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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May 22. 2021

전체 몸길이 30cm, 이름 모를 아기 고양이에게

나의 기도가 너에게 닿았기를


생명과의 만남과 이별, 그 속에서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활동가






  삼색 무늬 아기 고양이에게.



  너를 만난 건 2020 날씨가  화창했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너는 몸길이가 30센티도  되지 않았고, 많아 봐야 5개월도 되지 않은 어린 고양이었다. 머리엔 회색 무늬, 몸통엔 삼색 무늬를 갖고 있었다.  개의 발은 작고 귀여웠다. 그 작은 발로 종종거리며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세상을 탐색했을 터였다. 눈곱 하나 없었고 식사도 잘하고 지낸   통통한 몸이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무슨 영문인지 너의 몸은 처참하게 조각나 있었다. 조각난 상태로 나와 마주한 너의 얼굴에는 한쪽 귀마저 잘려나가고 없었다. 부드러운 털과 알록달록 무늬가 가득했을 가슴 부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무엇을 보았던 건지 너의 눈은 질끈 감겨 있었다. 가늘고 작은 다리뼈는 절단면을   누군가 부러뜨린 게 분명했다. 피부는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잘라낸 것으로 보인다는 병원 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



  조심스럽게 너의 몸을 원래 위치에 맞게 나열해 놓고 특이 사항을 적어 내려갔다. 동물 학대 사건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중요 정보를 적고 있었지만 사실  머릿속은 너의 살아생전 모습을 상상해보느라 바빴다. 5개월도 채 안되었을 너는 얼마나 발랄하고 귀여웠을까.



  나의 상상은 길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봄을 맞이했을 너를 이렇게 참혹하게 만든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너의 사망 원인을   명확히 알기 위해 그 작은 몸을 부검 보내야 했다. 병원 선생님께서 너의 몸을 패드로  감싸 주셨다. 너를 스티로폼 상자에 담고 아이스팩 포장을 해서 택배 배송을 보내러 가던 . 네가 담긴 상자를 가슴에 안고 홀로 걷던 그 길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길이 너와 나 둘만의 작은 장례식이었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너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고 부검 보내야 해서 미안해.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모두 소중하고 너 역시 소중한 존재란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렴.



  그걸로도 안심이 안되었던 나는 카라에 강의차 오셨던 용수 스님께서 주신 만트라에 적힌 기도문을 네게 읽어 주었다.  기도문을 읽어주면 동물이 다음에 좋은 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속으로 읽으면 네가 듣지 못할까 봐 길을 걸으면서도 크게 소리 내 기도문을 읽었다.



옴 아미데와 흐리...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네가 좋은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혹은 다음에 좋은 생으로 태어나게 도와줄 수 있다면, 그런 시선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네가 어쩌다 이렇게 숨을 거둬야 했는지 한없이 속상했다. 기도문을 읽어주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사실에 목이 메었다. 가슴속에 슬픔과 분노가 교차했다. 작은 너의 몸을 부검 보내며 너와 같은 죽음이 더는 없게 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너를 위해서라도 그저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담당 수사관과 관할 구청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사건 발생지 인근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하지만 유효한 제보는 없었고, 너의 몸을 조각내어 길에 던져 놓았을 누군가의 모습도 CCTV에 찍힌 것이 없었다. 너의 살아생전 모습으로 추정되는 장면 정도가 확보됐을 뿐이었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발견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고양이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턱시도 무늬의 아기 고양이었다. 이번에는 머리 외에 다른 부위는 찾을 수도 없었다. 오직 머리 부위만 발견된 턱시도 고양이는 오목조목 귀여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턱시도 아기 고양이가 발견된 곳은 CCTV조차 없는 곳이었다. 이번에도 현수막을 내걸고 목격자를 기다려야 했다.  사건이 거리상 가깝고 수법이 유사하여 경찰에서도 함께 수사에 들어갔다. 주변에 털이 빠진 흔적도 혈흔도 없어 야생동물에 의한 죽음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동물 학대 사건 수사는 일반적으로 안일하게 이뤄지는 편이 많지만, 이번만큼은 이례적으로 수사관이 여러 명 배정되어 집중 수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끝내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삼색 무늬 아기 고양이, 너와 턱시도 아기 고양이까지 그렇게 보낸 지 벌써 1년 여가 지났다. 혹시 네가 고양이 별에서 턱시도 아기 고양이를 만나진 않았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너와 턱시도 아기 고양이 같은 억울한 죽음이 더는 없게 해 보겠다던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네가 떠난 이후로도 나는 전국 곳곳에서 살해당한 동물의 사체를 여러 차례 부검 보내야 했다. 동물을 살해하는 수법들은 심지어 더 다양해지고 대범해지기까지 했다.



  너의 죽음을 경험하며 어느새 나는 동물 학대 사건을 주로 맡게 되었다. 일상이 동물들의 죽음으로 채워졌다. 사체를 매번 마주해야 하는 나의 일이 두렵지 않으냐고 누군가 물었다. 사체는 두렵지 않다. 너의 조각난 몸도 그저 가엽기만 했다. 무고한 너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찾지 못하고 사건이 미결로 끝나거나, 검거하지 못한 학대범의 손에 추가 피해 동물이 생길까 봐, 그게 나는 가장 두렵다.



  최근 경찰청에서 동물 학대 수사 매뉴얼을 새롭게 발표하는 등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긴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법수의학자도, 동물 사건 전문 수사팀도 없어 수사에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동물과는 관계도 없는 지능팀이, 때론 경제팀이 경찰 내에서 동물 학대 수사를 맡는다.



  나는 오늘도 참혹한 동물들의 죽음 앞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오늘 하루 더 노력한다면 억울한 죽음이 조금은 줄어들 거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색 고양이 네가 무지개 너머에서나마 이제는 온전한 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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