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페인에서 오래 살면서 가장 이 나라가 부러운 것은 일반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자부심이다.
보통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예술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인생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집이나 학교를 청소하시는 도우미나 청소부 그리고 가장 큰 법률사무소나 병원을 운영하는 유명한 외과 수술의사 모두 예술이 가지는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인지하고 있으며 각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미학적 철학적 의미를 주는 "개인 예술가"가 하나씩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도우미 아주머니들이나 청소부 같은 분들의 월급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컬렉팅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준이 안되지만 실제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떠나서 이 사람들이 한 예술가를 사랑하고 그 예술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어떤 수집가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예술가를 좋아하고 이 예술가의 행적과 전시회를 찾아다니게 된 것은 30여 년 전 스페인 발렌시아 공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 만난 한 지체장애 청소부 아주머니 때문이다.
강의준비나 학장을 도와 밤늦게까지 대학교에서 일을 해야 했던 그 시절 나의 연구실에 와서 청소를 해 주던 아주머니는 한쪽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으로 학교의 정규직 청소부로 고용되어 연구실 강의실의 청소를 하시던 분이었다.
이 분이 하루는 내가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의 연구실로 들어와 내게 말했다.
" 미겔 바르셀로의 전시가 발렌시아에서 열리는데 20대 때 대학 다닐 때의 그림들을 수집한 한 발렌시아의 컬렉터의 소장품을 선보인데요... 책이 나왔다니깐 책을 사러 가야겠어요. 선생님도 미겔 바르셀로를 좋아하세요?"
Miguel Bar celo
나는 평소에 청소부 옷을 입고 부지런히 걸레질을 하던 이 아주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에 너무 놀랐다.
부당한 정치나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을 넋두리 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도우미 아주머니들 그리고 청소부들과 너무나 다른 관심사를 가진 이 아주머니는 정말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절대로 클라시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유럽 독일에 살 때도 예술과 전혀 관계되지 않은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예술가를 알고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16세기에 세계의 반을 지배했던 나라이다.
아직도 스페인의 말을 모태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다.
그리고 스페인은 "지배" 정책이 아닌 " 통활" 정책으로 식민지들을 관리해 왔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타국 문화의 수용 흡수 방식은 이미 15 세기부터 17세기까지 발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모든 스페인 사람들은 유럽에서도 특이하게 인종차별, 국수주의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 병신 같은 졸부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다른 점이다.
이렇게 세계를 지배하며 문화를 수용 흡수 해 오던 스페인 민족은 그래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
많은 아름다운 것을 다방면으로 접하고 써 본 사람들이 "미학"에 눈이 떠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미 15세기부터 세계의 다국의 미학에 익숙해진 이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만의 미학을 만들고 자신만의 예술가를 찾아 관심을 보이는 문화가 형성 돼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청소부 아주머니와 함께 미겔 바르셀로의 전시회를 갔었다.
이 화가는 유럽 공동체 회의장의 천장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항상 인터뷰를 볼 때면 나는 나의 아버지 조영동 화백과 비슷한 것을 많이 발견한다.
마요르카 성당 벽화
그 어떤 기법이나 틀에 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 이 화가는 말을 좀 더듬거리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프리카에 뚝 떨어진 곳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페인 특유의 강렬한 정렬과 고집 그리고 잔인하게 아름다운 미학을 표현하는 이 화가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스페인의 남다른 정서를 색깔과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천재 화가이다.
이 화가의 그림은 30년 전 100만 원-500만 원 정도에 거래되었었지만 (그때 이 청소부 아주머니는 바르셀로의 판화를 한점 50만 원에 구입하셨었다. 나는 사지 않았다.) 지금 미겔 바르셀로의 "투우 경기장" 같은 시리즈는 런던에서 40억에 경매되었다.
물론 가격이 그 작가의 예술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청소부 아주머니의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그리고 자신만의 예술가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그저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진정한 예술이 삶에 미치는 파장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의식적인 것보다 훨씬 더 무의식 적인 범위까지 어마어마하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개인개인이 자신만이 사랑하는 예술가의 이름을 꺼내며 어째서 이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가인지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나는 정말 바란다.
대중예술처럼 남들이 다 좋아하고 돈이 많이 되는 인기위주의 문화만이 아닌 진정한 예술에 대해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사랑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나는 국민 모두가 각자 사랑할 수 있는 예술가가 생긴다면 사회의 자살률도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자화상
예술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모두 정답이라는 예술가들의 미학적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투우 경기장
일등 예술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예술가가 일등인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이등 삼등이 자살을 택하는 것은 이등 삼등의 미학이 시대와 사회를 넘어서면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적 숫자관념의 등수매김에서 오는 잔인하고 어리석은 잣대이기 때문이다.
30년 전 이 바르셀로의 전시장을 같이 갔던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