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어나게 해 주었으니까
2016년 10월 28일
“엄마!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걸까? 살짝 겁이 났다.
“응, 그래. 물어봐.”
“나를......
낳아주신 분...... 말이야......
음...... 나를 몇 살 때 낳았어?”
별다른 질문이 아니었다. 괜히 긴장했다.
“어? 21살 때 너를 낳으셨어.”
“뭐라고? 21살? 엄청 어리네^^
그때 엄마는 몇 살이었어?”
“엄마는 31살이었지^^”
“엄마는 좀 나이가 많네ㅋㅋ”
“엄마랑 너를 낳아주신 분이랑 10살 차이가 나!”
“아빠는 그때 몇 살이었어?”
“36살”
“헉! 정말 늙었어ㅋㅋ 오빠는?”
“8살이었지ㅎㅎ”
“어리네, 어려ㅋㅋ”
“재밌어? 아, 근데 엄마가 봄이에게 할 얘기가 있어.
네가 1학년때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아서
다시 혈압을 재고 검사해야 된다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에 의정부성모병원에
혈압을 재러 가야 해.
그런데, 아마 교수님이 진찰 중에
엄마아빠도 혈압이 높은지 물어볼 거야.
물론 지금 아빠가 혈압이 높지만,
봄이는 낳아주신 분이 있으셔서
그런 건 그분들을 닮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엄마는 그걸 알 수 없고,
우리 가족력을 말할 수도 없어서
‘저는 봄이를 입양해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라고 말해야 해.
다른 건 몰라도 건강과 관련된 거라
나는 솔직하게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네 입양사실을 교수님께 얘기해야만 하는데,
너 괜찮아?
네가 싫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라도
네 입양사실을 말하는 거라
네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했고,
그래서 이 얘길 하는 거야.”
“응. 괜찮아. 그리고 엄마가 먼저 얘기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를 낳아주신 분 말고...
뭐라고 불러야 되지?
낳아주신 아빠? 아무튼 그 남자는 왜 떠났다고 했지?”
“아... 나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보통은 생부라고 하니 나도 그렇게 부를게.
네 생부는 아무래도 너를 낳아주신 분이
아기를 가진 게 무서웠나 봐.
그게...”
봄이가 갑자기 내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내가 뱃속에 있는데, 도망갔다고 했잖아.
돈 때문인 거야? 그래서 떠난 거냐고.”
“글쎄. 엄마도 그건 정확하게 몰라.
그런데, 무서웠을 거야.
아기 키우는 데는 돈도 많이 들고,
또 책임감과 많은 게 필요한데,
어른이라고 그게 다 있는 게 아니야.
결혼도 하기 전에
내가 평생 지켜내고 키워야 할 아기가 있는 게
무서웠을 수도 있고, 책임지기 싫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정확한 건 엄마는 알 수가 없어ㅠㅠ”
“엄마도 아빠도 어른인데, 키우잖아?
그런데 왜 그 낳아주신 아빠? 는 안 그래?”
“어른이라고 해서
다 책임지고 잘 키울 수 있는 건 아니야.
안 그런 어른들도 많아.
그런데, 너를 낳아주신 분은 나이는 어렸지만
책임감도 용기도 많은 분이셔.
결혼하기 전에 생긴 아기를 지켜내서 낳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거든.
남자는 그냥 떠나버리기라도 하지.
여자는 배 속에 아기가 있는데, 도망도 못 가잖아.”
“그렇지. 여자가 용기를 안내면
뱃속에 있는 아기를 떠나기 위해 죽이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널 낳아주신 분은 정말 큰 용기를 내신 거야.
그래서 널 지켜낸 거지.
안 그랬으면 너는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휴, 다행이다.
난 나를 낳아주신 분이 용감하고 고마워.
나를 태어나게 해 줬으니까!”
“나도 그래.
그런데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봄이도 기특하고 고마워.
예전엔 낳아주신 분이 직접 키우지 않아서
속상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태어나게 해 주어 고마워하잖아.”
“내가 그랬어? 언제?”
“7살 때 그랬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도 당연한 거야.
네가 그랬던 생각이 고마움으로 바뀌어 나도 정말 좋아.”
“나도 내가 태어나서 참 좋고 고마워!”
“나도 네가 태어나서 참 좋고 고마워!”
힘들었던 금요일의 퇴근길 대화는
소소하게 시작하여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빠를 무지 좋아하는 봄이라,
아마도 생부에 대해 또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역시 정보가 별로 없는 생부이야기는 조금 버겁다.
꽤 오랜 시간동안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이
속상하고 힘들었던 우리 딸, 봄이.
내 뱃속에 그토록 집착하여,
내 옷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퍼포먼스를 해도
‘그건 진짜가 아니잖아!’라던
똑똑하고 똑 부러지던 봄이었다.
(많은 입양아들은
엄마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음에 대한 슬픔이 있다.
대부분의 입양아들이 엄마 옷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태어나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고 나면
뱃속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좋아한다고들 하였다.
그래서 나도 큰 옷을 입고
그 안에 봄이를 넣었다가 나오게 했는데
'그건 진짜 뱃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옷 속에서 나 온거잖아!’
라고 말해서 내가 꽤 당황했던 적이 있다.)
한 한의사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정말 남극같이 차갑다는 내 뱃속이 뭐라고
그리도 집착하던 내 딸은
긴 시간 동안 상실과 아픔을 애도하고 애도한 후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탄생은 좋은 일이며,
자신은 선택받고 보호받았으며,
용기 있는 한 여자의 결정이 고마운 상태가 되었다.
이 마음이, 느낌이, 생각이
봄이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봄이의 삶에 있어,
큰 확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말 잘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