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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노마드 Jun 04. 2021

왜 글을 쓰기로했냐구요?

연재를 시작하며



어릴 적 내 기억 속 어른의 삶이란 자유이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 어른의 삶이 이렇게 바쁜 일상 안에서 쳇바퀴처럼 흐르며

그날의 책임을 다하고, 끊임없는 결정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인 줄 몰랐다. 

일상 속에서 언제나 예상 밖의 일들이 불쑥 찾아온다. 

복잡하고 크고 작은 문제들에도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처리해야 그다음 바쁜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나의 감성선은 무뎌지고 단순해졌다. 

작은 문제에 오래 시간을 지체하거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컨트롤이 안되면 

그다음 내가 신경 써야 할 줄 서 있는 문제들은 지체되거나 구멍이 나버리니까 말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소소했던 일상의 즐거움, 

학기별 시험의 짜릿했던 긴장과 시험 후의 해방감, 대입 시험, 의사 고시, 인턴, 레지던트 때 바쁜 시간들.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던 성취와 기쁨들. 

지금 떠올려보니 그 길을 걸었던 시간 동안이 가장 다이내믹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 당시 어린 나는 불확실한 미래와 내가 결정할 수 없었던 상황들에 불만이 많았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며 그저 '어서 이 모든 것을 마치고 어서 안정적인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다.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세계는 조용하고 평온했지만 늘 분주하고 피로했다.




"자식은 몸밖의 심장이에요."


영화 《주디》의 초반에 나오는 주디 갈란드의 첫 대사다.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 가슴에 콕 박힌 대사이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학교와 학원이 셧다운 된 상태에서 집에 아이들을 두고 출근한 나의 마음을 이 대사가 한마디로 표현해준다. 출근을 하면 내 몸의 일부를 놓고 나온 느낌으로 기저에 불안함이 깔렸고, 뭔가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웠다. 

퇴근 후 집에서는 늘 검사실에서 보내올 콜을 받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점점 영혼은 분리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겉에서 보는 일상은 규칙적이고 평온하고 안정 그 자체였지만,

난 분 단위에 맞춰 내게 주어진일을 하나씩 클리어 하나 밤이 되면 피곤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는 길어졌지만, 

늘 정신은 분리된 상태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엄마, 나 좀 봐줘."라고 하면, "잠깐만, 엄마 판독해야 돼. 기다려. 잠깐만." 이런 대화가 일상이었다. 아들은 서운한 표정으로 "알았어.."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바쁘게 하루를 보냈는데 내가 뭘 했는지 기억할 수 없고, 

지쳐서 아이들과 곁에 있지만 아이들의 예쁜 말과 행동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어느 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원래 글이라고는 그 흔한 SNS도 잘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작하게 된 글쓰기다. 

 

소소하게는 일단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쓸 소재를 확보하기 위해 늘 스쳐 지나갔던 일상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날의 날씨와, 스쳐 지나간 나무와 풀과,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직원들과의 대화, 남편과의 농담들이 내 굳어 있는 감정선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늘 칙칙했던 일상에 색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와 글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시간들이 온전히 마음에 담겼다. 

머릿속을 꽉 채우던 느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자 묘한 시원함을 느꼈다. 

머릿속이 비워지고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내가 답답해했던 벽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글을 쓰는데 가장 머뭇거렸던 지점은 내 감정을 글에 솔직하게 담아내기 어려웠던 다는 것이었다. 내 글을 읽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일종의 자기 검열 때문이기도 했고. 또 이러한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습관처럼 쓰는 글쓰기를 통해 이런 부분들이 하나씩 극복되면서 솔직한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 그리고, 나의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재미있고 섬세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 내가 글쓰기로 얻은 수확이다. 


나의 생각과 내가 살았다는 증거를 글로 남긴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사실 내 일상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늘 수면은 부족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분단위로 움직이며 내게 주어진 문제들을 클리어하며 하루를 보낸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옮겨 다니며 영혼이 분리된 상태로 살아간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함으로써 좀 더 힘이 생겼다. 

쳇바퀴의 중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팽팽하게 내 중심을 잡고 끌고 가는 것 같다.


앞으로 글쓰기가 더 내 삶 안에 들어오면서 나는 더욱 빛날 나의 일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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