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음식, 미역국 2
미역이 불었으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불린 미역은 바락바락 주물러서 씻어야 해. 바락바락 주무르는 것은 빨래를 할 때처럼 손으로 힘을 줘서 쥐었다 놨다 하면서 동시에 미역끼리 문질러 가면서 빠는 거야. 거품이 빠지고 약간 비릿한 냄새도 빠지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이렇게 씻은 미역은 물기를 짜낸 다음 바구니에 담아. 물기는 너무 꽉 짤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는 짜 주는 게 좋아.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 미역 잘라 주기. 아주 잘게 잘라 나오는 미역도 있기는 한데 대부분의 미역은 불린 다음에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줘야 해. 안 그러면 미역으로 면치기 해야 하거든.
큰 냄비에 씻어서 잘라 놓은 미역과 소고기를 넣고 국간장과 참기름, 후춧가루를 넣은 다음 양념이 배도록 손으로 주물러줘. 그런 다음 불을 켜는 거야. 이건 사실 할머니 비법이야. 할머니는 국 건더기, 나물 등을 볶기 전에 냄비나 팬 위에서 주물러 양념하시더라고. 할머니는 불을 켜 놓으신 상태에서 온도가 올라올 때까지 주물러서 양념을 하셨지만 위험하니까 너는 그렇게 하지 말고 불 켜기 전에 끝내.
불은 큰 불로 시작해. 주걱이나 큰 숟가락으로 재료를 저어 가면서 고기 색깔이 갈색이 날 때까지 골고루 익혀 줘. 미역의 물기를 너무 꽉 짜버렸다면 이 단계에서 미역이 탈 수도 있는데 그럴 땐 물을 몇 숟갈 넣으면 돼.
재료에 양념이 충분히 뱄으면 이제 물을 부어야지. 물은 건더기의 양을 보아가며 넣으면 돼 미역국은 건더기가 부풀어 오르거나 줄어들 만한 게 없으니까 건더기의 3배 정도 부으면 될 것 같아. 그러면 끓는 동안 국물이 증발해서 최종적으로는 2배 정도 남을 거야. 우리 집처럼 미역 건더기 좋아하는 집은 이 정도가 맞아.
뚜껑을 덮고 센 불에 끓이다가 완전히 끓어오르고 나면, 중불로 줄이고 국물에 간을 해야 해. 미역과 고기에 국간장으로 밑간을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어림없어. 우리 집 큰 냄비의 2/3 정도 분량을 끓일 때 엄마는 국간장 2숟가락, 액젓 1숟가락을 넣어줘. 이걸로 간을 다 하는 게 아니니까 지금 간을 볼 필요는 없어. 국간장과 액젓은 간을 맞추면서 동시에 감칠맛을 내주는 양념이야. 국간장은 덤으로 색을 내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혹시 국간장이 너무 짜고 색이 진하면 양을 좀 줄여야 해. 액젓도 마찬가지로 액젓의 종류에 따라 염도가 다르니까 봐가면서 넣어야 해. 간 마늘을 넣을 거면 이때 같이 넣으면 되는데, 양을 많이 넣지 않는 게 좋아. 1/3 숟가락이나 1/4 숟가락 정도 살짝 넣어줘. 그래야 마늘이 미역국의 향을 죽이지 않아.
그다음에는 중불에서 10분 정도는 끓여야 하는데, 이때 냄비가 작으면 끓어 넘칠 수 있으니까 뚜껑을 살짝 열어 놓으면 좋아. 국은 오래 끓여야 맛있다고 하는데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아. 된장국의 경우는 재료가 익을 만큼만 끓여서 바로 먹어야 맛있어. 미역국은 오래 끓여야 맛있는 대표적인 국이지. 생일 미역국을 끓였는데 오히려 남은 것을 다음날 데워 먹을 때 더 맛있거든. 미역국은 끓일수록 미역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이고, 된장국은 오래 끓이면 된장 맛이 텁텁해 지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제 약불로 줄여 뚜껑을 덮고 다시 20분 이상 푹 끓여 보자고. 그전에 간을 완성해야지. 간을 보고 나머지 간은 소금으로 맞춰.
불이 요리하는 동안 우리는 미역에 대해 얘기해 보자. 해조류를 먹는 지역은 드물고, 특히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식재료라고 하지.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 중에서도 미역만큼은 못 먹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더라고. 김은 그렇게 잘 먹으면서 같은 해조류인데 미역은 왜 못 먹을까 싶다가도 불려 놓은 미역을 만져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어쩌면 미역은 낯선 음식, 혹은 낯선 문화 전반에 대해서 우리가 느끼는 이물감을 대표할 만한 식재료인 것 같아.
차고 미끈거리고 흐느적거리고 칙칙한 존재.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어쩌다 아기를 낳은 뒤에 이런 이물스러운 것을 먹기 시작했을까? 미역은 바닷가에 살며 수시로 바다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배를 채우려고 먹기 시작했을 수도 있고, 몸을 푼 고래가 멱 감는 걸 보고 산모 몸에 이롭다고 생각해 먹게 됐을 수도 있어. 어찌 됐든 산모들이 두루 먹게 된 것은 산모 몸에 좋다는 것이 자체 임상으로 검증됐기 때문일 거야. 우리에게 친숙한 모든 식재료가 다 그러하듯이 말이야.
여기서 엄마가 충격적인 고백을 하나 할 게. 미역 얘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것도 다 이것 때문이지. 네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너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보송보송하지 않았어. 너는 퉁퉁 붓고 눈도 한쪽밖에 뜨지 못해서 마치 새빨간 외눈박이 괴물 같아 보였어.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는 얘기지? 네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들은 첫 말이 ‘어머! 너무 못 생겼다’라는 수련의사의 호들갑이었고, 엄마가 척추 마취 상태에서 그 말을 듣고 누군지 찾아내 따지겠다고 벼르고 벼르다가 너를 대면 한 뒤 그만뒀다는 것까지.
그건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뿐이고, 웃자고 하는 그 얘기 속에 실은 엄마의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 숨어 있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만 해도 내 몸속에서 나의 일부로 함께 했던 너는 순식간에 타자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어. 정말 큰 충격이었지. 그런데 그 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방금 내 배에서 나온 존재가 전혀 살갑지 않았다는 거야. 오,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 이런 모성이 저절로 샘솟으리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말이지.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 신화는 모두 개나 물어가라고 해.
갓 낳아 놓은 너는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이라기보다는 어느 먼 우주를 건너온 낯선 손님 같아 보였어. 엄마는 내게 모성애가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 낯선 손님과의 불편한 조우, 산후의 육체적 고통과 호르몬의 장난으로 겹겹이 당혹스러웠어.
그때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라. 그런 거라고. 산모마다, 아이마다 다른데, 특히 첫 애 때는 자기 아이인데도 뜨악할 수 있다고. 키우면서 정도 차츰 생기는 거라고. 그 말 그대로 너를 키우면서 급속히 정이 샘솟았고, 둘째 때는 또 달랐어. 키우면서 정이 솟아났다고 해도 그게 몇 년씩 걸린 건 아니고, 그 서먹함은 불과 며칠 안에 끝났어.
엄마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때 그 심리적 거리 두기를 통한 탐색과 숙고의 시간은 어쩌면 내가 아니라 네가 의도한 게 아니었나. 그때 너의 눈빛은 무기력한 반숙으로 태어나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영아의 것이 아니었어. 그건 완고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한 어떤 존재의 복잡하고 냉담한 눈빛이었지.
다시 차고 미끈거리고 흐느적거리는 촉감과 칙칙한 빛깔의 세상 무엇보다 이물스러운 식재료, 미역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역국을 먹으며 엄마는 너와 눈을 맞췄고, 미역만큼이나 낯선 손님을 예의와 정성을 다해 맞아들였어. 그렇게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타자가 되었고, 구렁덩덩 신선비처럼 예쁜 아기가 되기도 했지.
그러니까 아들, 절대 속지 마.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무조건 사랑해서 너를 위해 무언가를 강요한다는 말. 모두 거짓말이야. 너는 처음부터 독립된 인격으로 내게 왔고 나는 너를 손님으로 맞아들였어. 혹시 사랑의 이름으로 네 의지에 반하는 무언가를 강요한다면 그건 엄마가 망령 난 거야.
외계의 생명체처럼 이물스러운 식재료로 국을 잘 끓였다면 마지막으로 후추를 취향껏 뿌려줘. 미역국에는 위에 얹는 꾸미도 필요 없고 먹기 전에 추가해야 할 양념도 별로 없어. 그냥 먹으면 돼.
아들, 엄마 없더라도 생일날 미역국 끓여 먹어. 삼신할머니 굶기지 말고.
*추신: 정확한 레시피는 왜 없냐고? 충남 예산의 35년생 송명예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요리는 레시피를 따르는 것이 아닌 감으로 하는 것이다.”
([요리는 감이야] 51명의 충청도 할머니들 / 창비교육 / 초판 6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