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결혼 그리고 돈
나의 주변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30년 이상을 국제결혼 가정을 이어 나가는 것을 "외계인'처럼 생각하는 스페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잘 나가는 나의 여자친구들은 아예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을 했어도 이혼했으며 이 중에 아이를 낳은 친구는 거의 없고 있어도 한 명 낳은 친구가 다이다.
두 명의 아들을 가진 나는 '용기가 넘치는 여인'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당연히 아이를 낳고 사는 세상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나와 내 남편은 원래 처음부터 " 사랑" 이란 단어를 별로 쓰지 않고 " 가족 프로젝트"라는 말로 결혼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는 아직도 잘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양방이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다를 수 있는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이 사랑 프로젝트가 된다면 3년이 못 가서 박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서로 사랑을 느끼고 특히 서로 성적인 매력과 생각과 지적인 교류를 모두 느껴서 시작한 관계이지만 "가정을 만들다"라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적 교육적 철학적 문화적인 융합이기 때문에 나와 내 남편은 우리의 결혼을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특히 두 아들의 출산으로 여성인 나의 사회생활이 어려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큰 아들은 3년의 모유 수유 작은 아이는 2년의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나와 내 남편은 내가 집에 있으면서 모유를 먹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돈"으로 계산해 보았다.
분유값, 어린이집 비용, 집을 청소해 주시는 도움이 아주머니 비용... 이 모든 것의 지출이 일단 몇 년간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프로젝트에서 내가 3년 정도 집에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이득이고 나의 개인적 야망과 사회에서의 역할이 완전히 박살 나야 하는 결정이기 때문에 나는 그 당시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나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끝냈다.
나는 "싱글맘"으로 아이들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인 나의 남편을 돌보아주고 같이 데리고 사는 것으로 나의 개인적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서류적인 이혼을 한 것이 아니고 맘 속으로 이혼, 독립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큰 아이를 낳고 2일 후에 정치인들과 회의가 있어 아이를 메고 나가서 회의를 하다가 3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리고 계속 회의를 진행했었다. (나는 자영업자로 내 사업을 계속 한 여자이기 때문에 그 당시 하던 사업은 아이를 낳았다는 핑계로 회의를 안 나갈 수 없었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남자였던 회의 석상에서 아이가 울기전에 젖을 물리고 회의를 계속 진행하던 나에게 " 괜찮으냐?"라고 물어보는 한 정치인이 있었다. 나는 그때 " 여자들의 근본적인 사회진출의 어려움을 생중계로 보고 계십니다."라고 웃으며 대답했던 것이 생각난다.
나의 큰아들은 단 한 번도 크게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 이상한 아기였다.
(2살 반에 이 아이가 아스 퍼져 증후군이 있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출산 전에 내가 모아둔 돈이 끝나기 전에 , 큰 아들이 2살 반에 공립 유치원에 무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둘째 아들을 하루에 3시간씩 국립 유아원에 맡기고 도시로 나가지 않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해서 조금씩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 둘을 놓고 도시로 나가 8-10 시간씩 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상상도 못 하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정도 시집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했기 때문에 고도의 전략과 강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남편이 나의 두 아들들의 모든 비용을 3년 동안 계속 대어 주면서 나의 경제적인 부분도 컨트롤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나의 삶과 아이들을 모두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남편의 돈과 이혼했다.
"싱글맘" 이 아이들의 아버지를 돌보아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적성에 훨씬 맞았다.
그래서 나는 큰 아들이 국립 유치원을 들어간 2살 반에 다시 완전히 다른 나의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 둘을 마치 로마열차를 끄는 병정처럼 커다란 유모차에 놓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싱글맘"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남편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정신없이 도시로 나갔다 들어왔다 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두 아이와 나의 사업을 이끌어 나가야 했다.
매일같이 내 남편은
" 얼마를 번다고 그래... 때려치우고 집에서 아이들이랑 시간을 더 보내"
라고 말하면 나는
" 마음은 고맙지만 내 속에서 나온 내 새끼들이라... 내가 버는 돈으로 뭐든 사 주고 싶어..."
내 고집을 아는 내 남편은 더 이상 나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은 나에게 용돈을 받는 재미로 산다고 할 정도로 "신남성" 이 되었다.
싱글맘이 정자은행에 가서 아이를 임신할 때까지 내야 하는 돈은, 시도할 때마다 약 2천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한 번에 임신으로 이어 출산으로 이어지는 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면 적어도 4000만 원-5000만 원 정도를 써야 한다.
이렇게 따지면 나는 나의 남편 아이들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에게 이미 1억 이상의 빛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용돈을 주기 시작했고 남편은 나에게 받아서 쓰는 돈이 자신이 벌어서 쓰는 돈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
어쨌든... 남편의 돈과 이혼한 싱글맘이 된 나는 30년이 넘게 이 가족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으며 나의 남편은 어느 정도 성공한 건축가가 되었다. (여전히 나에게 용돈을 받는다. 아직 1억 다 못 받았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나의 남편은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고 나와 나의 아들들은 그 집에 살고 있다. 큰아들이 대학을 가면서 기숙사 비 등의 큰 지출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의 남편은 "투자" 형식으로 큰 아들의 대학 자금을 내어준다.
성인이 된 큰 아들은 1년 뒤면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때 이 돈을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 내 남편에게 다시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정확하게 독립된 "돈"의 개념으로 이어가는 가족 프로젝트에는 이혼이 없다.
모두 충실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아낀다.
돈과 결혼하고 돈과 이혼하고 돈으로 출산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 글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고
"그럼 사랑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 남편의 아내를 연약한 딸처럼 돌보는 사랑,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 "
한번 생각해 본다.
집에서 돈을 하나도 못 벌면서 아이들을 위해 청소 밥 열심히 하고 남편에게 미성년 딸처럼 돈을 타서 나의 아들들을 키우며 불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불타 오르다가 아이들이 집을 나가면 " 빈 둥지 증후군"이니 뭐니 하면서 깊은 우울증에서 헤매는 어머니를 더 사랑할까 아님... 목숨 걸고 돈 벌어서 내 돈으로 나의 자식들 키우고 아이들 독립하면 내 돈으로 용돈도 주고 놀러 다니기도 하는 어머니를 더 사랑할까...
미성년딸처럼 돈을 청구하는 주름이 가득한 여인과 나의 삶 나의 돈이 있는 멋진 삶의 주름이 있는 여성중 누가 더 사랑스러운가...
사랑은 너무나 추상적인 단어이고 이것이 지속되려면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