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런 마음이라서 미안해...
2019. 11. 16
바람이 차가웠던 11월 중순
봄이와 둘이서 춘천 마리아의 집을 다녀왔다.
2년 전, 봄이가 태어난 병원을 다녀온 후
입양이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줄어들었다.
생모를 많이 보고 싶어 했던 봄이와
이런저런 얘기 중에 , 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 얘기를 하다가
미혼모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방문이 가능한지 여쭤본 후에
마리아의 집 주변을 둘러보고,
조용히 기도만 하고 오려고 했다.
미혼모의 집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봄이가 좋아하는 수박모양의 설기 케이크를 주문했다.
임신 중이거나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들이라
좋은 재료로 만든 예쁘고 맛있는
좋은 음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는 수박설기케이크를 들고서
미혼모의 집에서 어떤 것을 얻을지
서로 다른 기대를 하면서 차에 올랐다.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춘천은 낯설고 추웠다.
해가 나와있었지만 너무나 추웠다.
날씨가 추웠는지 내 마음이 추웠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게 추웠던 기억이 있다.
전화를 받은 수녀님께서는
지금까지 해외입양을 간 입양인들만 왔었는데,
국내입양인은 봄이가 처음이라며
아주 반가워하며 환영해 주었다.
마리아의 집 방문당시 우리를 맞이해 준 수녀님은,
10년 전 봄이 생모를 담당하셨던 수녀님이셨어서
봄이 생모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녀님께서 봄이 이름을 너무 잘 알고 계셨고,
터울 많은 오빠와 아빠직업을 알고 계셨어서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지? 싶었다.
수녀님은 봄이 입양 전 이상하리만큼 당연하게
공개입양을 선택했던 가족이었다며
입양원 홈페이지에 내가 몇 년간 봄이 사진과
크는 이야기를 쓴 것들을 보셨는데,
생모가 백일사진과 돌사진을 수녀님께 보여주며
참 좋아하고 고마워했었다고 했다.
다른 입양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어서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봄이 생모는 지금의 봄이와 닮았으며,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우리에게 없던 생모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셨다.
와!! 이것은 정말 대단한 수확이다!!
나도 봄이도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기쁘게 웃었다.
수녀님은 미리 생활 중인 미혼모들과 임신부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봄이가 마리아의 집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물론 나는 마리아의 집 내부를
볼 수 없었고, 혼자 조용히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봄이는 수녀님과 함께 식당과 성당,
봄이가 생모의 뱃속에 있었을 때
그리고 태어나서 며칠 머물렀던 방을 보고 왔다.
수녀님께서는 사진으로 남겨도 되고,
방에 들어가 봐도 된다고 했지만
봄이는 사진을 찍지도 않았고,
방에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봄이가
왜 사진을 찍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사진을 찍으면 나도 보고 싶었는데,
나의 궁금증도 해소되지 못했다.
수녀님과 돌아온 봄이의 얼굴이 나갈 때와 조금 달랐다.
마리아의 집 내부를 둘러보고 온 봄이는
조금 울었던 듯했는데,
내가 안아주었더니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혼모의 집을 쭉 둘러본 후 성당으로 갔는데
성당에서 봄이를 입양 보내기 전,
생모가 마지막으로 봄이를 안고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때 생모가 읽었던 기도문을
수녀님께서 읽어주셨다는데
그 기도문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기도문이 무슨 내용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생각이 복잡해 보이는 봄이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수녀님과 잠깐 이런저런 얘기 후,
우리는 마리아의 집을 나왔다.
마리아의 집에서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이는 쉽게 마리아의 집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추워서 빨리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봄이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모자상 옆 벤치에 앉았고
나는 추워서 몸을 덜덜 떨며
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봄아. 아까 수녀님과 마리아의 집을 둘러보고 왔을 때,
너 울었던 것 같은데 맞지? 왜 울었어?"
봄이가 솔직하게 대답해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나를 입양 보내기 전, 나를 낳아주신 분이
나를 꼭 안고서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에 나를 축복해 달라고 했어.
축복이라는 단어를 듣는데, 너무 눈물이 났어."
봄이는 솔직하게 얘기하고,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도 눈물이 났다.
봄이를 부둥켜안고서 같이 펑펑 울어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이 멈추자 봄이가 또 물었다.
"엄마, 내가 낳아주신 분과 지냈던 방에
아주 작은 아기가 있었어.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그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 아기는 아마 낳아준 엄마와 함께 살게 될 것 같아."
내 대답을 들은 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안다.
자신은 낳아준 엄마와 살지 못했는데,
저 아기는 낳아준 엄마와 살 수 있다.
부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고, 내 마음을 고백했다.
"너도 낳아주신 분과 함께 살았다면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낳아준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 제일 좋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네가 낳아주신 분과 살았다면,
너는 내 딸이 될 수 없었겠지.
그럼 네가 아닌 다른 아이가 내 딸이 되었을 텐데,
네가 내 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ㅂ난 너무 슬퍼.
난 네가 내 딸이라서 너무 좋은데.
너에게 좋은 건
낳아주신 분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 네가 내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엄마는 너무 슬프다.
엄마가 이런 마음이라서 미안해.
넌 낳아주신 분과 함께 살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 있을 텐데,
내 마음이 이래서 미안해.
그런데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내 말을 들은 봄이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차가운 내 손과 달리 봄이의 작은 손은 따뜻했다.
"괜찮아.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아.
엄마 손이 너무 차갑다. 빨리 차에 들어가자.
그리고 엄마 운전하기 힘들었을 텐데,
나랑 둘이서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는 이야기를 끝내고 마리아의 집을 나와
둘이서 신나게 춘천시내를 구경하고 집으로 갔다.
출발하면서, 그냥 기대가 된다던 봄이를 보며
2년 전 자신이 태어난 병원을 다녀왔을 때처럼
조용히 평화로운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마리아의 집 방문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고,
지금까지의 입양 마주이야기하기 중에서
제일 반응이 컸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것이라면
봄이가 머물렀던 마리아의 집과
봄이가 태어났던 병원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과
봄이의 생모를 담당했던 수녀님을 만나서
우리가 몰랐던 생모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집에서, 생모나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봄이 생모가 봄이를 입양 보낼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알게 된 것이
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았던 것 같다.
봄이는 그 기도문을 들으며,
이별이 슬프지만 자신을 축복해 준 생모의 마음이
가슴이 아프면서도 고맙고 감동을 받아서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아프고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봄이는 마리아의 집을 다녀온 이후
가볍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신이 난 듯했고,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환하게 웃으며 고맙고 행복하다고 매일 말하곤 한다.
엄마가 함께 가주어 고맙고 그냥 행복하다는 내 딸
아직 사춘기는 시작할 조짐도 안 보이고
사춘기가 되면 무슨 말을 해서
또 놀라게 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하고,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하다는 봄이와 함께
즐겁게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