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우는 것은 나 자신의 삶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죽을 것 같은 고열의 감기를 앓고 비몽사몽 간으로 현실을 지각하는 사람처럼 어려운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이렇게 잘 현실을 지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건 분명히 사랑이었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아닌 이루어진 사랑이었다.
왜냐하면 이루어진 사랑이란 두 사람이 행복하게 함께 잘 살았다는 디즈니에서 만든 해피엔딩의 영화가 아니고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두 사람이 완전히 같은 감정을 나누는 단계가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것이 결혼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나는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또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한국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나의 두 번째 남자친구 이 독일 교수님이 나에게 같이 살자는 제의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관계가 더 오래가고 결국 나는 이 분과 같이 사는 것을 택했을지 모르지만 이분의 미래설계가 나의 미레설계와 맞지 않는 것이 너무 빨리 나타난 상태에서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끝을 내고 말았고 이것을 이해하고 나를 떠나게 해 준 이분에게 정말 감사한다.
하지막 아직까지도 이분과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이 남자의 눈물이 나의 목에 뚝뚝 떨어지던 생각을 하면 나의 목이 메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주말에 어려운 시골 농가를 방문해서 농사일을 돕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교회에서 만든 조직에 가입했다.
그래서 금요일 아르바이트가 없는 저녁 교회에서 운영하던 버스를 타고 지방의 작은 농가가정으로 가서 같이 숙박하며 봉사하는 그룹에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가던 길 아직도 눈을 감으면 나의 눈을 바라보던 교수님의 파란 눈과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던 따듯한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나의 버스좌석 옆으로 한 삐쩍 마르고 두꺼운 안경을 쓴 남학생이 다가와서 앉았다.
" 여기 앉아도 되죠?"
"네"
" 봉사 오늘 처음 가세요?"
"네"
" 저는 벌써 1년째 하고 있어요. 의대생입니다. 진료를 도와주고 있어요"
" 아... 네"
이 학생은 자신이 의대생 이란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남자였다.
나는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의 늦은 저녁놀이 아름답게 하늘에 펼쳐졌다.
그냥 가슴이 아팠다.
"무슨 과 학생이세요?"
" 아... 네. 저는 독문과 학생입니다. 이번이 봉사 처음이에요"
" 아... 그럼 아이들의 학습을 돕나요?"
" 저는 농사짓는 것 도울 거고요 영어도 좀 가르치고요"
나는 말하기 싫은데 자꾸 말 부치는 이 의대생이 좀 거슬렸다.
그렇다고 지금 말하기 싫으니깐 좀 조용히 입 닫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어서 물어보는 말에 그냥 짧게만 대답했다.
"서울에 사는 여대생이 농사를 지을 줄 알아요?"
"네... 아버지가 시골분이라서 좀 배웠어요"
" 시골 어디 분 이세요?"
나는 점점 더 거슬리기 시작했다.
무슨 신상조사 하는 것도 아니고 좀 조용히 앉아서 창문 앞에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 사색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 의대생은 무슨 신입사원 인터뷰 하는 것처럼 계속 나에게 질문을 해 왔다.
"두메산골 분이세요"
"어느 지방 두메산골이요?"
나는 그냥 웃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제 아버지는 서울 분이세요. 아버지도 의사이시고요. 어머니는 간호사세요"
" 아... 네."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의료계에 종사하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이 아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 누나는 치과의사예요."
나는 점점 너무 거슬려서 다른 자리로 피하고 싶었다.
"아... 네."
"여자가 혼자 봉사 다니면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세요?"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냥 꾺 참고 대담했다.
"교회에서 다 같이 가는 건데요 뭐..."
" 아.. 그럼 부모님도 교회를 다니세요?"
"네."
이 버스 안의 2시간은 나에게는 전 남자친구와의 가슴 아픈 추억에 빠질 수 없게 아마도 신이 미리 마련해 놓은 이 말이 많은 의대생과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