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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Apr 16. 2024

1.숭고함에 대하여

– 황재형의 <황지 330>과 바흐의 초상





그의 외투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 앞. 덩치 큰 동상이 외투의 주인공입니다. 이 동상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1685~1750)를 기리는 조형물입니다. 그는 이 교회에서 1723년부터 칸토르 (음악 교역자)로 일했습니다. 예순다섯 살로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27년을 교회를 섬기며 살았지요. 

 


성토마스 교회 앞에 있는 바흐의 동상


바흐의 두 번째 단추

바흐의 일상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칸토르’가 하는 일은 성 토마스 교회뿐 만 아니라 라이프치히에 있는 4개의 교회에서 예배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주 교회에서 연주되는 성가를 작곡했으며, 성가대 연습과 오케스트라 연습,  틈틈이 지역 행사를 위한 곡들도 궁리해야만 했지요. 또한, 스무 명의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의 방 촛불은 오선지를 밝히느라 꺼질 틈이 없었습니다.

동상은 크기가 2.5미터나 됩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몇 걸음 뒷걸음쳐서 보면 높이에 가렸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 음악가가  입고 있는 외투 속 조끼에  달려있는 두 번째 단추가 보입니다. 여섯 개의 단추 중에 유독 두 번째 단추만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이상한 것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외투의 주머니는 안감이 다 빠져있습니다. ‘바흐는 덜렁대는 성격이었나?’ 오해받기 좋은 옷매무새입니다.

‘그런데 바흐를 기리는 동상에 흠까지 표현했지? ‘

이유가 있었습니다. 채우지 않은 두 번째 단추는 미처 잠글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던 그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또 외투 밖으로 뒤집어진 주머니는 스무 명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돈 한 푼 모을 틈이 없었던 빠듯한 생활고를 증명합니다.

바흐의 동상을 보고 있으면 문득 쉽지 않은 세상을 헤쳐온 ‘베이비 부머 ‘세대의 아버지들이 겹칩니다. 그들은 경제발전과 민주화 등이 뒤엉킨 격동의 시대를 ‘내 새끼에게만은 절대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삶은 편치 않아 보입니다. 삶의 무게로 주름은 깊게 패고 어깨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그들은 이 시대의 초상이자 숭고한 동상입니다.


광부의 작업복 주머니     

 ‘광부화가’라 알려진 황재형의 작품들에서도  처절하고도 숭고한 아버지의 인생여정을 볼 수 있습니다. 광주민주항쟁을 거치면서 무르익은 민주화 운동은  미대생이었던 그에게 붓의 방향을 틀게 했습니다.

 ‘너무 편안한 잠자리를 이루고 있어 삶이 권태로운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주는 그림을,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드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을 주는 그림을 그리겠다’ 결심은 확고했고, 삶의 행로까지 바꾸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화가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강원도 태백에 터를 잡았습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사는 경계의 땅에서 그는 탄을 캐는 ‘광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열악한 일터인 ‘막장’을 그려나갔습니다.     

막장에 들어갈 때 입는 작업복을 묘사한 ‘황지 330’. 작업복의 실제 주인은 1982년까지 황지 광업소에 계약되어 있었던 광부였다고 합니다.

잿빛 작업복은 오래 입어 너덜너덜해진  흰 속옷 위에 걸쳐져 있습니다. 다 낡아 해진 러닝에는 여기저기 구멍도  나있습니다. 작업복 왼쪽 가슴에 그의 일터인 ‘황지 330’이라는 작업장 표가 붙어있네요. 힘없이 뒤집어져 속이 들여다 보이는 오른쪽 가슴주머니에는 광부의 사진과 이름, 근무지가 표기된 명찰이 달려있습니다. 광부는 단정한 양복 차림입니다. 그는 어쩌면 화이트 칼라를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사고가 나고, 사망자 명단에 그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황재형, <황지 330>, 1981, 캔버스에 유채, 227.0 ×130.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낡은 외투 속에 뭉근한 사랑

시선이 명찰이 달려있는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갑니다. 축 늘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주머니. 그것은 1퍼센트의 부자들이 전체의 부를 차지하고, 나머지 99퍼센트는 부에 소외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현실입니다. 집세 걱정, 끼니 걱정을 하며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그 주머니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셨던 나의 아버지가 보입니다. 이제 등도 굽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진 내 남편의 모습도 보이는 듯합니다.


가족을 위해 맹목적으로 한길만 걸어왔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이제는 다 낡아빠져 축  늘어진 주머니로 보여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책임감이라는 외투에, 그 주머니 속에 감추여져 있던  그들의 사랑과 희생이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듣는 곡>

 St Matthew Passion (마태수난곡) BWV 244 – J.S. Bach


바흐에게 음악은 종교이자 삶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창조하는 삶을 살았지만,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그의 의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며 더욱더 숭고해졌습니다.     

1729년에 그가 섬겨왔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바흐가 사망한 후 잊혔던 마태수난곡. 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봉인이 풀려 멘델스존이라는 젊은 음악가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39번째 아리아인 <Embrame dich, mein Gott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닭이 울기 전까지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3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의 참회곡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섬겨왔던 예수님을 배신한 것, 가장 귀한 인간관계와 자신의 인격이 무너짐에 통곡합니다.

이 아리아는 마치 영화의 OST처럼 <황지 330>의 감상을 더욱 진하게 각인시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장 75절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ä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주여, 나를 보시옵소서!



https://youtu.be/-i1zYWB7ZnE?si=ioEW1Vsf97bjY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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