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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Apr 17. 2024

2.그녀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이쾌대의  <카드놀이 하는 부부>

“그 아름답던 젊음은 저 무덤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헛간 속에 채집되어 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어디로 갔을까.”

 ―최인호, 《겨울 나그네》에서 

    

아내는 매일 밤 가족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다락방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안방 벽장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부엌 천장에 있는 비밀 공간. 가족들은 집에 그런 곳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무엇을 꽁꽁 숨겨놓았기에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을까요?

까치발로 조심스레 다락에 들어선 그녀는 돌돌 말아놓은 그림들을 펼치고는 한참 동안 들여다봅니다.


화가의 러브레터와 귀여운 천사

지금은 곁에 없는 남편. 아내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남편이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북쪽 하늘을 향해 몇 번이고 나지막하게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아직도 또렷한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고 있던 남편은 진명 여고생이었던 그녀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합니다. 소년은 수많은 러브레터로 뜨거운 마음을 전합니다. 끈기와 진심으로 무장한 고백은 열여덟 살 콧대 높은 처녀의 마음을 엽니다.     

“오! 어여쁜 아가씨여

오! 나의 귀여운 천사여…. 이 세상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해 낼 적에 어떤 해 며칟날 유 씨 따님과 이 씨 아드님이 서로 만나서 그날부터 두 사람의 사이에 온전하고 행운 한 사랑이 움터서 영생토록 향락하게 살아라는 것을 미래의 두 젊은이들에게 약속하셨나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 두 남녀의 이름을 갑봉이라 하고 쾌대라고 명명하셨더랍니다.

오! 우리 두 사람은 가장 행복되고 가장 도적 없는 굿굿한 사랑을 가진 소신자입니다….

한 떨기 장미꽃, 나는 그 옆으로 배회하는 벌 나비올시다.

장미꽃과 벌 나비는 이미 예약된 사이였고 그 두 사이에는 아리따운 사랑이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었더랍니다.”(1932년 무렵의 편지)


남편 이름은 이쾌대(1913~1965)입니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이지요. 그는 대지주 집안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집안의 규모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성처럼 높은 담장이 5,000여 평을 둘러싸고 집 안에 교회·학교·테니스코트가 갖춰져 있었다.”라고 합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귀여운 천사’ 유갑봉(1914~1980)과 백년가약을 맺고 함께  일본 제국미술학교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유학시절 인물화에 몰두한 이쾌대의 모델은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평생 그의 ‘뮤즈’였지요. 신혼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카드놀이 하는 부부>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쾌대, <카드놀이 하는 부부>,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91.2 ×73.0cm, 개인 소장       


행복한 카드놀이 속의 깊은 슬픔

장미꽃이 만개한 정원에서 젊은 부부가 카드놀이를 하는 중입니다. 연애시절 아내를 한 떨기 장미꽃이라 했던 남편은 분홍 장미꽃을 잔뜩 그려놓았습니다. 장미꽃들이 ‘내가 이만큼 당신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라며 아주 합창을 합니다.

그림 정면에는 쪽머리를 하고 녹색 저고리를 입은 단아한 차림의 아내가 앉아있습니다. 붉은색 옷고름과 소매 깃은 그녀의 얼굴을 화사하게 보이는데 일조합니다. 아내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화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아내의 왼손엔 카드가 들려 있고, 그녀의 오른편엔 위스키 병으로 보이는 술병과 컵이 놓여 있습니다.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에 위스키라니, 마치 ’ 삿갓에 양복’을 입은 듯 언밸런스한데, 한편으로는 도발적으로 보입니다.

부부는 카드놀이를 하다가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누군가의 등장으로 달달한 시간을 방해받은 듯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결말을 먼저 읽어버린 추리 소설처럼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알아서일까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림 밖을 보고 있는 듯한 부부의 모습이 어둡습니다. 몇 년 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삶이 흔들리게 되리라는 복선으로 비칩니다. 그래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부부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슬퍼 보입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시작되고 북한군이 서울까지 점령합니다. 병든 노모와 만삭인 아내를 피난길에 세울 수 없어 서울에 남은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북쪽의 강요로 인민군 부역 화가가 되어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을 그려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울 수복 후 국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3년 후, 정전이 되고 남북한 포로 교환 때 이쾌대는 북쪽을 선택합니다. ‘주홍글씨’가 된 인민군 부역 화가라는 전력과 형(이여성)이 월북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잠시 헤어져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쾌대는 꼭 돌아오겠다며, ‘내가 돌아갈 때까지 그림을 팔아서 생활하라.’고 아내에게 당부합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뮤즈’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네 아이와 노모를 부양하면서도 남편의 분신 같은 그림을 지켰습니다. ‘월북 화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고문과 감시를 받았지만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그림과 해로한 ‘뮤즈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일장춘몽’이었을까요. 아내는 그림을 정리한 후, 혹여 가족에게 들킬까 봐 조심스럽게 다락에서 내려왔습니다.

오늘밤 꿈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그를 보게 된다면 그리움과 서러움에 왈칵 울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울어도 좋으니 남편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장미꽃처럼 벙급니다.





<함께 듣는 곡>

Serenata rimpianto(탄식의 세레나데) - 엔리코 토셀리(Enrico Toselli, 1883-1926)


토셀리가 알프레도 실베스트리(Alfredo Silvestri)의 시에 붙인 노래로 1900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세레나데.  

지난날 아름답기만 했던 사랑은 이제 옛 일처럼 되어버려 아스라함만 남았습니다.

     

【토셀리의 세레나데(탄식의 세레나데)】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은빛 같은 달빛이 동산 위에 비치고     

정답게 속삭이던 그때, 그때가 아름다워라     

꿈결과 같이 지나갔건만 내 마음에 사무친 그님 그리워라.


https://youtu.be/8o3rMLQGgHg?si=YRC5BKxZo8pBL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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