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음식, 미역국 1
생일에는 아이를 낳느라고 고생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미역국을 먹는 거래.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형제자매, 조부모 등 가족이 가장 간절히 떠오르는 날이 생일일 거야. 특히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면 말이야.
민간신앙에는 아이를 점지하고 지켜주는 삼신이라는 신이 있는데 미역국은 산모가 먹는 음식이면서 삼신에게 올리는 제물이기도 해. 그러니까 생일날 먹는 미역국도 인간의 음식이기 이전에 삼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거지. 옛날에는 아이들의 생일에는 반드시 미역국을 끓였지만 어른들의 생신에는 꼭 챙기지 않았어. 어른은 더 이상 삼신의 소관이 아니니까 굳이 필요가 없는 거야.
그래도 요즘 생일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미역국을 먹으니까 그것부터 배워 보자. 함께 사는 사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날 미역국 한 대접 정도는 손수 끓여줄 수 있어야 마음을 나눌 수 있겠지?
요리의 시작은 장 보기야. 좋은 식재료에서 좋은 요리가 나오는 것이니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식재료 구매부터 신경 써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행여 집에 미역이 없어서 미역국을 못 끓여줬다는 식의 핑계 댈 생각은 말아.
미역은 냉국용만 아니라면 어떤 걸 사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데 어떤 미역이냐에 따라 불리는 시간이나 조리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까 봉지에 쓰여 있는 걸 확인해야 해. 혹시 미리 장을 안 봐서 미역을 불릴 시간이 없다면 10분쯤만 불려도 된다는 것도 있으니 그런 걸 골라 사면돼. 이런 미역은 얇은 미역 잎을 잘게 잘라 포장한 것이라 편리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우러나는 깊은 맛은 부족해.
요즘 미역은 보관, 유통, 사용이 두루 편하도록 잘라서 봉지에 담아 팔지만 엄마 어렸을 때만 해도 집집마다 기다란 미역 줄기를 독 안에 넣어 두거나 광 시렁에 올려놓고 썼어. 질 좋은 미역은 값이 꽤 나가고 구하기도 힘들었으니까 산일이 가까우면 미역 준비도 큰 일이었지. 산모는 몸조리를 하는 삼칠일, 그러니까 21일 동안 하루에 세 끼 이상 미역국을 먹었거든. 그러니 그 양은 또 얼마나 많았겠니?
자, 좋은 미역을 골랐다면 그다음에는 소고기를 사야지. 일부 바닷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집에서 생일 미역국은 주로 소고기로 끓이거든. 소고기를 넣고 국을 끓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야. 고기를 덩어리 째 삶아 그 물로 국을 끓이고 삶은 고기를 양념해 얹는 방법이 있고, 고기를 적당히 썰어서 다른 건더기와 함께 볶다가 물 붓고 끓이는 방법이 있어. 덩어리를 삶아 쓰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절단 고기를 볶아 쓰는 게 편하니까 오늘은 이 방법으로 하자. 국 끓일 때 사용하는 소고기 부위는 사태나 양지인데 어차피 포장된 걸 사 올 테니까 절단 소고기 국거리로 사 오면 돼.
고기까지 준비됐으면 그다음엔 양념만 있으면 돼. 참기름, 국간장, 소금, 후추. 이게 기본이야. 미역국은 파, 고추 등 강한 양념을 안 하고 맑고 담백하게 끓이는 국이야.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엄마는 다진 마늘도 넣지 않고, 할머니는 마늘은 넣으셔.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필요한 재료는 액젓. 김치 담글 때 쓰는 액젓이 아니고 음식에 감칠맛 내기 위해 쓰는 맑은 액젓이 따로 있어. 이게 없으면 국물 맛이 잘 안 나니까 혹시 집에 없으면 이 기회에 하나 장만해.
필요한 재료가 준비됐으니까 이제 재료 전처리를 해보자. 소고기 미역국은 미역을 불리기만 하면 돼. 양은 얼마나 해야 할까, 시간을 얼마나 둬야 할까? 엄마한테 물어보지 말고 미역 포장지에 쓰여 있는 걸 읽어봐. 전체가 10인분인데 넌 2인분만 조리하고 싶다면 5분의 1만 불리면 되잖아.
만약 안 적혀 있다면 마른미역은 물에 불리면 대략 8배쯤 불어난다는 걸 기억해 둬. 생각보다 많이 불어나지? 말린 국수나 버섯 같은 것들보다 훨씬 많이 불어나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어. 마른미역 집어 먹으면 큰일 난다는 것도 이래서 하는 말이고.
미역을 불리는 시간도 미역의 종류, 가공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보통 봉지에 담아 파는 잎 중심의 미역은 찬물에 30분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줄기가 두툼한 돌미역은 이 정도로는 안 되고 1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줘야 하고. 아무리 급해도 더운물에 불리면 미역이 풀어져서 안 돼.
요리의 반은 식재료가, 나머지 반 중의 다시 반은 시간이, 또 나머지 반 중에 다시 반은 불이 해주는 거야.
자, 이제 시간이 요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다른 얘기를 해볼까?
엄마는 어려서부터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아. 엄마뿐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교육받고 자란 우리 세대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야. 그 보다 앞 세대 어른들은 생산성 대신에 근면해야 한다는 덕목에 얽매어 살았고, 그거나 그거나 별반 다를 것 없는 말이지. 잠깐이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나 스스로 게으름을 책망하고 생산성을 점검하곤 했어.
그런데 두 번의 임신 기간만은 내가 자연스럽게 이 생산성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어. 내 몸 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사람이었거든. 내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는 동안 나는, 기막힌 발견이나 발명을 해낸 과학자나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경영인이나 전 인류를 감동시킬 작품을 만든 예술가 보다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생산적인 사람이었어. 하루 종일 숨만 쉬고 있어도 말이야. 내 몸 안에는 하나의 우주가 자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몸 안에서 생겨나 자라난 첫 번째 우주가 바로 너야. 무한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우주!
아들,
엄마는 너희들에게 강박적으로 근면, 성실, 생산성 등을 강요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어.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내가 너를 내 몸 안에 품고 그러했듯이, 너는 세상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존재니까. 너는 엄마처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희생하기보다는 너 자신의 만족을 위한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현재를 즐기는 가운데 미래를 도모했으면 좋겠어.
세상이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사실 인생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아. 경쟁과 차별, 갈등과 좌절은 어디에서나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지. 너는 어쩌면 하기 싫은 일,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쏟아부으며 밥벌이를 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잊지 마. 부족해도 상처받아도 한 구석 부서져도, 내 몸 안에 깃들여 있을 때 그러했듯이,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우주야.
아들, 엄마가 없어도 매해 네 생일에는 잘 끓인 미역국에 밥 말아먹으며 너 자신의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상기해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