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이랑 Aug 05. 2021

나만 모르는 비밀

이성에 눈을 뜰 때

 국민학교 중간에 전학을 와서인지 2년이 지났음에도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했다. 특히 이성 친구들과는 눈도 못 마주치고 손이라도 닿으면 부끄러움에 질색을 했다.

작은 벽지학교였기 때문에 한 학년에 반은 하나였고 한 반은 28명이었다. 그중 남자가 17명, 여자가 11명이었다.


 비율이 남자가 높았기 때문에 남자끼리 앉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남자랑 앉은 기억은 없다. 짝꿍들과는 대체로 무난하게 지냈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만 읽었다. 친구들 중 몇몇이 말을 걸었는데 귀찮아서 무시를 했다. 도리어 친구들은 집중력이 좋아서 옆에서 말을 걸어도 모른다며 방해하지 말자고 했다.


 학급 도서를 관리하던 K양과는 책을 빌리고 돌려주며 말을 종종 했었다. K양은 이국적인 외모에 웃는 모습이 예쁘고 명랑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루는 책을 반납하며 편지를 몰래 건넸다.

친절한 K양은 답장을 주었다. 사실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었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 자체에 설레었다.


 친구들 사이에는 전화방이 유행이었는데 지정된 번호에 음성을 남기는 서비스였다. 친구를 통해 K양의 번호를 알아낸 나는 고백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일기예보의 “네가 좋아 너무 좋아 모든 걸 주고 싶어.”라는 부분을 녹음했다. 번호는 1004로 남겼기 때문에 나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많이 했던 우회적인 고백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청소 구역 중에 계단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K양이 지날 때쯤이면 HOT의 캔디를 흥얼거렸다.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 한채~”

별다른 말 없이 지나쳤고 청소할 때면 습관처럼 캔디를 불렀다.

 

 그러던 중 P양이 전학을 왔다. 우리 학교에서는 몇 안 되는 전학생이라 관심이 많이 집중되었다. 수업 중에 사소한 의견 차이로 P양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사과의 편지를 건넸고 P양에게 답장을 받고 화해를 했다. 말다툼 이후로 친해졌는데 P양과 사귄다는 소문이 나서 거리를 두었다.


 K양에게 고백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오해를 했으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다. 물론 평소에도 도서 대여 관련 이야기 외엔 특별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혼자만의 망상으로 흘러갔다.


 초등학교를(6학년 때,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졸업하고 친구들과 다 같이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곳이 집에서 멀어 가기 귀찮았는데 친구 녀석이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애도 나오기로 했으니 꼭 와.”

친구가 말하는 사람이 P 양인지 K양인지 의문이었으나 물어보긴 그랬다.

 

 노래방에는 K양은 있었지만 P양은 없었다. 다른 친구들에게처럼 인사를 했다. 친구 중에 누군가 캔디를 예약해놓았고 내 노래라며 K양이 마이크를 건넸다. 내가 예약해놓은 노래는 아니었는데 노래를 부른 걸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 표현할 용기도 없었고 손만 닿아도 부끄러울 때였다. 서로 말하진 않아도 누가 누굴 좋아하는 건 금세 알아차렸다. K양을 좋아하는 감정이나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게라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