩 맞지 않았는데, 다음 목적지인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그곳의 음식이 내게 맞았었다. 얇게 저민 고기에 빵가루와 계란물을 입혀서 튀기는 비너 슈니첼과, 초콜릿 케이크 사이에 살구잼을 얹은 자허토르테가 기억에 남는다. 10대 중반이었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매일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때라 오스트리아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스트리아가 마음에 들었던 두 번째 이유는 공간의 분위기였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고 아름답게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쇤브룬 궁이다. 빈에 위치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인 쇤브룬은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건물 외벽을 따뜻한 색감의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이 노란색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이름을 따서 테레지아 옐로라고 부른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충분히 화려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베르사유처럼 압도적으로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축물에 비해 쇤브룬의 기하학적이고 규율이 있는 공간 배치와 색감은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부의 태피스트리가 예뻐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태피스트리를 두고 "조용히 말하는 그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오스트리아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어서, 독일에 가려고 했을 때 오스트리아가 가깝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여행이 아니라 주거 목적으로 지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있는 내 유럽인 지인들은 대개 자기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국에 왔다. 행정이 느리거나,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나는 한국의 과한 역동성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국적을 바꾸어 태어났다면 어떨지 가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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