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 Jan 25. 2022

새벽의 기록

도살장에서 잠복하며 메모한 기록들

생명과의 만남과 이별, 그 속에서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활동가




- 3시 50분 불이 켜지고 개들이 짖기 시작
- 뜬장에서 올무로 목을 걸어서 개를 제압하고 전기 쇠꼬챙이로 기절시킨 후 실내로 끌고 감. 개의 비명 소리. (2마리 추정)
- 4시 08분 덜커덩 덜커덩 기계 돌리는 소리
- 4시 12분부터 화염 기계 소리, 가스 소리 혹은 에어건 같은 소리가 수분 간 지속
- 4시 28분 추가로 2마리 도살 (이전보다 비명소리가 길었음)
- 4시 33분 덜커덩 덜커덩 기계 돌리는 소리 2-3분간 지속 (마치 대형 세탁기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
- 뜬장이 모두 이어져 있어 주변 다른 칸의 개들이 과정을 모두 지켜봐서인지 극도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개들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일대에 수분 간 지속
- 4시 38분 덜커덩 덜커덩 기계 돌리는 소리
- 4시 40분 토치로 추정되는 화염 방사기 기계 같은 소리
- 4시 44분 에어건 같은 공기 혹은 바람 소리- 낑낑 신음하는 개들 소리
- 4시 46분 추가 토치 작업 소리
- 4시 49분 전화벨 소리, 도살자 누군가와 통화 시작, 개들이 일제히 갑자기 울부짖음
- 5시 25분 불이 켜지고 죽어가는 개의 비명 소리, 이내 기계 돌리는 소리


2020년 11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당시에 새벽 3시 50분부터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고양시 공장단지 사이에 숨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내려갔던 록이다.


고양시의 한 도살장을 적발하고 폐쇄시키기 위해 동료들과 현장에 모여 새벽 2시부터 잠복조사를 진행했다.

 

경매장에서 사 온 개들을 사방이 모두 뚫려 영하의 겨울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버텨야 하는 낡고 녹슨 뜬장에 가둬둔 곳으로, 전류 통하게 만든 쇠꼬챙이로 개를 감전시켜 도살하고 모란 시장에 납품하는 사람이 있다는 곳이었다.


그 자체로 이미 불법이지만 이대로 신고해보았자, 도살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없어 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도살 장면을 신고자가 직접 채증해야 법적 책임을 보다 명확히 물을 수 있다.)


공장단지 사이에 숨어든 도살장은 공장들의 작업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새벽녘에 도살을 시작했다. 동료들과 차 안에서 숨죽이며 두 시간여를 기다렸을 무렵이었다.

 

개들이 갇혀 있는 뜬장쪽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진다는 건 작업이 시작된다는 신호와 다름 없었다. 내내 조용하던 개들이 컹컹 짖었다. 긴장한 탓인지 추운 날씨탓인지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불이 켜지자 마자, 잠복 차량에서 살금살금 내려 도살장이 잘 보이는 위치로 내달렸다.


불을 켜고 잠시 왔다갔다하던 살자는 작업을 시작했다. 캄캄한 어둠 탓에 선명한 증거 영상을 촬영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손에는 올무를 한 손에는 전기 쇠꼬챙이를 들고 뜬 장 안의 개를 도살하는 도살자의 몸짓과 죽어가는 개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는 고스란히 휴대폰에 담겼다.


영상 촬영 직후 도살자의 도살 패턴을 확인하고자 관찰한 내용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도살자는 오로지 혼자서 1시간 30분 동안 도살과 토치 작업 등을 진행했다. 도살자는 새벽 5시 30분쯤 되자 도살 후 털 제거 등 처리가 끝난 개들의 사체를 아무것도 깔지 않은 트럭의 녹슨 짐칸에 수북하게 실어서 위에 비닐 천막 한 장을 덮고 모란시장으로 떠났다.


트럭을 쫓았다. 새벽내내 진행된 잠복조사에 화장실도 가지 못해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그의 행방은 확인해야만 했다. 어둠속에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하나 둘 쓰러져간 개들의 몸뚱이가 어디로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아야만 했다. 밤을 함께 지새운 동료들 모두 생리적 현상이 절박했지만 끝까지 그를 쫓았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예상한대로 도살자의 트럭은 모란시장에 도착했다. 트럭을 세운 그는 도살된 개들의 사체를 조금씩 나누어 여기저기 보신탕, 영양탕집에 전달했다. 매우 익숙한 몸짓으로 시장을 누비며 보신탕집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도살자의 손에는 장부로 보이는 수첩도 들려 있었다. 긴 세월을 그렇게 돈을 벌어온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 죽어간 개들이 얼마나 될지는 짐작도 하기 어려워 보였다.


도살장의 개들은 한 겨울 차디찬 뜬 장에 자신들을 방치해둔 도살자도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고 도살자를 향해 꼬리를 흔들던 개들은 결국 전기 쇠꼬챙이를 강제로 입에 물고 온몸이 전기로 타들어가는 극한의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리고 이내 토치에 태워져 '보신탕' 내지는  '영양탕'이라는 이름으로 조리되기 위해 시내 곳곳으로 팔려갔다.


2년 전 기록이지만 메모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그날의 차디한 겨울밤  공기, 떨리던 나의 손가락, 같이 나란히 서서 현장을 촬영하며 "구해줄게.."라고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던 동료의 목소리, 그리고 전기 쇠꼬챙이가 몸에 닿는 순간 내지르던 개들의 비명소리, 죽어가는 다른 개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 낑낑 신음하던 다른 개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적발된 도살장의 남은 개들은 전원 구조되었고 수십 년간 운영되었다던 고양시의 도살장은 결국 폐쇄되었다. 고발된 도살자는 검찰로 송치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처벌은 벌금형에 그쳤다. 무리 어렵게 증거를 직접 확보해도 황당하게도 처벌은 미비하기만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도살장을 추적하고 적발하고 도살장에 갇혀 있던 동물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지속했다. 이미 벌금형을 받은 고양시 도살자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여전히 도살 행위를 지속하다가 이듬해인 2021년 우리에게 또다시 적발되어 재차 고발되었다.


자신 앞에서 꼬리 치거나 벌벌 떨던 개들 죽여 그 댓가로 손쉽게 큰 돈을 벌어온 그는, 여러번의 고발과 처벌에도 자신의 행위를 멈출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불법 도살자를 대한민국 사법부은 벌금 몇 푼에 쉽게 용서하곤 했다.




죄 없이 고통 속에 떠나간 개들의 명복을 빈다.


신이 있다면 그들의 영혼을 가엽게 여겨 평안한 어딘가에서 쉬게 해 주리라 믿는다. 더불어 도살장에서 구조되어 살아나온 개들에게는 그들의 상처를 어뤄만져 줄 다정한 가족이 찾아와 주기를 꿈꿔 본다.


내가, 우리 단체가 대한민국 도살장의 모든 개를 구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오늘도 발로 뛰고 머리로 고민해 본다. 차가운 뜬 장 위에서 굶주림과 외로움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생명체들을 위해서.


+ 정부는 현재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사회적 논의체를 구성하는 등 이제서야 첫 걸음을 시작한 단계이다. 아직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체 몸길이 30cm, 이름 모를 아기 고양이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