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남자-2

by Siesta

주말의 봉사활동 내내 이 의대생은 계속해서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쉴 새 없이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말을 걸었다.


마치 나의 주치 의사라도 된 듯이 나에게 지나친 관심과 간섭을 하는 이 의대생이 많이 귀찮았지만 아픈 사랑이 지나간 상처에 너무 집착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농촌은 지금의 농촌과는 많이 다른 곳이었다.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이 되지 않는 많은 가난한 농민들과 의료 제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외진 농촌 마을의 사람들은 아무리 아파도 의사를 만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봉사 첫날 머무른 이 집의 부부는 아이가 없는 30대 부부로 남자는 얼굴이 완전히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변형되어 있었다.


여자 말로는 집이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남자가 석가래와 철물 등에 깔려 얼굴과 어깨뼈가 완전히 다 부서졌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치료만 받고 성형수술도 받지 못해 얼굴은 형채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팔도 쓸 수 없이 되어버려 대부분의 농사일은 여자가 하고 남자는 집안의 허드레 일을 하지만 많이 움직이면 모든 골절된 상처와 얼굴이 아파 그냥 하루 종일 집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의 농작물을 보살피는 일을 여자를 도와서 하고 있었고 부근에 있는 몇몇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토요일, 일요일 2시간씩 영어를 가르쳤다.


TV에 방영되던 전원일기와는 많이 다른 실제의 농촌생활을 경험하며 사실상 아직도 한국엔 너무나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었다.


내 뒤를 아들처럼 졸졸 쫓아다니던 의대생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인가 항상 이곳에 와서 봉사하면서 느낀다고 했다.


말이 너무 많고 간섭을 많이 하는 것 외에 이 아이는 좋은 마음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 어려운 의대 공부에 주말 봉사까지 너무 힘들지 않아요?"


" 아아... 네... 힘들다고 쉬면 더 힘들고요... 힘들 땐 완전히 다른 일을 찾아서 하면 이전 힘들일로 돌아오는 일이 더 쉬워져요"


제법 철학적인 말을 하는 이 학생은 내가 질문한 것이 기회라는 식으로 나에게 되물어 질문들을 퍼 붓기 시작했다.


" 나보다 많이 어린것 같으니깐 말 놔도 돼?"


" 저는 21살인데요"


" 그렇니깐... 나는 26살 이거든"


" 아... 네... "


" 부모님들은 뭐 하는 분들이셔?"


이런 질문은 정말 정말 한국적인 질문이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지만 80년대 후반에는 남녀가 만나 미팅을 하든 소개팅을 하든 봉사에서 만나든 항상 이 질문이 나왔다.


부모와 정신적 독립을 하기 위해 거의 부모와의 인연을 끊는 것 같이 생활하는 유럽의 젊은이들과 많이 다른 한국의 이 " 부모님들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 " 하는 질문은 아마 요즘도 남녀가 만나면 의례 하는 질문일지 모르지만 유럽에 30년 넘게 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다.


" 네... 제 부모님들은 두 분 다 예술 가세요"


족보 자체가 의료계인 이 학생은 "예술"이라는 말이 마치 " 외계인"처럼 들리는 듯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무슨 예술?"


" 아버지는 화가 이 시고요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 이세요"


이 의대생은 더욱 신기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 우아... 그럼 집안엔 예술이 가득하겠네... 너도 그림을 그려?"


"아니요, 저는 그림 안 그려요"


"그럼 피아노는 배웠어?"


"네. 조금 배웠어요."


" 나도 항상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난 예술엔 정말 소질이 없어..."


" 아네..."


" 예술은 정말 재능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것 같아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의대 같은 경우는 정말 완전히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거거든... 사실 우리 과에는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한번 말문이 트인 이 아이는 계속해서 집안 이야기 학교 이야기 동료 이야기 의대생들의 힘든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가지 신드롬 중에 Logorrhea (psychology)라는 신드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속도도 그리고 내용도 통제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모두 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이 신드롬은 특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이상한 신드롬 중의 하나라는 것을 한번 독일 문학을 공부하면서 접한 기억이 났다.


이 의대생은 바로 이 Logorrhea 신드롬이 있는 것 같은 학생이었고 말이 별로 없고 경청하는 나의 성격은 이 아이에게 더없이 딱 맞는 상대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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