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미래 시댁 레위니옹 섬으로

by 쌀미디

N의 둘째 누나가 결혼을 한단다. 결혼식을 당장 다음 달에 레위니옹에서 한다는데. 원래는 내년에 계획되어 있었는데 시청에서 하는 결혼식을 급하게 당장 다음 달에 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녀는 교사 임용을 앞두고 있는데 결혼을 하면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임용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나. 그래서 그녀는 10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결혼식을 조금 더 앞당기게 되었다. 둘 사이에는 이미 귀여운 딸이 둘이나 있다. 그런데도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는 커플들이 많은 건 프랑스에 흔한 일이긴 하지. 우리 집 옆집 커플만 봐도 결혼하지 않았는데 딸을 낳았고, 뱃속에는 둘째가 있다. 전 회사 동료들만 봐도 20년 넘게 파트너와 아이를 키우며 살지만 결혼이나 팍스(PACS:시민연대계약)를 하지 않는 사람이 법적으로 파트너와 결합되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여기는 아이를 가져도 결혼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 커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결혼은 그냥 귀찮고 비싸고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당장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는데. 그냥 시청 결혼식 30분 만에 끝나는 건데도 우리가 가야 할까, 어차피 내년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다시 할 거라면서, 그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하필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이라 다들 비행기로 움직여서 비행기 표도 무지 비싼데. 무엇보다 나는 전 회사와의 계약이 끝나고 새로 구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평소보다 2배 이상 비싼 비행기 값을 감당할 처지가 안되었다.


또 내가 새 체류증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서 행정상 문제도 추가되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도 했다. 프랑스의 행정 시스템은 느리고 절차가 복잡하며 언제 결과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 역시도 새 체류증을 3달 만에 기적적으로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6개월, 1년 만에 받은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는 정말 케바케, 싸데 뻥 (ça dépend : 그때그때 다르다)의 나라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비용 및 시간, 행정 문제 등 복합적인 변명거리를 끌어모았고, 이번에는 참석하지 않고, 내년에 할 더 큰 결혼식에 참여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둘째 누나에게는 미안했지만 N이 잘 이야기하기로 했다.



N의 가족들은 한국으로 치자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처럼, WhatsApp을 이용한 가족 채팅방이 있고 거기에서 매일 안부를 남긴다. 놀라운 사실은 그 안에 첫째 누나의 남편과 둘째 누나의 남자친구, 그리고 나도 포함되어 있다. 미래 사위와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포함된 가족 단톡. 나는 첫째 누나와 그녀의 남편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었다.


역시 레위니옹에 살고 있는 첫째 누나 부부는 파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일 때문에 파리를 자주 들르는 편이고, 그녀가 파리에 방문할 때마다 둘이서 만나서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한다. 몇 번 식사를 함께 한 후 그녀는 나를 가족 단톡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남편도 있고 둘째 남자친구도 들어있는데 네가 못 들어갈 이유가 뭐 있겠냐고, 이제 쪽수가 맞겠다고 하면서 가족 일곱 명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매일 나누는 단톡방에 초대를 해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께서는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초대를 하는 게 맞는 거냐고 약간 걱정하셨다고 하더라. 하긴 만난 지 막 1년이 넘은 시점이었으니까.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첫째 누나는 미지는 참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성숙하고 참 좋은 애더라며 내 칭찬을 늘어놓았고, N과 내가 헤어지더라도 파리 갈 때마다 나를 만날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세 커플과 +1 이 구성원이었던 이 단톡이 네 커플로 꽉 차게 되었다.



N의 어머니께서 그 단톡에서 우리가 연말에 크리스마스 겸, 새해 겸, 그리고 둘째 누나의 결혼식 겸 겸사겸사 레위니옹 섬으로 올 수 있는지 물으셨고, N은 바로 못 갈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내년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답장을 했다.

그 답장을 보낸 지 몇 초 되지 않아 “너희가 못 오는 이유가 주머니 사정 때문은 아니길.”이라는 N의 아버지의 답장을 보게 되었다.


N의 아버지는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자신의 딸 둘과 아들,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나단이 가 돈 때문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러 오지 않겠다고 하니 꼭 왔으면 좋겠다는 걸 표현하신 거다. 특히 둘째 누나의 결혼식처럼 중요한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자를 본 다음 우리는 다시 통화를 했고, 누나 결혼식에는 꼭 참여해야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문자를 보고 나니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안될 일 같았고, 사실 이런 행사야 말로 나를 소개하기 딱 좋은 날이기도 했다. 연말연초라서 가족들이 다 모일 거라서 다 같이 만나서 인사하기도 편하고, 결혼식이 있으니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지 않을 거라서 다른 때보다는 부담이 적을 테니까.



N은 지금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레위니옹으로 가는 비행기는 연중 언제나 가격이 비슷한 편이라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방콕까지 간 후 방콕에서 레위니옹까지 가는 Air Austral 비행기가 있다. 하지만 내가 파리에서 레위니옹으로 가는 비행기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연말연초에는 프랑스 본토에서 레위니옹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춥고 우중충한 파리 날씨를 벗어나서 한여름인 레위니옹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부터,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러 프랑스 본토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레위니옹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레위니옹은 극성수기 여행지가 되어버린다. 한국으로 치자면 설날이나 추석에 부산이나 제주도로 가는 사람들 정도의 느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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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극의 날씨를 보여주는 파리와 레위니옹 아침 날씨


처음에는 N과 시간을 맞추어 2-3주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티켓을 찾아봐도 적당한 가격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12월 중순에서 1월 중순까지 한 달을 꽉 채워 떠나게 되면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N은 길어봤자 2-3주 정도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내가 레위니옹에 도착하는 날과 N이 싱가포르로 돌아간 후 10일가량을 나 혼자 N의 가족들과 보내게 되었다. 걱정하는 그에게 나는 뭐 어쩔 수 없다. 난 상관없다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살기나 하지 뭐.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들의 부모님이든 전 연인의 부모님이든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는 부모님은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 W가 지어준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라는 별명을 믿고 겁먹지 않기로 했다.




결국 N과 나는 레위니옹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하고 부모님께만 말씀드렸다. 둘째 누나를 위한 깜짝 서프라이즈를 계획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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