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의 기사회생 이야기
나는 초반에 그야말로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대학생 때야 처음 학교를 갔다.
유년시절 나의 사회는
교회, 몇몇 학원, 꿈드림이 전부였다.
부모님은 신앙의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해주셨다.
그 덕분에 남들의 눈치를 덜 보고,
내 ‘신념’과 ‘생각’에 집중했다.
고집 또한 강해졌다.
이러한 상태인 나의 대학생활은,
지금 돌아보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 있었지만
그때는 몰랐고,
신기하게도
내 뜻대로 신념대로 잘 풀렸다.
그러하였기에
나는 더 굳은 사람이 되었다.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군대에 들어가게 됐다.
군대는 내 신념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군대를 바꾸려고 했고,
내 기준에서 옳지 않음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밤새 tv를 보는 것과,
생활관에서 담배피는 것,
슬리퍼 통제하는 것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나는
결국 마음에 안 드는 여러 부분을 신고했다.
그중에서 정당한 일도 있지만
지금 봐도 별 것 아닌 것 또한 찔렀다.
문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나의 신념으로 인해
내가 찌른 사실을 이야기했다.
선임과 동기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무척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하도 많이 혼나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아찔한 느낌이 들었고,
하나님을 밤새 찾은 적도 있었다.
너무나도 많이 울었다.
모두가 나를 욕하였기에
피해망상증까지 걸렸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이 은혜로
상처는 회복되었고,
운동을 쉬지 않았고,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았고,
좌절 끝에는 다시 일어났다.
기도를 지속했고,
공부를 놓지 않았다.
하루는 한 병장이 나를 불렀다.
“훈아, 물이 엎질러졌다”
“예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5배는 더 혼나“
낙인효과…
한번 낙인이 찍히면
작은 실수라도 더 안 좋게 보여지는 것
무슨 자신감인지 얘기했다.
“제가 그 물을 하나하나 주어 담아서
잔이 넘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남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아질 게 없었다.
열심히
더 열심히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내 귀에도
돌고 도는 소문이 들렸다.
“훈이가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어”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를
좋게 봐주는 선임들이 생겼고,
좋게 생각해 주는 동기들도 늘어났다.
“훈이 분대장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분대장이 되면 휴가 6일을 얻을 수 있고
여러 권한이 생긴다.
군대 초반부터 내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분대장이었다.
또한 분대장이 되려면
이전 분대장이 분대장을 인계해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있는 6생 분대장이
내게 통신병을 하겠냐고 물었다.
보통 통신병이 되면 다른 부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쉴 수 있다.
하튼 여러모로 이점들이 있어,
많이들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분대장이랑 같이하는 것이라
나에게 제안해 준 것은 큰 기회였다.
하지만 통신병이 되면
주일예배 “단 한번”을 빠진다는 것을 알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분대장은
단 한번 빠지는 것이 안되냐고
의아해하면서 알겠다고 했다.
결국 통신병은 다른 동기에게 넘어갔다.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1월 마지막주부터
생활관 배치를 바꾼다는 공지가 있었다.
생활관에 소파를 두고 관물대를
한쪽에 놔두는
“공간력”이라는 것이다.
다른 생활관은 다 바꿨지만,
사람이 많아서 끝까지 못 바꾼 생활관이 있다.
내가 속한 4소대 두 개의 생활관과,
본부 생활관이다.
본래 다른 소대는 모두 3개의 생활관이 배치되지만
4소대는 추가로 만들어진 소대였기에,
두 개 생화관 밖에 없었다.
공간력을 적용하려면
생활관 하나를 더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4소대 3분대이다.
공급실을 생활관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공급실은 국방 TV가 연결되지 않았다.
본부 생활관이 그곳에 들어가야 했는데,
TV가 나오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4소대 인원을 두 개 생활관에서
세 개의 생활관으로 분배했다.
소대장님과 실세인 맞선임 4명에서 짰다.
그리고
4소대 3분대 분대장은
내가 지목되었다.
나는 군대 와서 TV를 한 번도 보지 않았고,
TV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있어서
TV가 없는 공급실을 것은 좋은 기회였다.
결국 분대장인 내가 가도 괜찮고
분대원들도 괜찮다고 해서
공급실로 가게 되었고,
나는
4소대 3분대 분대장이 되었다.
25명의 동기 중에
가장 낮고 미천했던 나는
가장 빨리 분대장을 달았다.
그것도 선임들과 동기들과
소대장님의 추천으로
분대장을 내려주는 사람을
“사수”라고 하고
분대장을 받는 사람은
“부사수”라고 한다.
나는 사수가 없다.
아니
내 사수는 “주님”인가
누구의 주관으로 내려받은 것이 아닌,
칭찬과 인정과 추천으로,
전례 없는 경우로 분대장이 되었다.
가장 편한 자리로,
가장 좋은 곳에 모든 것이 배치가 되었다.
분대장이기에 맡아야 하는 역할이 있고,
그에 따라 생활관 구조가 짜였다.
TV로 인해 힘들어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생활관중에 유일하게 TV가 없다.
생활관이 너무 시끄러워서 얼마나 힘들어했는가.
생화관이 이제는 완전히 조용해졌다.
공부할 책상과 의자가 없어서 집중을 못했지만,
생활관 전체에서 유일하게
우리 생활관에
고급 프리미엄 독서실 책상이 두 개가 들어왔다.
책상에 LED가 달려있고 책장도 있는
진짜 독서실에 있는 책상과 동일한 책상이다.
그중 하나에 나는 거의 하루 종일 공부한다.
이전 자리에 잘 때 얼굴 쪽으로 빛이 비쳐서
눈을 가리고 잤지만
지금은 어둡게 편하게 잘 수 있다.
또한 분대장이 되면
당직을 서야 하는데 짬이 낮은 순으로
주말에 근무를 서야 한다.
주일 예배를 빠지기 일쑤지만,
나는 기도하고 소대장님께 말해서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 오후에 근무를 서는 대신
주일 예배를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다.
이것 또한 전례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이건 하나님이 나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 것이다.
매일 생활관에 잠이 들 때면
감사함이 계속 흘러나온다.
내게 최고의 환경을 주셨다.
예전부터 나를 못되게 꾸짖고
지나가다 욕하며
나를 멸시한 동기가 있다.
그 동기는 다른 동기랑 싸우다가
심한 말을 해서 징계를 받고
4소대 다른 생활관에 오게 됐다.
소대장님은 4소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그 동기에게 얘기했다.
“훈이는 분대장이니 훈이 말 잘들어라“
예전에 나를 천대하는 그 동기는
징계를 받고 내 앞에서 인사를 하며
인사를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나는 그 친구를 반드시 존중해줘야 한다.
나 또한 힘들어했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분대장을 단 이후로
동기들도 선임들도 나를 존중해 준다.
교회에 더 사람들이 오는 것 같았다.
예전에 혼자 교회를 갈 때
그렇게 가자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10명이 그냥 온다.
주님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나를
높이고 은혜를 베푸시며,
긍휼히 여겨주셨다.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겠다고 한 나의 말은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주님은 생명의 샘으로 내 잔을 넘치게 하셨으며,
원수에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셨으며,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편한 환경에
나를 인도해 주셨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또 묵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분대장이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주의 복음을 위함이다.
오 아름다운 주의 복음,
내 삶에 소망을 주는 기쁜 소식,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이 나는 찬양하며,
전하며, 영광을 돌리며
앞으로의 군생활을 마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2월 둘째 주
후임 두 명이 지속적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두 명에게 작은 선물과
더포 책자를 전달했다.
- 2월 셋째 주
예전에 나를 안 좋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잘 지내는 동기에게 복음을 전했다.
- 2월 넷째 주
현재 최고 실세이자 병장인 선임이
나한테 전도해 보라고 해서
영상 근무 동안 열심히 설명해 드렸다.
- 3월 첫째 주
완전 에이스인 동기가 있는데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선물과 더포 책자를 전달해 줬다.
- 3월 둘째 주
영어시험 때문에 외출을 나오게 됐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다고 얘기하며
택시 아저씨한테 더포 책자와 간식을 드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날이다.
드디어 전도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현재 진행의 이야기가 되었다.
전도 일기를 쓸 때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이야기를 이렇게 써야지 하며
계획했지만
이제는 내가 스토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복음과 은혜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일기를 쓸 수가 없으실 것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저의 미래와 현재 진행의 전도 이야기를
많이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