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처럼 여린 감정을 존중하는 조직을 위하여
최근 읽은 소설 한 편이 문득 떠오릅니다.
<도둑의 왕>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와,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이 등장합니다.
아이에게 솜털은 ‘어린 티’가 나는 상징이자, 자신을 약하게 보이게 하는 저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반면, 이미 늙어버린 어른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잠시 잊고 싶어서,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 했죠.
이 이야기는 곧 우리가 사는 조직이라는 세상에도 이어집니다.
나이는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관점은 더더욱 다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 나이쯤 되면 다 알아야지.”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 오래 일했으면 이제 좀 양보하셔야죠.”
이처럼 서로 다른 입장과 시선이 부딪힐 때,
그 갈등은 조직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깊게 번져갑니다.
작은 마찰이 시끄러운 회의,
사소한 표현이 감정의 해킹이 되는 걸 우리는 종종 경험하죠.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는 단지 일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이 조직이라는 작은 사회 속 ‘시민’입니다.
시민이란, 단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고 공공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이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이 일을 함께하는가’라는 공감할 수 있는 대의가 없다면,
그곳은 금세 방향을 잃고 맙니다.
그렇다고 모든 개인의 욕망을 조직이 채워줄 순 없습니다.
모두의 바람을 맞추려다 보면, 조직은 무너지고 말아요.
그래서 “내가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보는 연습,
솜털처럼 여린 감정을 이해하고 품는 연습 말입니다.
공감을 중심으로,
공익을 중심으로,
우리가 함께 믿고 나아갈 수 있는 가치를 조직이 제시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강요받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문화는 아직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한국 기업이 앞으로 살아남을 유일한 길입니다.
기술은 모방할 수 있고,
노동은 기계가 대체할 수 있지만,
공감하는 문화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정신은 절대 복제할 수 없습니다.
솜털을 감추지 않아도 괜찮고,
조용히 감정을 나눌 수 있으며,
서로를 ‘내 편’이라 느낄 수 있는 조직.
그런 곳에서, 우리는 진짜 ‘일의 의미’를 찾게 될 거예요.
- 랜덤단어 글쓰기 스물두번째, 주제: 시민, 솜털, 저주, 시끄러운, 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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