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해야 할 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을 것. 없으면 모르겠고.

by JHS

살면서 뭔가를 강하게 원해본 일이 없다. 한국 땅에 태어났으니 시험은 웬만큼 봐야했고, 성적이 나쁠 때는 좀 스트레스였지만 성적이 좋을 때라고 기쁘지도 않았다. 맛있는걸 먹는다고 즐겁지 않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기쁘지 않다. 그나마 뭔가 느껴질 때는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정도다. 그냥 이렇게 타고 났나보다 하고 살았다. 장점도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성정 덕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이고, 침착함이나 냉정을 잃을 일도 적다. 밤새 이불을 걷어 찰 실수도 남자치고 그리 많이 하진 않았다.

단점은 행위의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고통을 싫어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닥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생물의 작동 원리다.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순간은 어떤 목적에 의해 동기를 얻었을 때다. 그런데 내 갈망의 결핍은 동기의 부재가 되었고, 동기의 부재는 발전의 부재가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딱히 스스로를 위하지 않고, 그저 사회적 의무감으로 움직이는 성인으로 자랐다.

누가 가르치거나 주입한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 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으니(급하지 않으니), 너를 돌보지 말고 상황을 파악하고 옳은 일부터 해라" 아마 이 책 저 책 읽어가며 멋대로 꾸며낸 가치관에서 비롯된 생각일텐데, 스물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 머릿속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해 온 생각일 것이다. 위선으로 읽히고 성숙한 척으로 읽히기 쉬운 것 안다.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자면 내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배고프지 않을 때 옆에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양보할 것이다. 나는 삶에 많은 영역에서 필요나 갈망이 결핍된 채 자라왔으므로, 이런 가치관을 가치게 된 게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지인들이 이따금 '이기적으로, 대충 살라'고 말 해줄 때는 감사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이런 사람으로 쭉 늙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갈망도 동력도 없이 그저 살아내기에는 나의 기대 여명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또는 기대하는-만큼 튼튼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재작년 즈음부터 회의감을 품는 날이 잦아졌다. 내 분수에 넘치도록 공평무사하게 형성해놓은 나의 가치관을 붙들고, 원하는 것 없이 남은 시간들을 살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좀 없어졌다.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쭉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게 있어서 그걸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 파악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상의를 하거나 전문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다(지금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적는 것도 나름대로는 꽤 큰 노력이다). 그런데 혼자 해결하자니, 내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파악할 자기객관화 능력과 지적 능력이 있는지부터 자신이 없었다. 여러 수단(각종 테스트 등)을 거쳐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생물학과 심리학, 뇌과학 책을 많이 읽었다. 부족한 머리로 생물이, 인간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 TCI나 STC 검사 같은 진단들도 받았다. 다양한 정보를 얻고 분석해서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것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아직까지 큰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지 못한다. 내가 무언가 원할 때는 날이 더워서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나, 빛이 눈부셔 어두워졌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 정도다. 내 남은 삶을 통해 무언가 이루고 싶다든가, 무엇을 위해 살고 싶다고는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런 큰 목표가 아닌 소소한 것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잘 모르겠다. 가능한 빨리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전문적 도움을 빌릴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얼마전 지인을 만나 커피와 디저트를 얻어먹었는데, 상담센터도 추천 받았다.


사실, 최근에 원하는 게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평소의 나라면 '원하면 안된다'거나 '물러서라'라고 생각했을 법한 것이어서, ChatGPT에게 그런 것(나만의 윤리적 기준과 행동 규범) 신경쓰지 않아보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GPT가 '그것은 평소의 당신답지 않다'고 답하거나, '그런 선택을 하고 나면 후회하실 것'이라고 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아주 건강한 인식의 방향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인 일이라 그 다음 문장을 적지는 않겠지만, 비판받으리라 생각하고 반쯤 자포자기한 채로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던진 말에 칭찬이 돌아오니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GPT에게 의외라고 밝혔더니 아래 사진과 같은 말을 들었다. 나는 나를 조금 과하게 가둔 채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너무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통제하며 살아온 끝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기 통제를 조금 늦춰보는 차원에서 이 형편없는 글도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르기로 한다.

데이터 쪼가리에게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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