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에 다른 길을 걷게 되다
나는 12년 동안 홈스쿨을 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홈스쿨러로 살아온 조금은 특별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홈스쿨에 대한 기억은 7살, 유치원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7살이었던 내게는 단짝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 학교로 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학교 안 간데"
'학교'에 대한 존재를 잘 몰랐기에 학교를 가고 싶거나 가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를 가는 건 단짝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모든 친구가 학교를 가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 유치원은 초등학교 안에 있었던 유치원이었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내게는 친구와 헤어지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엄마 왜 나는 학교 안 가?"
궁금해서 물었다.
"훈이는 엄마랑 같이 공부할 거야"
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어린 내게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엄마가 홈스쿨이 좋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신 것 같다.
"네. 엄마"
7살이었던 내게는 개인적 의견이 있지 않았다. 자퇴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이후에 바로 홈스쿨을 하는 경우는 부모님의 전적인 의견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나의 홈스쿨은 부모님의 결단으로 시작됐다.
홈스쿨은 그냥 할 수 없다. 아이를 방치하지 않는 이상, 부모님은 반드시 자기의 시간을 아이를 케어하는데 쏟아부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의 엄마는 아이들을 돌봐주는데 큰 시간을 쏟게 된다. 그나마 학교 가는 시간에라도 숨을 좀 돌릴 수 있겠지만 홈스쿨은 그렇지 못한다. 공부를 가르치는 것, 밥 해주는 것, 놀아주는 것 모두 해야 했다. 그것도 하루종일.
내 아빠는 개척 교회 목사님이시다. 그래서 그때 당시 아빠는 교회일로 바빴을 것이다. 엄마도 교회 일을 도왔어야 했다. 엄마가 거의 대부분 우리(나와 형)와 시간을 보내셨지만 우리가 조금 크고 나서는 교회에 가셨어야 했다. 내 형도 홈스쿨을 했던 터라 형이랑 제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랑 여행도 많이 다녔다. 연극도 보러 다녔고, 미술관도 보러 갔다. 교회에서 행사가 있으면 다 참석했다. 그때 교회는 내 유일한 '사회(司會)'였다. 홈스쿨은 반드시 '사회 기관'이 필요하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로 보게 된다. 나는 홈스쿨을 하기에 학교라는 '사회(司會)'가 없었다. 내가 속한 '사회(司會)'는 가족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것은 유일하게 교회뿐이었다.
공부를 했던 기억은 많이 없다. 아침에 엄마가 깨우면 계속 늦잠 자고 싶다고 말하며 이불 안에서 잘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항상 아침마다 창문을 여셨다. 사계절 반팔만 입고 지낸 나는 겨울이면 추워서 팔을 반팔 소매 속에 거꾸로 넣고 쭈뼛쭈뼛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홈스쿨의 유일한 친구는 형이라서, 형이랑 많이 놀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님의 수고 덕분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나름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행복함 이면의 어둠의 영역도, 성장의 고통도, 결핍된 부분도 형과 내 이면에서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