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헤아리고, 사람을 보듬고, 사람을 연민하는 음식

들어가며

by 윤십이월


사람을 헤아리고, 사람을 보듬고, 사람을 연민하는 음식

들어가며




아들,

엄마가 좀 일찍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나서 가까운 이들에게 글을 남겨야 하나, 남긴다면 어떤 내용을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거든. 고민 끝에 아들에게는 레시피를 남기기로 했어. 딸도 아니고 아들한테 하고 많은 글 중에 하필 레시피냐고? 너 혹시 유산 상속 같은 거 기대한 건 아니겠지? 나 죽으면 어디 어디 묻어 달라 뭐 그런 걸 생각했으려나? 그랬다면 미안. 물려줄 것도 딱히 부탁할 것도 없어. 내 삶의 흔적들은 세월과 함께 사라질 것이고 너는 네 삶을 살면 돼.

그래도 꼭 글을 남긴다면, 사실 치병 중에 남아도는 게 시간이거든, 너에게 꼭 필요한 실용적인 것을 남겨주고 싶어. 엄마가 오래오래 산다면 때 맞춰 챙겨주고 잔소리도 해줬을 만한 것들 말이야. 살아 있다면 참지 못 하고 대부분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겠지만 글로 남겨놓을 거니까 꼭 필요한 것만 가리고 뽑아서 쓸 수 있잖아.


엄마가 해줄 꼭 필요한 잔소리는 사람을 헤아리고 사람을 보듬고 사람을 연민하라는 거야. 여기서의 사람에는 너 자신도 포함된다는 거 잊지 마. 네가 가장 사려 깊게 헤아리고 네가 가장 따뜻하게 보듬고 네가 가장 가슴 깊이 연민해야 할 대상은 바로 너라는 존재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궁극에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야. 내가 너를 낳고 내가 너를 키웠지만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분명하잖아. 심지어 네가 내 태 안에 있었을 때조차 너는 나와 별개의 존재였던 것 같아. 그렇게 별개의 존재들이 모여서 말로 행위로 관계 맺으면 사는 게 삶이지.

대부분의 관계는 적절한 말과 행위로 끝나도 상관없어. 하지만 삶에서 몇몇 사람들과는 그 이상이 필요해. 우선 핏줄로 이어진 가족. 그다음은 연인, 그리고 친구 몇몇. 이 사람들과는 마음을 나눠야 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해져 내 마음이 그 마음속의 일부로 스며들고,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의 일부로 젖어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 같다. 때때로 그것은 아무 말이나 행위가 필요 없이 저절로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적절함을 넘어서는 곡진한 말과 행위로 표현되어야 해.


마음을 전하는 훌륭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을 만들어 주는 거야. 누군가를 위해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무언가를 손수 만들어 준다는 것. 그것만큼 곡진한 사랑의 표현 수단이 어디 있겠니? 목공을 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작곡을 할 수도 있고, 손수 할 수 있는 것들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요리는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야. 음식이야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늘 해 주셨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를 위해 음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더라.

그래서 엄마가 마음을 나누기 위해 네가 꼭 배워 놨으면 싶은 음식을 꼽아 봤어. 몇 개쯤이 좋을까, 어떤 게 좋을까 정말 오래 고민했단다. 이것도 가르쳐주고 싶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고 자꾸 욕심이 나기도 하는데 꼭 필요한 것, 어렵지 않은 것으로 딱 일곱 가지만 뽑았어. 짜잔!


1. 축복의 음식, 미역국

2. 돌봄의 음식, 흰 죽

3. 제사 음식, 소고기 뭇국

4. 휴식의 음식, 부침개

5. 나들이 음식, 김밥

6. 잔치 음식, 잡채

7. 네가 좋아하는 음식, 갈비찜


이제부터 하나하나 이 음식들의 엄마 레시피를 알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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