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카와 최의생
이 글은 사실을 토대로 하였으나,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인명은 소설의 전개를 위해 재구성된 허구임을 밝힙니다.
옛 추억에 깊이 잠겨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가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이 글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최의생이 자신의 서재에 숨겨놓고 치료를 하던 하루카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난산 후 염증이 너무 심해 출혈도 많고 열도 높았으나, 젊은 몸이라 점차 회복되어 갔다.
최준이 의생(醫生)은 충청북도 청주에 있던 충청북도립 청주의원으로 이직되는 것이 정해졌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말수가 적은 최 의생은 원산의 지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말만 한 뒤, 하루카를 몰래 데리고 기차를 탔다.
그들은 경성(서울)을 거쳐 청주로 이동했다.
하루카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최 의생을 따라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하루카가 눈물을 글썽이며 최 의생을 보았다.
“제 딸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걱정 마시오. 내가 고 대감을 찾아뵙고 왔는데, 딸은 건강하고 유모가 잘 키우고 있소.”
“제가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요.”
“고 대감의 집에서는 하루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좋을 겁니다.”
하루카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만 안아볼 기회도 없겠지요…”
최 의생은 눈물을 쏟고 있는 하루카를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한 번 보지도 못한 딸이 그리워 저리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정을 전혀 붙이지 않았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시오.”
“최 의생님은 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셨나요?”
“마치 사내아이처럼 잘생겼소. 눈도 초롱초롱하고… 걱정하지 마시오.”
하루카는 자신의 쏟아지는 눈물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는 눈물인지, 얼굴도 못 보고 헤어진 딸을 그리워하는 눈물인지, 아니면 이런 신세를 타고난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서러워 흘리는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 의생은 행건(行巾, 수건) 을 꺼내 하루카에게 건네주었다. 하루카는 행건으로 입을 막고 조금씩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 했다.
“고 대감은 학식이 박식하고 사리가 분명한 존경스러운 분이오. 하루카의 딸을 잘 키우실 것입니다.”
하루카는 눈물을 멈추고 기차 밖의 먼 강원도의 산을 바라보았다.
흰 눈에 싸인 일월(一月)의 첩첩산중은 하루카의 겹겹이 쌓인 인생의 한(恨)과 같이 여겨졌다. 보지도 못한 딸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그 어떤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최 의생은 일본 서적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하루카는 하염없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두 사람은 경성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 하룻밤을 자고, 다시 경성에서 청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같이,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어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성에서 청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최 의생은 하루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예전에 읽은 **단장지애(斷腸之哀)**에 대한 글을 떠올렸다.
**'단장의 아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이라는 뜻으로, 견딜 수 없이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모원단장(母猿斷腸) 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편(黜免篇)'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중국 동진(東晉)시대, 장수 환온(桓溫)이 촉(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수많은 배에 군사를 싣고 양쯔강(장강) 중류의 험준한 삼협(三峽)을 지나던 중 일어난 일이다. 군대가 잠시 강가에 배를 정박하고 휴식을 취할 때, 한 병사가 장난삼아 강변 절벽에 있던 어미 원숭이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붙잡아 배에 태웠다.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는 절규하며 배가 움직이는 강변을 따라 **백여 리(약 40km)**를 쉬지 않고 슬피 울부짖으며 쫓아왔다고 한다. 마침내 배가 다시 강가에 가까워지자, 어미 원숭이는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배 위로 뛰어올랐지만, 곧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병사들이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속을 들여다보니,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마디마디 토막 나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하루카의 얼굴은 마치 이미 창자가 끊어져 죽어버린 짐승같이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잘 삼키지도 못했다.
최 의생은 하루카에게 여관 주인이 만들어 팔은 주먹밥을 내어주며“쌀과 물이라도 좀 먹어야 기운을 차립니다.”라고 말했지만, 하루카는 말없이 쌀 몇 알을 겨우 먹고 말았다.
청주에 도착한 최의생은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고향의 변한 모습에 어리둥절 했다.
너무나 변한 청주의 모습에 어디로 향해야 할지 멈칫했다.
자신의 개조된 한옥집이 있는 남주동으로 향했다.
1911년부터 시작된 시가지 개수 계획으로 청주읍성의 성벽은 완전히 헐린 상태였다.
성벽이 있던 자리는 성안길 이라 불리는 신작로가 되었고, 도시는 일본식 격자형 도로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본정통(Honmachi, 현재의 성안길)은 당시 청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되어 있었고 일본인 상점, 백화점 분점, 카페, 시계점 등이 늘어서 있어서, 밤이면 전등이 켜져 근대적인 야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남주동 시장 부근은 조선 상인들과 서민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청주는 충북의 행정 중심지로, 서양식 석조 건물과 일본식 목조 관청이 혼재되어 있었다.1921년 충북선 개통으로 현재의 시청 인근에 세워진 청주역은 도시의 관문이었으며. 역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여관(료칸)과 운송 회사들이 밀집해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철길은 청주가 더 이상 농업 도시가 아닌 유통과 교통의 요지임을 상징했다
도청 근처나 전망이 좋은 언덕 쪽에는 일본 관리들을 위한 **'사택(관사)'**들이 단지를 이루었고 검은 기와를 얹은 가파른 지붕, 나무 울타리가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주택들이 정갈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수동과 영동 지역은 일본인 유력자들이나 상급 관리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정원이 잘 가꾸어진 고급 일본식 가옥들이 많이 있었고 도심 외곽이나 낮은 저지대에는 조선인 가옥인 전통적인 초가나 낡은 기와집들이 밀집해 있어, 일본식 구역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최 의생의 집은 개조된 한옥 으로 남주동일대의 명문가 동네에 있었다.
몰락한 양반가지만 위엄을 지키기 위해 솟을대문은 유지하고, 내부는 일본식 미닫이문과 유리창을 덧대어 추위를 막는 식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최 의생의 집안은 경제적으로는 몰락했으나 대를 잇는 조선 양반 가문이었다.
최 의생과 남동생 둘이 모두 신식 공부를 하고 일본 정부를 도와 일하고 있었다.
최 의생의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모두 고집이 세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양반가로, 혈통과 가문을 중요시하는 분들이었다.
젊은 여인을 데리고 청주로 온 최 의생을 본 부모들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구를 데리고 이 먼 길을 여행한 거냐?”
“네. 제가 의학을 가르쳐서 제 개인 진료소를 낼 때 쓸 간호사입니다. 일본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한국인입니다.”
최 의생은 이렇게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름은 정한아입니다. 부모님은 모두 일본에 거주하시고요. 고 대감님의 소개로 알게 된 간호사입니다.”
최 의생의 아버지가 하루카를 다시 유심히 보았다.
“어디 정씨이십니까?”
하루카가 갑자기 묻는 최 의생 아버지의 말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최 의생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나주 정씨입니다.”
최 의생의 아버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예의 없게 말을 가로막고 네가 대답을 해버리느냐. 그럼 부모님은 전라도 출신이신가요?”
“네…” 하루카가 힘없이 대답했다.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던 최 의생의 어머니가 아들이 피곤한 것이 더 걱정이 되어 말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하지? 어서 손님방으로 들어가 쉬게. 준이 너도 어서 쉬거라.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테니.”
최 의생의 어머니가 하루카의 짐을 하인에게 들게 하고는 손님들이 거처하는 객실로 데리고 갔다.
최 의생의 아버지가 물었다.
“일본 여자와는 절대로 혼인 못 시킨다!”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럼 일본 여자 맞구먼.”
“재주가 많고 제가 진료소를 개업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데리고 왔습니다. 고 대감의 옛 책장수 친구의 딸인데, 고아가 되어 고 대감이 열 살부터 거두어주고 부엌일을 시키던 여식입니다.”
“그런데 왜 널 따라왔어?”
“사정이 딱하게 되어 고 대감님의 집에 더 있을 수 없어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묻지 않겠다. 하지만 일본 여자와의 혼인은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절대로 안 된다.”
“그런 사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 됐다.”
이렇게 말하고는 최 의원의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을 몇 년 만에 보아도 이런 딱딱한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한국 조선시대 양반들의 품격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계급이 낮거나 저속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조선 양반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해야 할 말만 하고 감정은 숨기는 것이 품위 있는 양반들의 태도라 생각했다.
그 날부터 최 의생은 하루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심부름을 시키며 의술을 가르쳤다. 머리가 좋고 차분한 하루카는 빠르게 일을 배웠으며, 병원 내에서도 많은 의사들이 하루카를 보조원으로 쓰고 싶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 의생은 하루카의 차분함과 스펀지처럼 조용히 모든 일을 배우는 모습이 신기했다. 함께 병원에 있으면서 일본에서 오는 일본말 의학 서적이나 의학 잡지들을 하루카와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년이 지나자 최 의생은 그 어떤 의사보다도 더 하루카와 자신의 의학적인 소견, 의사들의 정치적인 미래, 정치와 역사 등 모든 방면으로 훨씬 더 심층적이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책장수 아버지 쇼베이를 따라 일본을 나와 원산 항구로 한국 땅에 들어와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책을 팔았던 하루카에게 책과 여행은 어린 시절 그 자체였다. 고 대감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 이후에도, 고 대감이 쇼베이와 이야기하듯 자신과 이야기하며 책을 건네주어 항상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루카는 이렇게 최 의생과 같이 일을 하면서 다시 아버지와 함께 책장사를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의 안식을 느꼈다.
최 의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국 어린 순덕이를 살리지 못했소. 단순한 폐렴균 감염이었을 텐데. 도무지 속수무책이니... 이것이 우리가 가진 의학의 전부란 말이오.”
하루카가 조용히 의학 잡지들을 한쪽에 정리하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밤낮으로 애쓰시는 것을 알지만, 우리 청주가 가진 것과 저 멀리 유럽의 상황은 너무나 다릅니다. 제가 지난번에 읽은 독일 의학 잡지에는 감염병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항생 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고 하던데요. 우리는 고작 이 아스피린과 요오드만 믿고 버티고 있으니…”
최준이 의생이 답답한 듯 의사 가운을 벗으며 말했다.
“항생 물질이라...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멋지단 말이오. 하지만 이곳까지 오려면 아마 십 년은 더 걸리겠지요. 당장 우리 눈앞에 만연한 것은 이름도 거창한 균이 아니라, 그저 더러운 물과 영양 부족이 낳은 병들뿐이오.”
하루카는 조용히 의료 도구들을 정리하며 갑자기 밀려오는 고통을 느꼈다.
“ 월경이 끝난지 15일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배를 움켜쥐었다. .
심하게 밀려오는 복통과 골반을 갉아 내리는 것같은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난산으로 인한 심한 염증으로 하루카는 골반염(Pelvic Inflammatory Disease, PID) 을 심하게 앓아, 생리 때가 되면 만성 골반 통증을 앓았고, 불규칙한 생리로 인해 항상 언제 피가 나올지 몰라 걱정하며 지내야 했다.
하지만 하루카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 아픔을 말할 수 없었고, 그저 견디고 일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좀 멈추자 물끄러미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최준이 의생을 보았다.
최 의생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 나라의 가장 큰 적은 결핵(結核)이오. 백이면 백, 한 집안에 폐병 환자가 없는 곳이 없어요. 흔히 하얀 재앙 이라 불리는 이 병을 막으려면 깨끗한 공기와 좋은 영양, 그리고 격리가 필수인데, 이 좁고 가난한 도시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특히 산모와 아이들을 볼 때면 절망이 더하오. 아이들이 돌을 넘기기 전에 죽어 나가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됐지 않소. 출산 자체가 생과 사의 경계인데... 위생 상태가 불결한 산실(産室)에서 아이를 받는 것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요. 산파들이 가진 지식과 도구가 너무나 낙후되어 있소. 산부인과에 관한 영문 서적을 보니, 서양에서는 이미 소독과 무균의 개념이 철저한데, 우리는 아직도 민간 요법과 미신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좋은 장비와 교육이 있다면...”
최 의생은 말을 멈추고 말없이 진료실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는 하루카를 보았다.
최 의생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하루카의 눈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카는 웃을 때도, 말을 할 때도 항상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이 보였다.
“무슨 일 있소, 하루카?”
하루카가 몰려오는 생리통과 하혈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월경이 너무 불규칙해서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몰려오는 진통에 하루카의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오래된 만성 염증으로 월경이 시작되면 마치 출산을 치르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되었다.
하루카가 주먹을 꽉 쥐고 고통을 참으며 숨을 쉬었다.
치마 밑으로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루카는 골반과 척추에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일어셨다.
최의생이 하루카에게 가까이 가 하루카를 도와 진료대 위에 눕혔다.
최 의생은 하루카의 배 언저리에 담요를 덮어주고는 밖으로 나가 작은 항아리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배꼽 밑 자궁 언저리에 올렸다. 치마 밑으로 발목까지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카가 창피함과 고통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가린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갑작스러운 하혈을 하고 심한 월경 통증이 있었소?”
하루카가 눈물을 삼키며 얼굴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출산을 한 이후 거의 매달마다 입니다.”
최 의생은 의사의 본능으로 하루카의 난소관이 상해있으며 너무 오래된 염증으로 골반까지 염증이 퍼져갔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일단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으시오.”
항생제가 없고 아무런 호르몬 치료제도 없던 그 시절 한번 이렇게 출산으로 망가진 몸을 회복할수 있는 의료도구는 극도로 열악했다.
최의생은 너무 아퍼서 벌벌 떨고 있는 하루카의 몸을 담요로 거의 칭칭 감아 온기를 유지하고 아스피린을 주었다.
유일하게 통증을 조절하는 약은 아스피린 뿐이었다.
조금 통증이 가라앉자 하루카는 더욱 창피했다.
최의생 앞에서 버러진 갑작스런 월경통과 하혈이 너무 창피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최의생이 그런 하루카를 보고 어째서 이것이 창피함을 느껴야 하는 일일까 생각했다.
“ 아스피린을 가지고 가서 너무 통증이 심하면 드십시오, 몸을 따듯하게 하고 따듯한 차를 많이 드십시오. 난산으로 몸이 망가져서 골반까지 염증이 갔었기 때문에 어떤 장기가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아마도 만성적인 염증이나 흉터 때문에 오는 불규칙한 염증과 통증 같소이다, 이런 월경이 시작 될것 같은 느낌이 오면 나에게 말하고 집에 따듯한 곳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시오”
열이 있나 없나를 보기위해 최의생은 커다란 손은 하루카의 얼굴에 있던 하루카의 손을 천천히 잡아 내리고 이마를 만졌다.
몸이 뜨거웠다.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떼고 하루카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마치 총탄을 맞고 떨고 있는 사슴같았다.
아무런 보호가 없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슴처럼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마저 보이지 않는 하루카의 눈을 보면서 최의생은 인간이란 동물은 아마도 가장 상처받기 쉬운 동물이고 가장 오랫동안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동물이란 생각을 했다.
하루카의 산통같던 월경통이 조금 가라안고 하혈이 심하게 계속되었다,
최의생은 솜뭉치를 서랍에서 꺼내어 하루카에게 주며 말했다.
“일어서서 화장실까지 갈수 있겠소?”
하루카는 창피함과 고통에 몸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네”
최의생은 솜뭉치를 하루카의 옆에 놓아두고 진료실을 나갔다.
하루카는 억지로 일어나 솜뭉치로 쏫아져 나오는 하혈을 막고 천에 물을 묻혀 다리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했다.
너무나 창피했지만 한편으로 아버지 쇼베이의 사랑 그리고 한번도 얼굴을 뵙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는따듯함을 느꼈다.
하루카는 자신이 최의생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