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원산에서 경성 (京城)으로- 서울 1932년

미산부인과 무당 청아

by Siesta

이 글은 사실을 토대로 하였으나,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인명은 소설의 전개를 위해 재구성된 허구임을 밝힙니다.

옛 추억에 깊이 잠겨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가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이 글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경성, 1932년


원산을 도망쳐 나온 미산 부인과 청아는 경성(서울) 지방으로 온다.

눈이 많은 산길을 숨어서 걸어 오느라 거의 한 달이 걸린다.


이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청아는 다섯 살 때 신이 내려 어미가 버린 아이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박수무당에게 판 그날부터 성폭력(性暴力), 성적 학대(性的 虐待)를 당한 청아였지만 청아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담담했다.

물론 열세 살의 이 아이는 어디를 봐도 열세 살의 여아 모습은 찾을 수 없이 성숙해 있었지만 자신의 신세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은 담담함은 미산 부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1930년대 조선 땅에는 “아동 보호법”도 없었고 “남녀평등”도 없었고 “인권주의”도 없었고 “민주주의”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동물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던 것이 하녀나 노예, 고아나 가난한 평민, 농민그리고 원치 않는 계집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처지였다.


“신이 내렸으니 박수무당과 가서 살아라”

라고 아이를 판 청아의 어미는 딸을 일곱 명이나 낳은 여자였다.

아들이 나올때까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딸만 낳은 이 어미는 이미 딸 4명을 일본 관리들에게 식모로 팔고 또 8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도저히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신세가 되자 눈빛과 말투가 범상하지 않은 청아를 박수무당에게 팔았다.

“ 어머니, 제발 저를 보내지 마시오. 제가 어머니가 시키는 것은 모두 다 잘하고 밥도 많이 안 먹겠습니다. 어머니 잘못 했습니다. 어제 너무 배 고파서 그냥 아버지 밥 한 숟갈 먹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했습니다. 용서 해 주십시오”

청아의 어미가 결정적으로 청아를 박수무당에게 보내기로 결심한 것은 남편을 주려고 정성스럽게 감추어 놓은 보리밥 한 공기를 청아가 요술처럼 찾아내서 한숱가락을 뚝 떠먹어 버린 것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게 화가 나서 청아를 박수무당에게 주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울고불고 문고리를 잡고 어미의 발을 잡고 발버둥을 쳤지만,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다섯 살에 알았다.

박수무당과 같은 이불을 덮고 박수무당이 시키는 대로 이불 속에서 온갖 성 노리개가 되었을 때도 그냥 이것이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려니 하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청아에겐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지혜와 힘이 생겨났다.

청아의 눈빛은 마치 사람의 영혼을 넘어 다른 차원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고 청아의 한마디 한마디는 말투와 음성 모두 사람의 뇌수에 꽂혔다.

산속의 온갖 약초와 광물(石質)을 알고 있었으며,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로 짐승들과 이야기를 했다. 알 수 없는 주문으로 산토끼를 잡았고,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요상한 소리로 공중의 새를 떨어뜨렸다.

한 달간 원산에서 경성으로 걸으며 미산 부인은 점점 더 청아를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경성으로 들어온 둘은 어디서 어떻게 삶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청아가 말했다.


“내 전에 내 언니들에게 ‘경성엔 기생조합이라는 것이 있어 재주가 좋으면 숙식을 제공받고 권번 주인에게 잘 보이면 일도 할 수 있다’고 들었소. 내가 한번 가서 권번 주인을 만나 마음에 들게 해 볼 테니 날 좀 도와주시오.”


“거긴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여… 경성의 기생조합에 들어가는 기생은 절세미인 이어야 하고 춤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글도 어느정도는 읽어야해…”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니 청아는 절세미인은 아니지만 누구도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강한 인상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무당 교육을 받아 춤도 노래도 잘하고 고대감 집에서 고대감 부인과 양반들의 많은 일상을 같이해서 유식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

미산부인이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 말했다.


“장터에 가서 내가 잡은 토끼 두 마리와 천을 바꿔 올 테니 오늘 중으로 옷을 한번 멋지게 만들어 줄 수 있겠소?”

미산 부인은 아기의 출산을 돕고 산모와 아기의 옷을 만들어 팔던 재주가 많은 여자였다.

“실, 바늘, 가위만 있으면 세 시간이면 한 벌 만들지… 그런데 아이고… 날씨가 너무 춥네… 손이 언 것 같아… 이 손으로 바느질 할까 모르겠네.”


1월 말의 찬 바람이 경성의 거리를 휘휘 지나다니고 있었다.

청아는 한낮의 지붕에서 기와 한 장을 꺼내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 비나비나 수리수리 “

그러자 기왓장이 갑자기 따끈하게 되어 있었다.

“이걸 들고 다니시오.”

미산 부인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청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왓장에 손을 녹였다.

“네가 요괴는 요괴구나!”

청아가 요염하게 활짝 웃었다.

“청아는 육체의 세계를 이미 초월했소. 어떻게 우리가 한 달간 산속에서 얼어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소? 내가 우리 잠터 주변 바위를 온돌방처럼 달구어 놓은 것을 몰랐소? 어미가 나를 버린 그날밤 박수무당은 나를 추운 냉방에 재웠소… 그날 나는 온 방을 따듯하게 하는 신의 능력이 내려 살아 남을 수 있었오.

미산 부인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기왓장을 꼭 끌어안으며 청아를 .보았다.

토끼 두 마리를 들고 장터로 갔던 청아가 곱고 화려한 비단 천을 손에 들고 미산 부인에게 왔다.

“여기 천이랑 가위, 실, 바늘이 모두 있으니 옷을 만들어 주시오.”

“토끼 두 마리로 이걸 다 줬어?”

“내가 뭘 더 주고 이걸 얻어 왔는지는 미산 부인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이렇게 말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미산 부인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기왓장에 손을 녹이며 미산 부인은 길에 앉아서 청아의 옷을 만들었다.

완성된 옷을 입은 청아는 설명할 수 없는 카리스마 한 자태를 보였다.

“우와… 양반 마님이 따로 없네. 어찌 이렇게 곱냐… 옷이 날개라더만…”

“미산 부인, 고맙소. 내 오늘 밤 우리 둘이 묵을 숙소를 찾아내어 돌아오겠으니 여기서 좀 기다리시오. 오늘이 내가 만으로 열 네 살 되는 날이오. 내 인생을 바꿀 이 선물은 평생 잊지 않겠소.”

청아는 칡뿌리 3개를 미산 부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로 요기를 채우고 있으시오.”

이렇게 말하고 경성의 기생조합이 있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산 부인은 칡뿌리를 먹으며 생각했다.

몸뚱아리 하나 가지고 이 세상 살아가야 하는 우리 같은 인생들은 청아같이 어려서부터 너무나 마음고생, 몸고생을 하면 아수라 왕이 그 혼란스러운 어린 정신세계에 초자연적인 혼돈의 힘, 마력을 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출산을 돕는 산파 미산 부인은 불교에서는 생명체가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누는 것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상(天), 인간(人),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어려서부터 인간이 차마 견뎌내지 못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람은 아수라 왕이 문을 열고 나와 인간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아마도 청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사는 아이인지도 모른다.

다섯 살에 가족과 떨어질 때의 지옥 같은 마음과 박수무당의 성 노리개가 되었던 5년의 시절, 그리고 어머니같이 따르던 고 대감 부인의 배신…

모두 어린 청아가 감당하기엔 너무 지옥 같은 일들이라 아수라 왕이 문을 열고 나와 청아에게 마력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장터 사람들이 모두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미산 부인은 기왓장을 꼭 안고 땅을 바라보며 반은 잠들어 있었다.

그때 청아가 나타났다.

“미산 부인, 어서 일어나시오. 오늘부터 우리가 거할 장소를 찾았소.”

깜짝 놀라 잠이 깬 미산 부인이 청아를 보았다.

옆에는 젊은 순사부장(巡査部長・じゅんさぶちょう)같이 보이는 사람이 웃으며 청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분이 우리를 양주 권번 주인에게 소개시켜 주고 기생들이 있는 기숙사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했어요.”

청아는 유창한 일본어로 미산 부인에게 말하며 일본 순사의 몸에 딱 붙어 아양을 떨었다.

“이렇게 잘생기고 멋진 분을 만난 건 모두 하늘이 도와주셔서지요!그렇죠 이시마루 (石丸) ”

열 살 때부터 고 대감의 집에서 딸처럼 권력을 가지고 있던 청아는 고 대감의 부인에게 완벽하게 일본말을 배웠었다.


미산 부인은 생각했다.

‘하늘이 내리긴 내린 계집이구먼… 아님 아수라 왕이 딱 붙어 지키고 있던가…’


청아는 순사부장의 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속닥속닥 말했다.

그러자 순사부장의 얼굴이 빨개지며 청아를 꼭 안고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경성의 기생조합에 들어갔다.

양주 권번 주인은 순사부장의 친한 친구로 마치 청아를 옛날부터 알던 계집처럼 웃으며 반겼다.

청아가 기생집으로 들어가 3~4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청아는 이 두 남자의 혼을 완전히 빼 놓고 나온 것 같았다.


그날부터 청아는 기생으로, 미산 부인은 청아의 몸종으로 양주 권번(기생조합)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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