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을 시작하게 되다
"오늘부터 엄마랑 집에서 공부할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홈스쿨을 시작했다. 사실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형은 8살 때까지 학교를 다니고 홈스쿨을 시작해서 나도 따라 시작한 것이다. 내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엄마는 사모님이다. 자녀를 하나님 안에서 키우시겠다는 뜨거운 열정으로 기대반 걱정반 홈스쿨을 시작하셨다. 홈스쿨을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세상과 구별된 아이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기독교에서 홈스쿨은 많이 하는 교육 중 하나다.
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유치원에 대한 기억이 보다 강하게 남아있다. 크다 보니 친구들이 많이 없었던 내게 유치원 시절은 "친구들의 무리"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단서였다. 다들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지만 내 10대의 시절의 나 혼자의 암묵적 졸업식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8살에 입학한 학교는 집이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하고 다음 날이 됐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유치원을 가지 않는다. 등교가 따로 없다. 눈을 뜬 순간부터 아니 눈을 감기 전 아니 시작이 언제인지를 알 수 없는 학교다. 아이를 방치하지 않는 이상 홈스쿨은 부모님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점심을 제공해 준다. 홈스쿨을 하면 세끼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학교는 등교와 하교가 있다. 홈스쿨은 눈을 감고 뜨고 두 가지가 있다. 아니 그마저도 없는 것 같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부모님은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 생각한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점검한다. 학교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있다. 홈스쿨은 엄마가 선생님이자 친구다. 홈스쿨은 시작과 끝이 없었다.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홈스쿨이자 교육이었다.
열정만으로 시작한 홈스쿨은 오래가지 못한다. 비전과 철학이 필요하다. 끈기와 교육철학이 필요하다. 누군가 홈스쿨을 시작하고 싶다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기를 권장한다. 홈스쿨은 부모님, 그중에 엄마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끝없이 아이의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학교를 보내는 엄마의 마음도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홈스쿨을 하는 엄마는 학교에서의 역할을 또한 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굳건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강하게 담대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쉽게 되지 않는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지속은 어렵다. 끝없는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어려움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홈스쿨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는 가끔 엄마에게 홈스쿨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를 표현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얘기하신다.
"형한테 고마워해"
내가 홈스쿨을 받기 전에 나보다 먼저 홈스쿨 교육을 받은 형을 통해서 엄마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형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나도 당연 인정한다. 형을 통해 시행착오를 하셔서 내가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연극도 많이 보러 갔고 미술관도 많이 갔다. 어릴 적 미술관에 대한 좋은 경험을 갖고 있는 형은 지금도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로 따지면 현장학습체험을 많이 간 셈이다. 어린 나아게는 놀러 가는 게 재밌게 느껴졌을 뿐이다.
이처럼 엄마는 자유롭게 행복하게 홈스쿨을 해주셨다. 그런데 행복 이면에 문제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문제는 공부였다. 공부를 안 해서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제대로 된 "교과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읽고 쓰는 것을 못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학 진도가 조금 느릴 뿐 머리가 나쁘거나 그런 편도 아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될 것은 거의 없었으나 그때 당시, 내게는 큰 문제였다.
축구 클럽을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10살 때쯤 축구 훈련을 코치님께 받고 있었다.
"모두 오른쪽으로 90도 돌아"
애들은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정도로 돌았다. 그런데 나는 가만히 있었다.
90도가 뭔지 몰랐었던 것이었다.
코치님이 나를 혼내셨고,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미술학원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물고기는 어떻게 숨을 쉬지?"
나는 눈치를 보며 뭐지 생각하며 긴장을 했다.
아가미로 숨을 쉰다는 것을 그때에 나는 몰랐다.
내게 잘못은 없었다. 배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런 일들은 조금은 자주 일어났고 그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감은 떨어졌다. 상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다. 그들이 말하는 "상식"은 나에게는 상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의지"였다. 엄마는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으셔서 내 의지로 공부를 해야 했었다. 공부 머리도 없고, 옆에 공부하는 친구도 없었기에 내 노력으로 공부를 해야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또 열심히 살고 싶어 하는 성격이었어서 매일 7시에 일어나 8시간씩 공부를 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쯤 아주 큰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나의 10대에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